학소위 주최 오픈마이크 ‘우리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결합

발언에 앞서서, 두 번의 토요일에 연속해서 열린 대규모 집회, 그리고 평일에도 계속해서 열린 집회들에 참석하고, 5시간 동안 이어진 학생총회에서 자리를 지키고, 각자 대자보도 붙이는 등 학내에서 여러 가지 대응을 이어간 우리들에게 먼저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광장에 우리들이 나서서 윤석열 탄핵안 가결에 많이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뉴스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는데요. 어디어디 대학교에서 학생총회를 열었다, 어디어디 대학교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라는 뉴스들도 많이 보입니다. 이번 탄핵 국면에 대학생들이 많이 나서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학생총회를 열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가지고 집회에 참석하고,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학내를 대자보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각 학교 학생회들도 성명문을 내고 비상계엄을 규탄하거나 나아가 윤석열의 퇴진을 촉구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학생회와 대학의 대응을 보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는데요. 대학생들이, 또는 꼭 대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침묵하지 않고 나선 것에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성명이나 발언에 계속 따라붙는, 학생회나 대학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해명 같은 설명들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신촌에서 열렸던 ‘전국 대학생 총궐기 집회’에 다녀오신 분들도 계실 거 같은데요. 주최 측 공지에서 반입금지 물품으로 “특정 정치단체의 깃발”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또 집회 기조에서는 “특정 정치단체의 이해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든 참여를 사절하며, 대학생 본연의 순수한 목소리를 전하는 자리”라면서 총궐기 집회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총궐기 집회에서 발언을 각 학교의 총학생회장 분들이 나서서 발언을 했었는데요. 그분들도 마찬가지의 입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야당에 유리한 일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 학교 전체학생총회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하신 분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특정 정치적 입장이 아니다’, ‘특정 정치단체와 관련이 없다’라는 말을 마치 앞다투어서 경쟁하듯이 뱉는 학생회와 대학사회를 보면서 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진행했을 때가 떠올랐는데요. 저는 참사 200일과 2주기 무렵에 학내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여기도 참여한 분들이 계시고 응원해주었지만, 에브리타임에는 당연히 악플도 달렸습니다. 악플의 내용 중 주된 것은 “그런 걸 왜 학교에서 하느냐”, “정치를 학교에 끌고 오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댓글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허락되는 종류의 활동은 무엇인가, 대학은 왜 정치 결벽증에 걸렸고, 학생회는 왜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학생회와 대학이 참사를 기억하는 행동을 했다면 저와 제 친구들이 굳이 이태원 유가족 간담회를 기획하려고 나서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또 이번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느꼈습니다. 학생회는 특정 정치적 입장을 띄지 않겠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방관해 왔습니다. 또 대학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곳으로 변해 왔습니다.
“학생회는 특정 정치적 입장을 띄면 안된다”는 것이 마치 부정할 수 없는 정언명령이라도 되는 듯이 많은 학생회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모든 행사를 다 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회는 축제 준비하고, 연예인 부르고, 시험기간 간식행사나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는 아직도 차별과 억압, 부당한 일들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서울대학교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서울시 1위이고, 인력부족에 허덕이며 피켓을 들어야 하는 노동자들도 있고, 수많은 소수자가 함께 살아가지만 인권헌장은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일입니다.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규탄하는 비상계엄 때문에, 대학에 윤석열 퇴진 요구라는 “정치”가 그나마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은 명태균 게이트나 계엄이 아니었어도 탄핵되어야 했을 사람입니다. 만약 12월 3일의 계엄이 없었다면 학생회들은 아직도 ‘특정 정치적 입장’을 띄지 않는다면서 윤석열 정권을 방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윤석열 탄핵안이 헌재에서 인용되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학생회들이 마치 계엄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학내외 문제들을 외면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대학이 될까봐 두렵습니다.
윤석열 탄핵이 인용된 이후에도 학생회들이 다시 ‘특정 정치적 입장’이 싫다며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학생회와 대학사회는 들어야 합니다. 만약 학생회가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막은 귀를 뚫고 들을 수 있도록 우리가 더 크게 외쳐야 합니다. 우리 대학과 사회가 더 평등하고 안전해지도록, 계속해서 외치고 행동합시다. 감사합니다.

