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경제학 강의 개설 촉구 기자회견 연대사



 저희 비서공은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를 위해 노학연대 활동을 이어 온 단위입니다. 연구노동자 또한 우리 대학 공동체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해 온 노동자입니다. 불안정노동이 만연한 대학 강의실에서 어떠한 지식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 고용마저 불안한 비정규교수의 발언권은 너무나 제한적입니다. 더군다나 다양한 학문이 존중받고 뿌리내릴 수 없는 대학에서 ‘주류’에서 벗어나 비판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에 기여하려는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노동자들은 더욱 불안정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학술생태계가 획일화되고 연구 및 교육노동자의 권리가 불안해질 때, 원하는 학문을 공부할 학생의 교육권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대학과 상호작용하는 시민사회 다른 구성원들의 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의 관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데 연대하는 이유입니다.

 동시에 ‘노동’이라는 의제가 사회에서 지니는 역할에 대한 고민 속에서, 마르크스와 그 후학들의 이론과 실천이 비가시화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을 바라보는 유일하거나 특권적인 관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과 재생산 속에서 ‘노동’이 어떻게 주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일하는 존재의 권리를 보장하고 또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어떠한 사회적 투쟁이 이어져 왔는지 고찰할 때, 마르크스와 그 후학의 관점을 우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터와 삶터에서의 노동과 민주주의에 대해, 노동자의 조직화와 그 정치적 역할에 대해, 산업사회의 사회경제적 변화 속 일의 변형에 대해, 그리고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이 젠더・장애・인종에 따른 차별과 위계화 및 생태적 위기와 어떻게 결부되는지에 대해, 마르크스와 전혀 다른 이론적 정향에서 학술과 실천을 모색한 많은 이들도 마르크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참조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가 정치 및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그 속에서 노동권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지 모색하는 과정에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중요한 관점을 침묵시킬 순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학을 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에게 왜 마르크스 경제학이 필요한지 묻는다면,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의 폐강은 결코 한 전공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경제’를 둘러싼 사회와 정치와 역사가 하나의 분과학문만의 연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나 자명합니다. 한국 사회는 식민주의로 인해 오랫동안 지구적으로 ‘주변부’의 위치를 강요당한 가운데 그 위치를 규정하는 권력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서구와 비서구의,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살펴왔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근대성을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 그리고 근대성 속의 ‘발전’과 ‘성장’이 새롭게 부과한 억압과 폭력에 어떻게 저항할지 고민하는 데 경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중요한 참조의 지점이 되어 왔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주변부’의 소외만이 아니라 ‘중심부’의 가해를 스스로 고민할 때가 되었지만, 그 참조의 지점으로서 마르크스가 지닌 가치는 빛바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의 연구노동자가 권리를 보장받는 가운데 다양한 비판적 고민이 마주치는 대학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노동’이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지구적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의 개설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많은 구성원이 개설을 원하고 있음이 그동안의 수요조사를 통해, 그리고 이번 연서명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부 교과위원회의 응답을, 그리고 대학본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