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소위 오픈세미나 ‘빛의 광장에서 움튼 정치의 미래’ 발제문


겨울 광장의 노동조합과 노동권, 이제는 일터로 삶터로


 안녕하십니까?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약칭 비서공)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양사 전공 학부생 이재현이라고 합니다. 비서공은 학소위의 구성단위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학내에서 노동자들과 소통하며 노동권 의제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노동권의 확장을 위해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 노학연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의 광장에서 노동조합의 능동적인 역할, 그리고 ‘노동자’와 ‘시민’을 분리해 온 경계선을 넘는 연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많은 ‘시민’이 동시에 일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하는 ‘노동자’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분리가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사회에 자리 잡아 왔다는 사실은 놀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에 뒤이은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이 ‘민주주의’를 일터로 확장하며 지금의 중요한 권리들을 구성해왔지만 역사적으로는 기억 속에서 비가시화되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민주주의와 노동권을 분리하고 때로는 후자를 불온시해온 통치의 논리는 오랫동안 우리 속에 내면화되어 왔습니다. 박근혜 탄핵을 이루어낸 광장은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를 통해 열렸으며 그 이후 많은 수의 여성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화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하에서 건설노조와 화물연대 탄압이 발생할 때, 노동조합에 대한 폭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은 충분히 사회적으로 인지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겨울 광장에서 ‘말벌’로 호명되는 많은 연대자들이 여러 고공농성 사업장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노동조합에 대한 타자화와 우리 안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있는 모습은 무척 고무적입니다.

 한편, 비정규직이 만연화된 조건에서 불안정노동의 형태 자체도 다양화되었기에, ‘노동자’임에도 ‘노동권’을 자신의 권리로 인지하기 어려운 현실은 분명 존재합니다. 노동자운동은 다양한 방식의 조직화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 진짜 사장 ‘원청’이 책임을 회피하는 간접고용 용역・하청・파견 노동자, ‘자영업자’로 간주되어 개별화된 채 노동권을 부정당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더해,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었으며, 화물노동자의 파업할 권리에 대한 탄압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쟁취해 온 ‘노동자성’ 자체를 형해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 연대하고, 플랫폼 자본의 알고리즘 통제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안전과 건강권에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라이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은 변화한 현실에서 일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청년 연대자들이 5인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요구해가는 모습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이제 겨울 광장에서 만난 노동조합과 노동권을, 우리의 일터와 삶터에서 찾아보고 또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또 생활하는 서울대를 돌아볼까요? 2017~18년경 ‘정규직화’를 단행했다고 주장하는 서울대이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머물렀음은 물론이고, ‘무기계약직’인 ‘자체직원’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일상적인 차별에 놓여 있습니다. 최근에 동일노동을 하는 자체직원과 총장발령 정규직인 법인직원 간 임금 및 수당 차별이 부당하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는데, 총장발령과 각 단과대 및 기관장발령으로 이원화되고 파편화된 고용구조는 사회적인 간접고용의 구조를 캠퍼스 내에서 재생산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죠. 한편 대학의 일상을 유지하는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돌아보면, 2019년과 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과제들이 충분히 달성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관리에서의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구조적 해결은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사측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인력 충원이 있어야 안전한 노동강도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죠. 서울대생협 단체급식 학생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과 21년의 파업을 통해 음식을 조리하는 노동자에게 차별적인 식사가 제공되는 현실을 바꾸는 등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식당에서만 열댓 명의 인원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인력 충원이 단행되지 못하면 노동자의 건강권도 학생복지의 지속가능한 유지도 불가능하게 될 겁니다. 노동조건의 개선과 이를 통한 인력 충원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우리의 일터와 삶터에서 노동권을, 그리고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함께 만들어왔습니다. 학내 노동자들의 투쟁에, 그리고 사회적인 투쟁에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하면서, 노동자와 학생 사이의 ‘갈라치기’에 맞서 모두의 권리가 함께 보장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힘 보태왔습니다. 반복되어서는 안 될 ‘사소하지 않은 죽음’들을 기억하고, 추모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동안전과 건강권 관련 활동을 이어왔죠. 또한 일상 속에서 노동자와 학생의 연결을 만들어가기 위해, 생활 속의 노학연대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경비노동자들의 ‘교대’ 일상을 담아 함께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학내 휴게공간의 질적 개선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있습니다. 먹거리운동가들과 함께 여성 농민들이 생산한 먹거리를 생협 조리노동자들과 나누었고, 밥상회에서 ‘더 나은 식사’를 주제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호호체육관’을 통해 청소노동자들과 탁구 및 배드민턴을 함께 배웠고, ‘스포츠권’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권리로 만들어가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광장과 거리의 민주주의는, 일터와 삶터의 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광장의 목소리와 요구를 우리의 일상에 심고, 생활 속의 부당함에 대항하는 요구를 거리의 외침으로 함께 확장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5월 1일이 노동절이 다가옵니다. 전날인 4월 30일 밤, 조선업 하청노동자가 생활임금과 노조할 권리를 위해 고공농성하고 있는 한화빌딩 앞에서 청년학생이 연대하는 노동절 전야제가 열립니다. 많이 함께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