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소위 주최 세월호 참사 12주기 서울대학교 기억문화제 ‘봄은 오겠지만’ 공동주최 및 발언문


  세월호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를 생각할 때마다 막을 수 있었고 큰 피해 없이 수습될 수 있었을 고장과 사고들이 비용 절감과 효율성 추구라는 미명아래 방치되고 조장된 문제들로 인해 참사로 확대되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제거한 채 작업이 진행되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 중대산업재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SPC그룹 빵공장, 생명 보호에서 배제된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아리셀 참사, 마찬가지로 안전 교육 없이 비숙련 노동자를 작업에 투입해 발생한 대전 안전공업 참사와 같은 경우들이요.

 이렇게 다른 공간과 다른 조건에서 다른 형태로, 그렇지만 그 원인을 공유해 반복되는 참사의 무게감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 번의 참사가 아닌 지속적으로 강요되는 과로에 일상적으로 목숨을 잃는 배달, 물류 노동자들, 유해물질에 대해 충분히 안내받지 못하고 보호장비 또한 미비해 목숨을 잃고 있는 전자산업 노동자의 소식을 접할 때 또한 그렇습니다. 반복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전해지는 죽음의 소식들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의 무기력을 되새기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재학 중 세월호 참사의 소식을 접했음에도 기울어져 침몰하는 세월호의 형상이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무리한 개축과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들이 누적돼 취약한 상태가 재난으로 이행한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책임자들이 서로 책임을 미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비서공에서 작년부터 진행한 시설노동자 휴게실 전수조사사업중 경비 노동자에게 들은 무인경비화에 대한 우려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인문대생이라 정확한 환경을 알지는 못합니다마는, 공과대학의 경우 폭발 위험이 있는 실험 장비가 많은데 상주하는 경비 인력이 없는 상황이라 사고가 나면 대처가 어렵겠다는 우려를 전해주셨습니다. 서울대 내에는 유인 경비실이 단 40개 남아있고 공과대학과 미술대학은 완전히 무인경비화 했으며, 퇴직한 경비 인력의 공백을 다시 채용하지 않는 식으로 무인경비화가 진행중입니다.

 비용 및 책임 절감을 위해 ‘첨단화’라는 미명아래 구성원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서울대의 모습에서 코로나 당시 절반 가까이로 축소한 인력수준을 가까스로 유지중인 생협의 경우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력이 부족해 노동 강도가 갈수록 강해져 인력 충원이 어려워지고 다시 인력이 부족해 노동강도가 강해지며, 따라서 식당 줄이 갈수록 늘어지고 산재 위험성은 높아지는 악순환을요.

 인력 축소와 ‘첨단화’ 경향이 총장에 총장을 거쳐도 유지되어 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이 구조적 문제들은 고위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추체험한 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당시의 총장이라거나,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2차가해성 발언을 한 보직교수에게 책임을 묻는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일부 일탈적 개인의 악의에 의해 일어났다는 식의 꼬리자르기로 말단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도요. 둘 모두 필요한 요구였지만 그것만으로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이 달성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경찰의 안전대책 미비에 대해 경찰 인력을 충원하라는 반응으로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안전 사회’를 말할 때 바라는 것은 사람이 밀집된 모든 지역이 일률적으로 수많은 경찰 인력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학교라는 ‘학문의 장’에서 ‘외부인’ 침입만을 막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실제로는 학생증이 없는 모두를 걸러내는 식으로 작동하는 무인경비가 마찬가지의 ‘효율적 안전’을 추구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재난, 참사는 ‘학교’와 ‘국가’의 ‘위기’이지 개인이 겪은 사고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이의 예시를 우리는 형식적 애도기간의 부여와 권력자들만을 보호하는 경찰의 모습에서 보아오고 있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폭력 상황’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며 경찰과 같이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 또 ‘안전’에 대해 구성된 위계관계를 위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식이 아닌 방식의 안전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직위에 앉은 사람의 책임도 크지만 책임자에게는 안전을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 이윤을 위해 구성원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말라는 요구가 중요하다는 것, 우리가 추구할 것은 구조의 개혁을 통한 안전이라는 것.

 비서공에서는 구성원 모두에 여가권을 보장하고 노동자와 노동자, 학생과 학생, 노동자와 학생 사이 위계적이지 않은 공동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위계적 고용 관계와 구조적 폭력, 그리고 사망 사건의 아픈 현장인 관악사 체육관에서 호호체육관 프로그램을 열어 왔습니다. 학내 노동자의 점심, 휴식시간인 11시-12시에 체육관을 대여하고 강사를 초청해 진행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입니다. 학교의 ‘애도’가 책임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시도될 때 조용하고 슬프기만 한 학교가 아닌, 인사관리 개선 등 구조적인 개선을 통해서 민주적인 공동체로서의 학교, 다음에 올 노동자들이 ‘호호’ 웃으며 출근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호호체육관과 같은 활동들로 저희는 국가가, 학교가 정한 조용한 애도와 반추, 그리고 학교가 바랄 망각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서로를 대면하는 애도로 학교가 만들 수 없는 안전하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국가가 책임을 묻고 통제적이지 않은 방식의 안전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회피하기 위해 ‘국가적 위기’ 운운하고, 일률적으로 부여된 애도 기간 아래서 어둡고 조용한 방식으로만 추모할 것을 강요했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분들이 국가가 강요한 방식의 애도에 갇히길 거부하고, 참사 이전 ‘일상’으로의 ‘복귀’를 거부한 채 서로 다른 조건의 참사와 재난에 연결해가는 과정들 또한 기억합니다. ‘복귀’하지 않는 삶, 이후를 살아가는 삶에서 단순히 시간적 이후가 아닌 조건으로서의 이후를 만들어나가길 기원하고,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