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를 고발한다

‘서울대 내 마르크스 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 연서명에 연대하며


 지난해, 서울대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는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 교과목들의 개설을 “강의 수요/공급 상황”을 근거로 중단하였다. 고 김수행 교수 이후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가 전임교원으로 임용되고 있지 않은 실정을 고려할 때에, 이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의 종적을 지우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학생들은 연서명과 비판 성명, 피켓 시위 등을 통해 작년부터 이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교과위원회는 오직 침묵으로 학생들의 요구에 응답하였다.

 2024년 9월과 2025년 3월 실시된 서울대학교 내부 교과목 수요조사 결과가 나온 지금, 우리는 교과위원회의 명분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인지 안다. “수요”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폐지가 예고된 교과목들은 모두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수강을 희망하였고, 해당 강의 담당 비정규교수 역시 계속해서 “공급”할 의사가 있다. 경제학부 교과위원회에 묻는다. 마르크스경제학 과목이 폐지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학생들의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교과위원회의 독단을 고발한다. 교과위원회는 학생들의 “수요”를 근거로 마르크스경제학 과목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에 학생들이 그 결정에 반대하며 피켓 시위와 연서명을 진행하였을 때에, 교과위원회는 그들이 “소비자”로 규정한 학생들의 의사를 듣고 있었는가? 올해 9월, 내부 교과목 수요조사 결과 21명의 학생이 「정치경제학입문」을 수강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는 어땠는가? 더 나아가 학문과 교육의 공간인 대학이야말로 소수학문의 자리를 보장하며 학술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혁신을 일구어나가야 할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학문의 존속 여부를 재단하려는 교과위원회의 태도는 과연 올바른가?

 우리는 비정규교수의 의사를 무시하는 교과위원회의 독선을 고발한다. 연구자는 대학에 고용된 노동자임과 동시에, 자신이 전공한 지식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며,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고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 이후, 후임 전임교수를 임용해 다양한 분야 연구자의 학문생태계를 보장하라는 교육노동자의 목소리는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 비전임교원으로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오랫동안 강의해 온 현 교육노동자의 권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학문과 교육을 그저 판매해야 할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교과위원회를 고발한다. 교과위원회는 “교과과정 운영과 수요/공급 상황” 이외에 마르크스경제학이라는 분과가 서울대학교에서 종적을 감추어야 할만한 어떠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연구와 배움의 장인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말아야 할지가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만 결정되었는가? 아울러 현실과도 합치하지 않는 그런 이유로 마르크스경제학을 과연 더는 연구되지도 교육되지도 말아야 할 분과로 간주해도 되는가? 경제와 사회 및 정치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와 그 후학들의 시각에 대해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그리고 사회 내의 다양한 모순과 투쟁을 고찰한 이론과 실천의 흐름은, 마르크스의 후학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학문적 및 정치적 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노동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젠더적 차별과 혐오에 대해, 지구적인 이주와 인종주의에 대해, 기후재난과 생태의 위기에 대해 고민할 때, 마르크스의 분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또 적용하는 일은 여전히 유의미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우리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과위원회에 묻는다. 노동과 생활의 공간이자 교육과 학문의 공간인 대학은 학생과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권리가 반영되어야 할 공동체가 아닌가? 아울러 다양한 학문적 사조와 경향이 비판적 토론을 통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과제에 대한 대책을 공동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공간이지 않은가? 그런 대학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독선과 독단이 아니라 구성원의 목소리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요구한다. 학생과 비정규교수의 요구를 수용하여, 마르크스경제학 관련 강의를 조속히 다시 개설하라. 이를 통해 학생의 교육권과 교육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다양한 학술적 논의가 오가는 교육공동체를 만들 의무를 다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