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무제

 세상을 바꾸겠다는 약속들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들 속에 ‘우리’가 있습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 정권이 두번이나 바뀌었음에도,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누가 대통령이었든 거리로 나서야만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억압은 사라지지 않았고, 최근에는 각 대학의 권리의제 자치기구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 중에 너와 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참사, 노동, 여성, 장애, 퀴어, 환경,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에, 서울대학교 권리의제단위들은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관악중앙몸짓패 골패: 골패는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노래인 ‘민중가요’에 맞춰 ‘몸짓’을 하는 동아리입니다. 지난 겨울, 우리는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서로에게 연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새로 다가올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광장에 나섰습니다. “존엄하게 살고 싶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외침은 결코 지워져서는 안 됩니다. 골패는 광장의 목소리가 직접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는 민주적인 사회를 꿈꿉니다. 모두가 차별과 억압에서 자유로운 세상,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골패도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서울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달: 탄핵으로 끝났다고 환호하지 마라. 고작 열여섯 시간마다 한 명의 여성이 죽음으로 우리의 곁을 떠나간다. 환호하지 마라. 동덕여대 동지들에 대한 학교의 비민주적 폭력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환호하지 마라. 성폭력 피해 학생에게 연대하는 지혜복 동지는 여전히 학교 아닌 길 위에서 투쟁한다. 환호하지 마라. 바른 여성 아닌 성노동 동지는 광장의 사람들에게조차 문란한 창녀라 돌을 맞는다. 환호하지 마라. 대학에서는 정치가 지워지고 ‘편향적인’ 권리 단위 동지들에 대한 백래시가 들끓는다. 환호하지 마라. 너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민주사회의 시민이 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묵념하라.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마라. 자격없는 모두를 위해. 투쟁으로 연대하라.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비서공): 2018년 이후 서울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이라는 반쪽짜리 전환으로 다양한 차별에 놓여 왔다. 생협에서의 이원화된 고용 구조는 인력 미충원과 노동환경 개선 미비의 원인이 되었고, 시설관리직 직군에서는 두 차례의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중대재해와 노조탄압으로 얼룩진 SPC그룹과 서울대의 관계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런 현실에서 겨울광장의 노동자와 학생은 평등하고, 안전하며, 민주적인 대학과 사회를 위해 연대했다. 간접고용,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 여성 돌봄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등 권리에서 배제되고 고공에 오르는 모든 불안정 노동자가 존엄하도록 노학연대를 확장해가자.

 빗소리: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윤석열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계속해서 커질 목소리를 기대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람을 단지 금전적 가치를 생산하는 도구로 여기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요구를 불법으로 낙인찍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 이 대학 또한 그러한 노동에 기대어 존재한다는 사실, 여러 얼굴의 노동자가 이곳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과 산업재해가 멀리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곳 서울대에 존재하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빗소리는 앞으로도 노동자가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임을 알리고, 학내 서로 다른 노동자가 공유하는 노동자성을 드러내는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서울대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 대학은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지식을 생산하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노동의 공간이다. 대학의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지난 겨울 광장에 나섰던 학생과 연구자들은 다양한 학문을 교육받고 연구할 수 있기를 원한다. 학술생태계 다양성 속에 학문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리가, 비판적 학문의 자리가 존재하길 원한다. 비적유교수를 비롯한 연구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되고, 학문후속세대가 불안정에 시달리지 않기를 원한다. 그런 대학은 기업화된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공공성에 기반할 때에만 가능하다. 마르크스경제학 폐강 반대를 위한 투쟁은 그렇기에 한 대학만의 요구가 아니라, 윤석열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대학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싸움이다.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QIS: 큐이즈는 이성애중심적 사고와 설별규범에 불편함을 느끼는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성의 구성원들을 위한 동아리입니다. 탄핵 광장의 주축이었던 성소수자들은 이제 진정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차별과 혐오의 발언이 멈추는 세상, 원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미래를 꿈꾸는 세상, 성별이분법적 규범을 강요받지 않는 세상을 바랍니다. 큐이즈 밖의 세상에서도 모든 이가 안전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그날까지 큐이즈는 피난처로서, 놀이터로서, 만남의 장으로서, 삶의 터전으로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 우리는 계엄 이전까지 ‘나와는 상관없는’ 투쟁을 외면하며 만들어진 평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국가의 폭력이 드리운 순간, 그 폭력에 가장 먼저 대항한 이들은 투쟁의 일선에 서 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100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국가폭력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투쟁을 세상에 알렸고, 세상은 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의 탄핵이 우선이라며 그들의 문제 해결을 ‘다음’으로 미뤘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파면된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다음’을 외칠 것인가? 탄핵은 일단락되었지만, ‘다음’이 된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우리는 더 이상 ‘다음’을 기다릴 수 없다. 연대의 힘을 실감하게 된 지금, 함께 ‘다음’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