저는 우선 이런 자리가 퇴진과 탄핵 이후에 계엄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자기보다, 그 이전의 세상, 형식적 민주주의를 갖추었고 멀쩡해보이지만 실은 많은 이들이 억압받고 불평등하던 그런 세상이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이야기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생각을 하는 주체들이 새롭게 함께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실현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학교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던 아동・청소년 권리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지난 토요일과 그 지난주 집회에는 어른들만 참여했던 것이 아니고, 보호자의 손을 잡고 온 아동,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온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같은 집회에 함께함에도 다른 어른들에게 선동당해서 나왔다거나, 정치는 커서 하라,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반대로 기특함과 대견함의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동・청소년이 어른만큼 합리적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인데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열아홉살에서 스무살로 성년이 되고 1월 1일이 되면 그 전에는 갖지 못했던 합리성과 판단력을 갑자기 갖추고 주위의 이른바 선동으로부터 영향받지 않는 독립적 주체로 거듭나는 것일까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가치관과 판단기준 역시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가치관, 이전의 판단기준이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할 만한 것이라고 해서 그 시점에서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의 주체가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동・청소년의 판단을 리스키한 것으로 치부해선 안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혹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충분히 합리적・주체적 판단을 한다고 해서 그의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을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듣고 보고 느낀 것일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아동・청소년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가치관과 판단기준을 세우는 과정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또한 아동・청소년은 물리적・정서적으로 취약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들은 소위 어른 시기에도 계속해서 가지는 특징들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찾아가고 만들어가고 가치관을 변화시켜나가고,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서 또 충격적인 사건들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취약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아동・청소년이고, 어른은 아동・청소년기와의 단절이 아니고 연속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대학교에서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말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넓은 의미의 아동・청소년입니다. 나이 든 아동・청소년일 것이고, 동시에 아동・청소년이 놓인 폭력과 학벌위계의 구조를 통과해온 사람으로서 이들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생긱하기에 페미니즘이나 퀴어나 이런 소수자들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많이 정립이 되어 있는데, 아동・청소년의 권리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논의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이론적인 정교화 같은 것도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동・청소년 권리와 관련된 몇 가지 구체적인 문제들을 짚어 보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짚어볼 것은 체벌 문제입니다. 체벌은 엄연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폭력입니다. 하지만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훈육’이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어른을 때리는 것은 폭행죄로 처벌 대상인데, 아동・청소년을 때릴 때는 ‘규칙을 정해 두고 때리면 괜찮다’ 따위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물론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고요.
다음으로 짚을 것은 학교에서의 학생인권 문제입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 모두가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학생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특히 학력・학벌 위계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진 결과로 학교에서의 폭력이 오랜 기간 정당화되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생겼는데,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과 충돌한다, 교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라는 공격 속에서 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생의 인권과 교사가 안전하게 자율적으로 교육할 권리,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는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함께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를 더 짚어보고자 하는데, 한가지는 학생 운동선수들이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의 전수조사에 따르면, 언어폭력・신체폭력・성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이 매우 많았고, 폭력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다, 더 잘하려고 맞았다, 이런 식의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 선수들에 대한 이런 인권 상황들이 잘 가시화되어 있지 않은, 알려져는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미흡한 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고요.
마지막은 보육원에 대한 것인데, 보육원은 물론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시설이고, 부모를 알지 못하거나 가정에서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 등에 놓인 아이들이 입양 등을 통해 보호받을 가정을 찾지 못했을 때 들어가게 되는 시설입니다. 하지만 황필규 변호사의 칼럼에 따르면, 시설 아동 다수가 물리적인 폭력이나 추행, 정서적 학대, 의도적 방치를 경험하고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인권침해라고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동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고, 대학입학 포기와 취업을 강요하는 등등 여러 사례들이 있고요. 이러한 문제들 역시 아동・청소년이라는 존재들이 사회에서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 그리고 이 사회에서 취약한 존재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라는 측면에서 이런 네 가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말씀드렸고.
