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을 책임 있게 기억하고 연대하기 위하여

카라 노조파괴 책임자 임순례 감독의 “노무사 노무진”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연출에 부쳐


 지난 6월 13일(금)과 14일(토) MBC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은 5~6화에 걸쳐 2021년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2022년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 쟁의 당시 일부 학생의 노동조합 고소 사건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를 방영하였다. 이후 2021년 6월 26일 발생했던 안타까운 사건이 사회적인 재조명을 받았다. 우선 관심을 모아주신 시민들께 감사를 전한다.

 그런데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의 감독을 맡은 임순례 씨는 동물권행동 카라의 사측으로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카라지회(카라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2021년까지 카라의 대표를 맡았고 2024년까지 이사를 맡았던 임순례 씨는 2023년 11월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카라활동가가 전면에 나설만큼 저임금에 시달리시나요”라며 “노조비밀가입은 진짜 실망 황당”이라는 글을 임직원 단체대화방에 올리며 NGO 활동가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부정했다. 시민단체에서의 계약직과 고용불안 확산에 맞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음에도 노동조합 가입 활동가들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던 사측은 노조파괴를 위해 다양한 괴롭힘을 일삼았으며, 심지어는 사측의 주도로 복수노조를 설립하려다 고용노동청에서 설립신고를 취소당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조원 부당징계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된 이후, 현재 노동조합에 의해 노조법 위반 혐의로 고소된 상황이다.

 더군다나 현재 카라 노조가 소속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2021년 사망 사건 당시 고인이 소속되었던 노조이자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 요구를 이어온 주체이다. 지금도 많은 대학 사업장에서 이어지는, 그리고 2019년 서울대에서도 불거졌던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탄압 사건들을 생각하면, 대학 청소노동자 관련 사건을 임순례 씨가 연출하는 것이 적절한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임순례 씨가 감독을 맡은 해당 드라마에서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가 어떻게 연출되었는지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재해를 대중문화 매체에서 소재로 다루거나 장르적으로 각색하는 행위 자체를 비판하고자 함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실제의 산업재해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모티브의 각색에서는 안타까운 사건을 주변에서 경험했고 또 대응을 이어갔던 주체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재현의 윤리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하며, 특히 공중파 방송이 지니는 파급력을 고려할 때 사안의 본질을 과도하게 왜곡하거나 단순화하지 않도록, 그리고 자극적인 연출로 도구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2021년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노후한 시설과 인력 부족, 높은 노동강도를 주요한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과로사 사건이다. 강압적인 인사관리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 또한 사건의 한 원인으로서 그해 12월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임순례 씨는 “노무사 노무진”에서 해당 사건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설정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당시 공론화된 다양한 문제와 열악한 노동조건 중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만을 주요하게 부각하며 시험을 위한 과중한 공부가 사망 사건의 주 배경인 것으로 각색하였다. 또한 이를 부각하는 과정에서 인사관리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구조적인 원인을 보여주기보다 관리자 개인의 일탈적인 행위로만 보일 수 있는 연출을 다수 사용하였다. 유족의 손해배상소송에 따라 대학이 책임을 인정했듯, 대학의 구조적 책임을 규명하고 노동안전 및 건강권 보장을 위한 포괄적 조치를 마련하는 과제가 재발 방지에 중요하다. 그럼에도 “노무사 노무진”의 연출이 실제 사건의 일면을 분노의 소재와 ‘사이다’를 위해 도구화하는 데 그쳤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또한, “노무사 노무진”은 연세대의 일부 학생이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하였던 사건을 연상시키는 연출 과정에서, 청소노동자에 대한 부적절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손글씨 대자보와 이를 비난하는 수많은 포스트잇을 대비하는 연출은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보다 반목만을 과잉 재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청소노동자의 대자보를 맞춤법이 과장되게 틀린 모습으로 연출하였다. 대학 청소노동자의 투쟁이 일어날 때, ‘청소노동자’라는 존재를 과잉되게 시혜적인 시선으로 대상화하는 발화와 재현을 종종 접한다. 미화 직종으로 취직하기 이전 다양한 삶의 경로를 이어온 청소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업무의 숙련도에 대한 자부심과 일터에서 경험하는 차별 모두를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하며, 그것이 연대의 시작이다. 특정 직무를 대상화하고 이에 결부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노동권이란 중요한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무책임하다. 청소노동자에 부여된 고정관념을 보며, 동물권 NGO 활동가는 노조하면 안 되는 직종이란 듯 발화하던 임순례 씨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다시 4주기로 아픈 여름이 돌아왔다. 최근 드라마를 통해 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다시 환기하게 된 시민들께 카라 노조파괴 시도에 대한 연출자 임순례 씨의 책임을, 그리고 단순화되어 연출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의 구조적인 원인과 맥락을 알리고자 한다. 또한 한순간의 분노와 ‘사이다’를 연출하는 미디어를 넘어,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그것이 가능한 평등하고 민주적인 일터를 위해 지속적인 책임으로서 연대를 이어가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우리는 대학 내 다양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그리고 노조할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카라 노조와 함께, 지속적인 책임과 연대를 이어나갈 것이다.

25.06.24.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비/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