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 기고: ‘비정규직 백화점’ 서울대에서 노학연대를 외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025년 5월호(통권 제261호)

 불과 10년 전 서울대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이었다. 2016년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파견・용역・시간제・기간제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불안정노동이 있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도서관・어린이집 이용을 막는 등 다양한 차별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 해에 대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비학생조교’들이 조교가 아닌 직원으로서의 직위를 인정해 달라는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행정직원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기에 그와 동일한 고용안정을 요구했으나, 서울대학교 본부는 고용안정을 대가로 근속연수 초기화 및 임금 삭감을 역으로 요구했다. 이에 비학생조교들은 2017년 5월 15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그 무렵 서울대에서는 학생들의 주도로 시흥캠퍼스 반대 투쟁이 진행 중이었고, 비학생조교들과 학생들은 상호 투쟁 현장을 방문・연대했다.

 2017년 5월 12일, 당시 대통령 문재인은 제1호 국정업무지시로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열겠다”고 선언하였다. 2018년 2월, 서울대학교 본부는 시설관리직이라는 직군을 만들어 그동안 용역하청 간접고용이었던 청소・경비・기계・전기 노동자들을 직고용했다. 당시 총장 성낙인은 ‘비정규직 제로’ 시책을 선제적으로 완수했다고 자평했으나, 고용만 안정되었을 뿐 임금체계와 복지후생에서의 차별은 여전했다. 또한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가 늦게 열려 심의위원회 개최 전에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 노동자들은 해고당하는 등 시행에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서울대학교 본부가 시행한 것은 ‘정규직’이 아닌 ‘중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의 반쪽짜리 정규직화였다.

 반쪽짜리 정규직화에 대한 문제의식 하에 2018년 3월, 서울대학교 사회대학 학생회의 주도로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들, 동아리를 비롯한 학생단체와 노동조합들이 가맹한 연대체로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이 발족되었다. 발족 당시의 비서공은 가맹단위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성격의 전체회의와 집행위원회가 병립하는 전형적인 연대체 체제였다. 대표자 명칭을 ‘학생대표’로 정한 것에는 학생 활동가 중에서 대표를 세우지만 이 연대체의 구성원이 노동조합까지 포괄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직 형태는 변화를 겪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학생사회가 위축되고 가맹단위가 줄어들며 연대체 성격이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전체회의는 유명무실화 이후 폐지되고, 비서공 집행위원회 자체가 하나의 동아리처럼 작동하며 가맹단체보다 개인회원들 위주의 활동으로 운영되게 되었다. 현재 비서공은 활동 기획과 집행에 참여하는 활동회원(구 집행위원)과 활동 소식을 전달받고 기획된 활동에 참여하는 연대회원(구 후원회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2025년 기준, 20여 명의 활동회원과 130여 명의 연대회원이 비서공과 함께하고 있다.

 2021년에 인준된 비서공의 활동 기조는 “학교가 책임지는 차별 없는 진짜 정규직화”다. 2018년에 본부가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서울대학교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아직 미완이며, 여전히 유무형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불안정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당장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서울대학교의 ‘자체직원’에 대한 수당 미지급 차별이 부당하다는 2심판결이 나왔는데, 학교 본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의 자체직원은 ‘총장발령 법인직원’이 아닌 다른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한다. 법인직원은 소위 말하는 정규직이다. 자체직원은 법인직원과 동일한 공간에서 노동함에도 불구하고 고용형태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발령 기관에 따른 처우가 제각각이며, 그 수가 매우 많아 차별적 대우를 모두 파악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예산권을 가진 서울대학교 법인과 자체직원을 발령한 산하기관들이 차별시정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실상이다. 때문에 비서공은 법인직원과 자체직원으로 이루어진 서울대학교의 이원적 고용구조에 대해 학교 본부의 책임을 묻고, 이를 일원화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비서공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비서공의 가맹단위이기도 한 학내 민주노조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뤄진다. 현재 서울대에는 행정사무 자체직원과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이하 서울대생협)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청소・경비・기계・전기 노동자를 포괄하는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지회, 그리고 2025년 들어 새로 출범한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지부 서울대분회가 있고, 세 노조 모두 비서공에 가맹하고 있다. 비서공은 매 학기 노조를 방문해 전임자들에게 현안을 듣고 노조의 투쟁 방침 혹은 집중하고 있는 사안을 공유받는다. 이때 비서공 학생회원들이 사업 전개 과정에서 혹은 일상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접촉하며 얻은 정보나 고충을 전임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비서공이 광장에 들고 나가는 검푸른 단체 깃발 아래에는 ‘NEVER FORGET 🎗2019 🎗2021’이라고 적힌 검은 추모기가 함께 달려 있다. 2019년과 2021년은 302동 제2공학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과 925동 학부생기숙사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을 겪은 해였다. 더운 여름철에 부실한 휴게공간과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유발된 사건들이었고, 특히 2021년에는 대학본부가 직장내괴롭힘에 대해 꼬리 자르기로 일관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또한 2019년과 2021년은 과중한 노동량과 기형적 임금체계하에서 혹사당하던 서울대생협 노동자들의 두 차례 전면파업, 학교가 먼저 지노위 중재를 거부하여 정당하게 파업했으나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악마화당한 기계・전기 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무기계약직 전환 조건을 둘러싼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원들의 쟁의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모든 사안에서 비서공은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연대했으며, 일련의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경험들은 당시 학생회원들에게 노동자들과 실제로 연대하는 행위가 어떠한 것인지 배우고, 학교 책임성의 구체성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잊을 수 없는 2019년과 2021년 두 해, 비서공이 주관하거나 참여한 학내 집회와 기자회견에서는 “당신의 노동은 우리의 일상입니다”라는 구호가 자주 호명됐다. 학생식당을 이용하고, 기숙사에서 거주하고,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일상은 조리노동자・청소노동자・경비노동자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다. 비서공은 항상 이 점을 명확히 하며 노학연대체로서 노동자・노조와 학생 사이를 매개하고자 노력해 왔으며, 대학 노동자들의 쟁의가 학생들의 지지 없이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노학연대는 지속되어야 한다. 학생 개인에게 있어서 노학연대의 시작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연민・동정・분노에서 기인할 수 있다. 그러나 비서공은 정념이나 시혜를 넘어서 진정 평등한 연대로서의 노학연대를 만들고자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 가령 서울대생협의 인력 부족은 조리노동자들의 노동강도에 직결된 문제이지만, 인력 부족으로 인해 학생식당이 폐쇄되면 학생들의 생활에 불편을 겪게 된다. 이처럼 서울대학교라는 공동체를 공유하는 구성원인 우리의 생활과 권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비서공이 추구하는 노학연대란 평등하고 안전하며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고, 그 평등과 존엄을 학교 밖 사회 전체로, 나아가 세계 전체로 확장하는 실천의 시작이다.