앞서서 말씀드렸듯이, 서울대학교에서, 혹은 대학교에서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연대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측면들도 있을 거라 생각을 하고. 제가 이것을 인쇄를 해서 중도터널 자보전에 붙일 생각이 있는데, 서울대학교 내에서 아동・청소년 권리보장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면, 제가 QR코드를 만들 생각이 있어서 구글폼 같은 것을 작성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에 관악학생생활관에서 벌어졌던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을 경험한 분들은 많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아직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을 합니다. 산업재해로 승인을 받은 사건이었고, 높은 노동강도라던가 인력의 부족 이런 부분들로 인해서 학교 내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던 그런 사건이었는데요. 21년 관악사 사망사건 당시 고인의 남편분이었던 유족분으로부터 약 2주 쯤 전에 그분이 여의도 광장에 가신다고, 기회가 되면 거기서 보자고 그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분께서는 당시에 서울대 시설관리직원이셨고, 저 아래쪽 있는 규장각에서 기계 일을 하셨던 직원이셨습니다. 그 분께서는 퇴직 이후에 해병대 예비역으로서 해병연대에서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 오셨습니다.
군사주의와 국가폭력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군인의 인권침해,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할 것으로 생각하고, 저 또한 해병이라는 것으로 묶이는 그런 조직화와 동원에 대해서 당연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삶의 경험 속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와 조건에서, 또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변화해 나간다고 생각을 했을 때, 저는 굉장히 가슴이 벅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애도하는 일이 연결되어 있다는 그런 감각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용기로, 또 고립감을 넘는 연대의 온기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1주쯤 전에, 퇴진 광장이 절정에 있었을 때 한편으로 벅차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굉장히 쓸쓸하고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시험공부를 해야 되는데 밤새 울고 계속 자고 이러느라고 공부를 잘 하지 못했는데요. 왜 그렇게 그날 밤이 우울했는지에 대해서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굳이 생각을 정리해 보자면, 아무래도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으니까 광장에 우리밖에 남지 않겠다”라는 누군가의 얘기가 좀 마음에 오래 남았던 거 같습니다. 꽃다지의 노래 중에, 2011년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한겨울 천막농성을 노래한 그런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에 “텅 빈 광장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천막농성 하는 노동자들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그런 것을 담은 가사가 있습니다.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올리기에 제도정치의 구조가 사실 2016년보다도 훨씬 더 비우호적으로 폐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여의도에서의 광장에서, 우리가 관객의 위치에 있을 수는 있겠지마는, 무대의 위치에 우리의 자리가 있을 것인가 의문스러워서 많이 쓸쓸하고 외로웠던 거 같습니다. 언제나 계엄 속에서 살아온 존재들의 목소리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전위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보이지 않게 숨기면 그만인, 일상적인 예외적인 구멍으로 치부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 속에서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만약에 올해 광장이 16년 광장보다 조금이라도 더 평등한 점이 있었다면, 다른 몸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면,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조금이라도 더 스스로를 내보일 수 있는 그런 장으로 약간이나마 열렸다면, 그것은 정상성이라는 억압적인 틀 속으로 아무리 욱여넣으려 해도, 구멍을 아무리 막으려 해도, 그 틈을 비집고 삐져나왔던 수많은 목소리들이, 우리가 보든 보지 않든 간에 계속해서 있어왔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탄핵이 완료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는 그 틈새를 벌리고 민주주의를 재활성화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라는 그런 마음으로 우울함을 다잡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선을 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또 그리고 다양한 깃발 아래 나부끼는 다양한 요구들이 예정조화적으로 서로 조응될 수 없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대화하고 우리의 대안을 만들고 엮어나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던 것 같습니다. 광장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기보다, 혹은 집보다 광장에 계속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기보다, 집과 거리의 경계를, 집과 광장의 구획을 만들어온 그런 벽을 넘고 부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활동을 해오면서, 제가 18학번인데요,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때도 많았던 것 같고, 아쉬운 적도 많았던 것 같고, 이름이나 역할에 따르는 일을 충실하게 하지 못하거나 잘 못 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그런 생활을 5년 좀 넘게 10년 좀 안 되게 좌충우돌하면서 지내 오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굉장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이 때로는 변한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흔히 따옴표 치고 “대중”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해서 실망한 적도 많았지만, 우리가 함께 함으로써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또 예상하지 못한 정치의식의 변화라는 것이 생긴다는 것을 본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끊이지 않는 몸짓과 목소리라는 것이, 우리의 정치체에,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우리의 신체 자체에, 계속해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주어진 구조를 탓하기보다, 너무 소진되지 않고, 때로는 함께 서로 악수도 하면서, 구조를 유의미하게 변형하기 위해서, 또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갈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밤에 누군가를 애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서 늘 국회 앞 농성장에 있었던, 그곳에서 칼바람을 맞고 있었던 노동자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 노동자들은 평소에는 늘 외면받고, 연대 오는 사람들이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는 그런 곳에서 칼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계엄령이라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계엄군의 