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이후 1년, 노동의 풍경: 전태일은 어디에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시민들의 힘으로 저지된 지 한 해가 지났다. 그 사이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건폭’으로 낙인찍으며 故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정권, 삭감된 임금을 회복하려는 최소한의 요구로 스스로 철제 케이지에 갇힌 조선업 하청노동자를 공권력 투입으로 협박하던 정권, 과속과 과적 없이 모두가 안전한 도로를 위해 안전운임제를 되살려내라는 화물노동자 파업을 강압적 업무개시명령으로 무력화하던 정권은 탄핵됐다. 가장 먼저 국회 앞 농성장에서 계엄군을 마주해 그 소식을 알린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들, 국가권력의 책임 회피와 지속된 탄압 앞에 늘 길을 열어온 노동조합의 힘이 부정의한 권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내는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계엄 이후 1년, 노동의 풍경은 어떠한가.

 윤석열 정권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됐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보장한 것, 노동쟁의 탄압에 활용된 천문학적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를 제한한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자본의 지시에 종속되면서도 독립사업자로 간주되어 온 파편화된 불안정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노조할 권리는 개정안에도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단 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성’과 노조할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지 않는 한 차등적인 법제도의 제정은 한계가 크다. 우리는 서울대의 2017~18년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무기계약직 ‘중규직’으로의 전환이 정규직과의 차별을 계속해서 재생산했음을, 그리고 그 ‘신분’의 부당함과 차별의 지속을 넘어서기 위해 학내 노동자들이 차별시정소송에 나서야 하는 현실을 보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개정과 관련된 시행령을 입법 예고하며, ‘교섭창구단일화’로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동일한 교섭창구를 통해 단체교섭을 하도록 제도화하고자 한다. 오랫동안 복수노조가 금지되어 자율적인 노동조합 활동이 강압적으로 봉쇄되었던 한국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복수노조의 합법화 이후에도 다양한 노동조합이 자율적으로 사측과 교섭할 수 없도록 강제했다. 또한 사측이 민주노조를 탄압하며 입맛에 맞는 노조만 교섭대상으로 인정하고자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할 유인을 제공했다. 그렇기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측과의 교섭을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시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독자적인 교섭을 위한 ‘교섭단위 분리’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 증진을 위해 ‘진짜 사장’의 책임을 물을 교섭권이 ‘노란봉투법’의 본의대로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최근 경주에서의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구 성서공단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다 사망했다. 국제행사를 앞두었다는 이유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고, 그 과정에서 한 베트남 여성 노동자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APEC을 이유로 이수기업 불법파견과 구사대 폭력의 책임자 현대차그룹 회장이 국정감사 증인 출석 의무에서 벗어난 사실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오랫동안 한국은 이주노동자를 비인권적 노동조건으로 고용하면서도, 폐쇄적 비자 제도와 사측의 허락 없이 일터를 옮기기조차 어려운 ‘고용허가제’를 통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또 ‘불법화’해 왔다. ‘불법’ 낙인을 찍은 존재의 노동으로 지탱되는 일터에서는 폭력적인 단속, 그리고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한 죽음이 이어졌다.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구금되고 추방된 사건이 부당한 만큼,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 ‘불법화’와 권리 배제도 부당하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이직을 통해서라도 권리의 요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에 기여하는 만큼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주노동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노동자의 존엄한 삶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어떤가. ‘혁신’을 내세우며 ‘핫플’로 이름을 알린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는 청년 노동자가 과로사로 숨졌다. 장기적 야간노동의 반복이 심야시간 배송노동자의 연쇄적 ‘돌연사’를 구조적으로 조장하는 가운데, ‘로켓배송’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여 온 쿠팡은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분류 작업을 택배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에도 책임 있게 참여하지 않았다. 반복적인 중대산업재해와 과로사가 발생한 SPC그룹에서는 또다시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그룹 총수 허영인 회장에 대한 서울대의 발전공로상은 여전히 박탈되지 않고 있다. 기후재난 앞에 ‘RE100’이 선언됐지만, 조세 형평성도, 에너지와 수자원 사용에 대한 지속가능성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는 반도체특별법에선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없는 셈 치부된다. 청소년 노동자를 취약한 권력 관계에 놓이게 한 현행 현장실습 제도하에서 ‘반도체고등학교’가 우후죽순 설립된다면 권리의 예외지대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12월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소속 여러 노동조합 초・중・고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을, 여전히 명동역 앞에서 하늘에 올라 있는 세종호텔 정리해고 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을 듣는다. 1970년 11월에 안전하고 존엄하게 노동할 권리를 외치며 세상을 떠난 전태일 열사는 어디에 있는가. 대학이 책임지는 인력 충원으로 안전하게 학생복지를 지속하고자 하는 서울대생협 노동자들 곁에도, 경비실 ‘무인화’와 용역업체 간접고용 증가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대학의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이 보람찰 수 있길 바라는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곁에도 있지 않은가. 누군가 일하다 죽지 않아도 되는,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퇴근할 수 있는, 일터 앞에 민주주의가 멈추지 않는 사회를 위해, 연대하기를 멈추지 말자.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비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