 2022년 이후에는 학내에서 큰 쟁의가 없어 다각적인 일상사업들을 진행해 왔다. 서울대 내부의 노동환경에 대한 연구조사, 이를 외화하는 전시회・토론회・강연회 등 서울대 노동현안을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는 행사들를 기획・주관해 왔다. 최근에는 2019년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이후 큰 쟁점이 되어 온 노동자 휴게공간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겨울방학 동안 수집한 정보를 외화하기 위해 중앙도서관 옥외 전시 게시판에 전시를 진행했다. 이를 더 구체화한 연구 중간발표회를 5월 중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과 더불어 매년 가을에는 사업 과정에서 수집된 정보들을 토대로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 질의서나 정보요구서를 보내는 국감 대응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밖에 학내 노동현안이나 비서공 활동을 보고하기 위한 SNS 운영이나 학내외 언론대응 등의 선전사업도 상시적으로 진행된다. 그밖에 색다른 형태의 사업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이후, 학내 경비노동자 두 분의 2교대 업무를 담은 단편영화 〈교대〉의 촬영에 참여했고, 사망사건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2022년 해당 영화의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2023년에는 전태일 열사 53주기 전시회를 쿠팡 로켓배송 상자를 모아 쓰러진 노동자를 형상화한 모습과 영정 사진 형태의 전시물을 만드는 설치미술 형태로 진행해 보았다.

 학외사안에 연대하는 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부당노동행위와 산재사망사고로 시민들의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제과제빵재벌 SPC는 서울대학교와 산학협력, 건물 쾌척 등으로 긴밀하게 유착해 있으며, SPC 회장 허영인이 제1회 서울대학교 발전공로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비서공은 2022년부터 이러한 문제를 알리는 대자보를 부착하고 추모집회에 동참하는 등 사업을 진행했고, 현재도 서울대와 SPC의 산학협력 및 학내 입점에 대해 본부와 총학생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시민사회 긴급행동’에 가맹하여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고공농성 사업장 투쟁문화제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행하고 있는 인종학살에서 드러나는 불평등과 일하는 사람이 겪는 권력의 불평등은 무관하지 않으며,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요구가 더 평등한 지형에서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우리의 연대로 돕는 것은 학내에서 진행하는 노학연대 사업의 지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에 발족된 비서공은 올해로 8년 차를 맞는다. 지금까지 9명의 학생대표와 수십 명의 집행위원들이 비서공 집행부를 거쳐 갔다. 이제 2019년과 2021년을 경험한 구성원들이 모두 졸업하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세대가 바뀌는 전환기를 어떻게 맞아야 할지 고민하고 길을 모색하고 있다. 매년 학생들이 입학하고 졸업하는 대학에서 세대교체를 걱정하는 것은 모든 학생단위의 숙명이지만, 특히 노학연대라는 의제에 있어서는 그 지속가능성을 구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2019년과 2021년에 있었던 일련의 쟁의와 산업재해 사건들은 당시의 학생회원들에게 노학연대의 구체적 경험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책임감의 계기를 제공했으나, 앞으로는 당연히 그런 일들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극적인 투쟁의 현장이 열리지 않고 있는 일상 속에서도 노학연대의 계기를 찾을 수 있어야 우리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 그런 계기를 찾기 위해 노동자와 학생의 일상이 맞닿는 사업들을 기획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서울대생협 조리노동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돌봄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밥상회’를 먹거리운동모임 ‘이야기가 있는 숲’과 공동주관했고, 작년 2학기부터는 대학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생활스포츠를 함께 배우는 문화연대의 ‘호호체육관’ 사업을 유치해서 주관해 왔다.

 한 공동체의 일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행위는 당연한 것으로 치부될 수 없는 위대한 것이다. 비서공은 그 일상을 만드는 노동자들과 연대해 왔고, 앞으로도 연대하고자 한다. “당신의 노동은 우리의 일상”이라는 구호처럼, 2019년과 2021년에 우리는 투쟁 속에서 일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는 반대로 일상 속에서 투쟁을 발견하고자 한다. 청소노동이 비가시화되고 경비노동이 축소되며 조리노동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이 일상과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는 투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대학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모으는 노학연대로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내일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