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대폭인상 청년학생 노학연대 강화 문화제’ 발언문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10명 중 6명은 현재 최저임금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사실상 최저임금이 줄어들었다는 데에 동의한 비율은 80%이상입니다. 이러하기에, 피부양자가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간신히 한 달치 생활비를 버는 것이 최선입니다. 적금 등 비상시에 필요한 예비비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최저임금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우선 배달기사, 웹툰작가, 대리운전기사, 가사노동자 등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제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노동량의 상한, 하한 없이 플랫폼 회사나 서비스를 받는 사용자가 정한 금액을 받습니다. 각종 추가 수당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업무의 건당 혹은 시간당 금액에 최저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거나, 지급 기준이 모호하여 실질적으로 최저임금보다 못한 돈을 받고 일을 합니다. 같은 업종의 노동자 간에 경쟁이라도 붙으면 이전과 똑같이 일해도 손에 떨어지는 수당은 현저히 줄어듭니다.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도 법적 근로자와의 차별 없이 보험료를 지원받고, 최저임금을 적용받아야 합니다.
예술노동자 역시 상기한 노동자들과는 또 다른 특수한 지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고용보험 적용을 받으면서도 법적인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예술인은 단기간 고용계약을 반복하는 불안정 노동자입니다. 또한 작업 중 부상의 위험이 높아 산재보험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술은 노동과는 다른 것이라고 신성시되며, 예술인의 가난이 소위 ‘낭만’으로 포장되는 사회 기조가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예술인의 법적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임금을 마땅히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법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면서도 최저임금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장애인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과 노동 능력이 낮다고 낙인찍혀, 노동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책정받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생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입니다. 장애인이 여기서 예외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장애인의 ‘생산성’이 낮다는 논리는 명백한 장애인 차별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신체 능력에 따라 평가되는 생산성에 근거하여 위계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차별을 더욱 고착화할 뿐입니다.
최저임금법을 예외없이, 모든 일하는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고용형태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 오늘날,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다양한 노동에 대하여 예외를 적용한다면 권리의 사각지대는 끊임없이 커질 것입니다. 최저임금이 생활임금 수준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인상되어야 합니다. 최저임금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하더라도, 최저임금을 통해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면 무의미합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노동을 하고, 어떤 형태의 고용 관계를 맺든, 생계를 위협받지 않고 평등하게 일하며 존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과 삶에 대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자성’ 앞에 투명인간이 되고, 안전으로부터 벗어나 건강을 해치며,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생활을 유지할 없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규직’이 아닐 뿐 수많은 방식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삶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삶을 위협당하지 않고 일할 권리, 그리고 일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을 위해 노학연대 활동가로서, 또한 미래의 노동자이자 수많은 형태의 노동에 의하여 삶을 유지하고 있는 시민으로서 연대를 이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