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우리는 남태령을 넘었는가?: 농업의 재맥락화’ 발제문


토론자: 비서공 전 대표 이재현

1. 남태령, 우리가 서로에게 새겼던 권리의 이름

(동 저자의 웹진 『도모』 기고글 일부 발췌 재활용)

 날이 저물 때만 해도 남태령에서 밤새 대치가 이어질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학내에서 노학연대체(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활동을 함께해 온 회원들이 곳곳에서 남태령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경찰이 깃대 반입을 허용하지 않아 지하철역 모래함 뒤에 깃대를 숨겨놓고 겨우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앞뒤가 공권력에 막혔다는데 언제 강제진압이 이루어질지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택시에서 유튜브 생중계로 본 현장은 긴박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 놀라운 활기가 눈에 띠었다. 평소 현실적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거대한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와 이를 바라보는 대중 사이의 넘기 어려운 벽을 집회들에서 종종 느끼곤 했고, 그래서 집회가 끝나면 관객의 자리를 넘어서는 정치가 가능한 걸까 하는 쓸쓸함에 빠지곤 했다. 그렇기에 사전에 조율이 없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가능했을 다양한 참가자들의 자유 발언 열기에 무척 놀랐다. 과거 들었던 어떤 팟캐스트에서는 전공투와 도쿄대 투쟁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권위의 상징이었던 야스다 강당을 흙 묻은 농민의 발이 밟는 순간이 ‘해방강당’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의 거리를 트랙터는 밟지 못하게 하겠다는 공권력의 의지 앞에서, 저항하는 시민성은 경계를 넘는 다양한 모양의 발걸음으로서 트랙터 위에 급조된 연단을 밟고 있었다.

 다양한 목소리의 연대는 단순히 의제들의 ‘섞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모순과 억압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서로를 규정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에서는 2023년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본격화한 이후 늘 단위 깃발 아래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함께 매달고 집회에 나서왔고, 팔레스타인 깃발이 함께 휘날리는 모습은 새벽에 도착한 남태령 고개에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탈식민과 반전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와 불가분의 관계이듯, 한국 농민의 투쟁과 팔레스타인의 연대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발언들이 깃발들로 즐비한 하늘을 갈랐다.

 팔레스타인 지역공동체의 생계와 문화를 지탱해온 올리브나무를 불태우고 토지와 수자원을 강탈하여 기업형 과수 농업 지대로 탈바꿈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정착식민주의는, 식량 생산에서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농민들을 토지로부터 축출해온 지구적 현상의 극단이 아니던가. 트랙터 하나도 빚으로 얽매는 금융자본주의의 식민화가 종자 독점과 기술 ‘혁신’이란 이름으로 농민에게 비용을 전가해온 한국의 현실도 그 일환인 것이다.

 그날 밤에 남태령에 모였던 많은 이들도 農(농)에 대해, 그리고 농민운동에 대해 평소에 잘 몰랐거나 무심했을 수 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한 의제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언제나 유기적으로 조응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기에 갈라치기와 혐오는 때로는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며 그 균열을 파고들곤 한다. 사회과학서점의 책장 속 낡은 책들에서 공식처럼 등장하는 ‘노농동맹’의 ‘민중’이 결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거나 유지되지 않았다는 것은 20세기 세계의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었고, 국가와 자본은 생계를 위한 도시 노동자들의 물가 안정 요구를 핑계 삼아 농촌을 부차화하고 권력과 폭리를 취하며 책임을 회피하곤 한다. 도농과 세대 등에서 비롯되는 문화적인 차이, 그리고 거기서 자라난 다양한 위계와 차별이 연대를 가로막아온 이야기는 ‘운동권 후일담 소설’의 단골 소재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엇갈리는 목소리 사이를 끈질기게 가로지르며 대화를 걸어야 하고, 그런 부단한 마주침 속에서 만들어진 연결망은 광장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태령에서 함께 밤을 지새운 모든 이들에게 그 새벽의 폭발적인 연결의 감각은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새겨지리라 믿는다.

 남태령에서 자리를 지켰던 이들, 그리고 대통령실 앞으로 함께 나아갔던 이들이 트랙터를 보고 느꼈던 벅참이 윤석열 탄핵 이후에도 잊히지 않길 바란다. 앞서서 길을 뚫었던 노동자들의 대오를 보며, 차벽을 뚫고 고개를 넘었던 트랙터의 행렬을 보며 ‘멋있다’고 느낀 만큼, 그들을 한 순간 민주주의의 ‘전위’로 추앙하는 데 멈추지 않길 바란다. 서로의 요구를 각인하며 만들었던 연결의 경험이 일상 속에서 새로운 정의를, 부단한 민주주의의 혁신과 재구축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길 희망해 본다.

2. 밥상을 지탱하는 상호의존성에 주목하며, 민주주의의 ‘전위’에서 민주주의의 돌봄으로


 개인적으로 평소 農에 대해 깊은 관심이나 이해도를 갖고 있지 못했음에도, 남태령 대치에서의 두 차례 마주침 이후 이 자리에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작년에 가졌던 또 하나의 마주침 덕분이었다. 2024년 여름, 먹거리 운동가분들의 제안으로 서울대 학내의 단체급식 조리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하는 ‘밥상회’ 자리를 갖게 되었다.