체포 위협을 당했다고 합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이 되고 국회 광장의 열기가 식더라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지닌 공백과 예외지대를 증언을 하면서, 그곳에 존재하는 그런 몸들을, 그 존재를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광장에서 마주친 서로의 연결이 일터와 삶터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또 그 연결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할 수 있도록, 평등한 애도를 위해서 망각에 계속해서 저항해온 이들의 존재가 그들의 불복종에서부터, 윤석열 이후를 우리가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주 전,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대통령은, 그 때 대통령이었던 사람은 국가를 ‘정상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엄 해제와 탄핵까지 겪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엄 이전의 삶으로 그대로 돌아간다고 생각을 해야 할까요? 계엄은 비정상이었으니까, 이제 계엄이 끝났으니 정상화가 되었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말했던 그 ‘정상화’라는 것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처단”하겠다, 그런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엇을 정상화”라고 말하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보고싶지 않은 것,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그런 것을 모두 배제하는 것, 그런 것이 ‘정상화’라는 말에 담겨 있는 어떤 무서운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계엄 이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계엄 이후의 미래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12월 5일 학생총회를 겪었습니다. 그때 나왔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나왔을까요? 저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각자가 모두 어떤 하나의 마음은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지금 내 사회에 닥친 문제, 내 주변에 닥친 문제, 그리고 우리 나라에 닥친 문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추운 밤에 몇 시간 동안 떨면서 아크로폴리스에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바로 ‘정치’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에서 그 ‘정치’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라는 것은 굉장히 불순한 것, 나쁜 의도를 가진 것, 또는 기회주의적인 것, 그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가령,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나중에 정치에 진출하려고 그런다”, “나중에 정치 해서 스펙 쌓으려고 그런다” 같은 식으로 비난하거나, 또는 “너무 정치적이지 않아?” 하는 식으로 ‘정치’는 부정적인 용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지난 몇 년간, 아니 혹은 지난 수십년 간 이어져 온 ‘탈정치’라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탈정치라는 것은 그런 우리가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 ‘정치’만 배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 즉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마저 함께 배제하는 결과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것이 지금입니다. 우리가 우리 문제를 외면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고, 외부에게 맡기고, 그저 지나가는 일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 그렇게 치부하고, 그런 식으로 과정이 반복된 끝에 지금의 결과, 즉 계엄과 내란이라는 결과까지 이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반복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 우리 구성원들, 즉 학생들부터 정치라는 것을 되돌려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했지만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장에 나와서, 광장에 나오기까지 사유하고, 그리고 광장에 나와서 실천하고, 꼭 광장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바꾸기 위해 행동하고, 그런 과정들이 모두 ‘정치’입니다. 물론 제가 정당정치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당정치 또는 시민단체 그런 형태야말로, 정치단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그런 식으로 목소리를 내기에 굉장히 효과적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그런 것을 너무 외면하지 않고 조금 더 내 사회의 문제를, 내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모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12월 7일에 다들 많이들 자리에 계셨을 거 같은데요.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첫 번째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집단 퇴장으로 표결이 성사되지 못해 폐기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규탄하기보다 당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똘똘’ 뭉쳐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국민의 대표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같은 날 국회 밖, 영하의 추위를 뚫고 광장에 모인 수십만의 사람들도 함께 그만큼 뭉쳐 있었습니다. 권력을 견제하는 주권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모두가 하나였으며, 그와 더불어 이 공동체가 하나라는 의식으로 함께 뭉쳤습니다. 같은 ‘똘똘’이지만 유난히 달랐던 점이 있었다면, 광장에는 다양한 얼굴과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함께였습니다. 여러 색과 문양의 깃발이 펄럭였으며, 그날 국회 밖은 다른 어디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광장에서 들리는 소리의 크기와 높낮이가 다양했지만, 분명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하나된 목소리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환영받기보다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을 더 많이 받았던 사람들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공동체, 자유를 말하는 장애인 단체들이 함께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깃발과 기민함을 가졌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왜 깃발이 필요했을까요? 처절하게 싸워야만 했던 지난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기민하게 뛰쳐나올 수 있었을까요? 불합리와 억압의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며, 함께 모여 외치고 쟁취해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탄핵으로 얻어내는 것이 그저 탄핵일 수는 없습니다. 탄핵 이후의 세상은 탄핵 이전의 세상과 비교해 눈에 띄게 달라져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모두에 의한 탄핵을 위한 운동’이 펼쳐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하고자 합니다.