 노동자-학생 연대 단위인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에서 활동해 온 학생들은 2019년과 2021년의 서울대생협 노동자 파업에 연대하며, 이주여성을 포함해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조리노동자가 감내해야 했던 열악한 휴게공간과 위험한 일터, 그리고 높은 노동강도를 마주했다. 현장 노동자가 정작 식사 시간에 자신이 조리한 주메뉴는 먹지 못했던 노골적인 차별을 시정하는 등 투쟁을 통해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대학이 학생복지 및 이를 지탱하는 노동에 대해 직접 재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중층적 고용구조 속에서 감축된 인력의 미충원 문제는 이어져 왔다. 자연히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권에 주목하는 현장 간담회 등의 접근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터의 위험과 고됨을 고발하는 당사자로서의 조리노동자 면담 및 간담회 뿐 아니라 보다 다층적인 일상과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교류 및 연대가 필요하다는 갈증이 있었다. 그런 참에 “이야기가 있는 숲(이야기숲, 이숲)”에 모인 먹거리운동 활동가들의 제안이 있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이숲 활동가들은 타 단체급식 사업장에 비해서도 높은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했던 서울대 조리노동자들의 선전전을 언론을 통해 접한 후 노학연대체에 만남의 자리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한 마주침이 더욱 유의미했던 것은 단체급식 사업장이라는 노동의 장소에 결부되어 연대 활동을 이어온 주체도, 그 밥상의 원재료가 생산되는 공간에서의 윤리와 관련해 활동을 이어온 주체도, 서로의 활동과 의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토종쌀밥에서부터 다양한 반찬을 담근 채소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맥락과 함께 이를 재배한 여성 농민의 이름까지 소개하며 밥상회를 준비하는 먹거리 운동가의 모습은 학생과 조리노동자 모두에게 어쩌면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지만, 그렇기에 그런 새로운 모습에서 소중함을 느꼈다.

 ‘식탁을 돌보는 이의 식탁’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밥상회는 우리가 경험해 온 식탁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식사와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되었다. 이는 먹거리의 생산에서부터 조리의 노동, 그리고 밥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호의존성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무언가를 돌보는 노동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비가시화되는지 살펴보았고,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서의 ‘서로 돌봄’이 필요하다는 점을 나누게 됐다. 밥상회가 일회적인 자리가 되지 않도록 후속으로 이어진 밥상회 참가자 사이의 토크콘서트나 관련 전시회에서도, 상호의존의 감각을 강조하여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서울대생협의 단체급식 사업장은 국내에서 생산된 재료를 주로 사용하며, 좋은 재료로 식탁을 차린다는 점은 조리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적으로만 기술하지 않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 계속 밥을 하면서 가사노동으로도 다시 식탁을 차려야 하는 현실에서 “음식이 이렇게 싫을 때가 있나”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인력 충원 투쟁에 나서는 마음에 대해선 “즐겁게 일한다는 마음”이기에 투쟁한다고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식사를 하기 어려운 다양한 식탁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는 보람의 강조가 자칫 열악한 노동조건을 비가시화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되면서도, 좋은 질의 식사나 건강한 식사를 강조하는 그런 자부심이 지닌 단단한 가치를 체감했다. 이는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서로 연결된 존재들 사이에서 돌봄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었고, 자연히 農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다.

 이러한 마주침 이후 먹거리와 農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노학연대체 활동가들이 결합했던 남태령과 석수역에서의 대치뿐 아니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마늘과 당근을 나누어주는 농업먹거리청년모임 부스를 보면서도 연대감과 친근감을 느꼈다. 우리가 상호의존성의 감각을 느끼고 또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더욱 많아질수록, ‘응원봉 연대’가 더욱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먹거리를 생산하는 다양한 노동에 부여되는 ‘숭고함’이라는 이미지가 시혜나 대상화로 흘러가지 않도록 경계하며 연대의 자세를 가다듬는 일 또한 중요할 것이다. 농민과의 연대활동으로서의 ‘농활’이나 대학 단체급식 식당의 노동을 학생이 경험하는 ‘식활’이 단순한 선의의 ‘봉사’나 숭고하지만 고된 일에 대한 ‘체험’으로 종종 이해되고 말았던 것은 그런 이미지가 연대의 전통을 압도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돌보는 행위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애착에 주목하면서도 이를 상호적인 연대의 윤리적 기반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에서는 ‘깨끗’하거나 ‘건강’한, 다른 한편에서는 저렴한 먹거리에 대한,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여러 접근이 소비자로서의 관심사에 국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할 것이다.

 농촌의 현실을 잘 알지 못했거나 관심이 부족했다며 연대자들이 표현한 ‘미안함’의 부채감이 장기적인 연대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주체들의 투쟁과 연결되기 위한 노력이다. 민주주의의 ‘전위’로서의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트랙터 투쟁에서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지탱하고 돌보는 여성 농민의 호미로 나아가는 전환은 비단 농민운동만의 과제가 아닐 것이다. 農을 바라보는 연대 시민과 활동가로서 감행해야 할 인식의 전환으로서도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화하거나 젠더화한 채, 때로는 대상화해 예찬하고 때로는 평가절하해 온 돌봄을 어떻게 바라볼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답하면서 상호의존적인 존재들의 고된 삶에 대해 그 부당함과 자부심을 온전히 이해하며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니 무수히 많은 남태령을 앞으로 열어보았으면 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식탁을 돌보는 다양한 존재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듣고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