하나, 계엄과 폭압이 무(無)로부터 출현한 게 아니란 걸 기억합시다. 생명을 생명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던 정권이기에, 새삼스러울 것 없이 국민을 국민으로, 헌법을 헌법으로 존중하지 않은 것입니다. ‘선량한 시민의 행복’과 ‘반국가세력’을 구분하는 윤석열의 수사와 정치는 누군가에게는 이미 너무나 익숙한 것입니다. 곁에 살고 있는 생명을 생명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존엄하게 대우하는 일은 결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없습니다. 사태의 표면 아래, 그 뿌리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해당합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도 5년 7개월 만에 전체학생총회가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부활한 거대한 학생사회 공론장에서, 헌법을 헌법으로, 국민을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대통령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습니다. 하지만 이전부터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사람들, 생명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생명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담기지 못했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이태원 참사가 거짓으로 꾸며졌다던 음모론 주장, 장애인 이동권 시위 탄압,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동성애가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이라던 뉴라이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 ‘그런 이야기’들까지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둘, 탄핵 광장에 가서, 혐오와 편견, 묵살과 배제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한지, 꼭 함께 성찰합시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퇴진 시위를 겪으며 자라난 젊은 활동가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찾아왔습니다. 소신 있게 광장에 나온 주인으로서, 진정한 동지로서 그들은 대우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우받아야만 우리는 정말로 시민정신이 가득한, ‘세대가 교체된’ 광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 2차 가해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사과하지 않고 마이크를 쥔 촛불행동 상임대표, 성노동자를 비하하는 “나이스 쥴리”를 열창하던 민중가수, 젊은 여성을 집회 참여의 유인책 정도로 취급하던 정당인, 윤석열의 망동을 인지장애나 망상장애에 비유한 정치인의 발언. 이러한 문제들을 비판하고 ‘모두의 구호’를 고민하는 일도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바로’ 하기를 원합니다. ‘나중에’ 존재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셋, 탄핵 광장 밖 여기저기에서도 민주주의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과 절차를 지키려는 동덕여대의 투쟁,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34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의 투쟁, 사랑을 제도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성소수자들의 투쟁, 강제 격리와 강박을 거부하는 정신장애인들의 투쟁,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지속되고 있는 다른 여러 투쟁들은 탄핵 광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전혀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계엄이 끝나고 대통령이 탄핵되어서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것이 별로 안온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걱정 속에 힘겹게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생사회와 시민운동은 소수자를 향하던 윤석열의 총구가 모든 시민에게 향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탄핵이 끝나고도 지금의 불씨를 소중히 간직합시다. 윤석열을 향하고 있는 횃불의 열기를 ‘안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해 온기로 나누어 가집시다.
당신의 일상은 안온한가요, 혹은 힘겨운가요? 힘겨운 일상에 치여 살아가던 어느 날, 뉴스에서 탄핵 광장에 휘날리는 깃발과 응원봉들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지는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깃발과 기민함을 함께 준비합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국민의힘’을 밀어내는 날, 저절로 완성된 자태를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광장에서 투쟁하고 일상에서 실천하며 민주주의는 함께 만들어집니다. 당신, 당신 곁에 살아가는 시민, 가장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리, 안전, 삶이 보장되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발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