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광장에서 다시 만난 우리 곁의 노동권
지난겨울 비상계엄 이후의 광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노동’의 목소리를 마주쳤습니다. 일터와 삶터에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묻는 목소리들이었습니다.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들의 외침은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일할 권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대학을 유지하는 청소 등 시설노동자, 생협 식당과 카페 노동자, 각 기관과 단과대 자체직원 노동자들의 삶과 요구는 오늘의 광장과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요? 우리 학교생활 곁의 ‘노동’에 대해 알아보고, 일상과 광장을 이어가기 위해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광장의 이야기: 겨울 광장에서 외쳤던 이야기들, 대학에서도 함께 이어가요
작년 12월 비상계엄 이후, 우리는 퇴진 광장에서 다양한 색깔의 깃발과 많은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이 차별과 ‘갈라치기’를 넘어 우리 일터와 삶터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써나가는 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습니다.
12월 3일 밤의 비상계엄을 처음으로 맞닥뜨렸고 계엄 해제를 위해 앞장섰던 이들은 국회 앞에서 농성하고 있던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비상계엄 이전에도, 노동시장 불평등 속에서 취약한 조건을 극복하고자 투쟁해 온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권하에서 극심한 탄압을 마주해 왔습니다.
‘진짜 사장’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요구해온 구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간접고용’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공권력 투입 위협과 손해배상 법정 공방을 직면했습니다. 사측의 지시에 따라 일함에도 명목상 ‘자영업자’로 간주되어 온 ‘특수고용’ 화물노동자들은 업무개시명령으로 파업할 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중층적인 재하청과 불안정한 일용직 계약 앞에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으로 권리의 바닥을 쌓아 온 건설노동자들은 ‘공갈범’으로 몰렸고, 탄압에 항거해 2023년 노동절에 양회동 열사가 분신했습니다.
비상계엄 이전에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온몸으로 경험해 온 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계약직, 간접고용, 특수고용과 플랫폼・프리랜서 노동 등 다양한 형태로 노동해 온 존재들은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고 일할 권리를 외쳤습니다. 일상을 재생산해 온 노동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라는 여성 돌봄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외침도 울려 퍼졌습니다. 노동과 연결된 다양한 의제와 요구들이 서로를 가로질렀습니다.
교육과 연구의 공간이면서 일터이기도 한 대학에도, 우리 곁엔 다양한 노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노동조합 탄압과 산업재해로 얼룩진 SPC그룹의 이름을 딴 건물이 ‘산학연협력’의 상징으로 서울대에 위치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 사회의 모순과 우리의 일상이 이어져 있다는 감각은 대학 구성원들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광장과 일상에서 ‘노동’과 ‘노동권’을 다시 만난 우리는, 노동을 화두로 광장과 대학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그 길에서 우리 자신의 권리와 존엄 또한 발견할 수 있길 바랍니다.
생협 노동자 이야기: 잘 몰랐지만, 늘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왔던 노동
1년 전 3월, 새 학기를 맞은 서울대생활협동조합 학생식당 조리노동자들은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었습니다. 대학이 책임지고 인력을 충원해서 노동강도가 낮아져야 노동자 건강권이 보장되고, 학생복지도 지속 가능하게 유지될 수 있단 겁니다. 1인당 200~400인의 식수를 감당해야 하는 높은 노동강도와 미진한 조리실 시설 개선은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 등 각종 직업병의 위험에 노출되게 만들어왔습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처음이 아닌데요, 2019년 파업에 이어 2021년의 파업을 통해서도 노동조건 개선과 인력 충원의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감축된 인원이 복구되지 않았고, 저임금과 차별, 높은 노동강도로 단체급식 식당에서 퇴직이 발생하며 구인이 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서울대의 복지를 지탱하지만 ‘별도 법인’이란 이유로 마치 외주화된 노동자처럼 서울대 직원과 차별적 대우에 놓인 생협 노동자들. ‘협동조합’이라지만 사실상 모든 대학 구성원의 복지를 책임지는 기관이기에 대학이 직접 책임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울대 부총장이 당연직으로 이사장을 맡는 등 대학이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음에도 ‘별도 법인’이라며 재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학식을 비롯한 구성원 복지의 질 저하와 지속성 훼손으로 이어집니다. 노동권과 학생의 생활권 모두를 위해 대학의 재정적 책임과 생협 ‘직영화’를 요구해온 이유입니다.
2024년 비서공은 조리노동자분들과 밥상회에서 따뜻한 한 끼를 나누며, 안전한 노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숲’의 먹거리운동가분들이 여성농민들의 생태적 먹거리를 준비해주신 덕분이었습니다. 2021년 파업 승리 이전까지 생협 조리노동자들은 현물로 제공받는 식사에서 메인메뉴는 지급받지 못해 왔습니다. 우리의 식탁을 돌보아 왔음에도 식탁에서 차별을 받아온 노동자들과 이야기하며, 밥상을 매개로 한 상호의존성을 실감했습니다.
내년 정년을 맞는 분이 10명이 넘어 학생식당의 유지가 무엇보다 걱정이라는 노동자분들. 일상 속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더 잘 알아가며 연대를 시작할 때입니다.
시설관리직 이야기: 학교를 더 안전하게 바꾸어 갈 노동자와 학생의 노학연대
2019년 여름, 폭염 속에 열악했던 공대 휴게공간에서 한 청소노동자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1년 여름, 높은 노동강도 속에 관악학생생활관의 한 청소노동자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휴게공간 개선, 인력 충원, 인사관리 개선, 보직교수들의 부적절한 발언 사과를 요구하며 추모와 재발 방지를 위한 목소리가 모였습니다. 2021년 사망 사건의 산업재해 인정 이후, 유족분이 서울대에 책임을 인정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대학이 손해배상을 이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앞으로 “사소하지 않은 죽음”을 기억하며, 모두가 안전하게 퇴근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편, 학내의 경비실 중 늘 불이 꺼진 곳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정년퇴직 인원이 발생할 때 신규 인원을 뽑지 않는 형태로 경비노동자 인력 감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과대 당 한 군데의 경비실만 남아 2인 2교대로 여러 건물을 한 사람이 감당하는 구조입니다. 과연 ‘무인화’와 ‘자동화’가 충분히 학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남아있는 경비노동자분들의 노동강도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여전히 대학 시설노동자를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 계약직으로 사용하는 많은 대학과 달리, 서울대는 2018년 직고용 무기계약직 전환을 통해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청소・경비・기계・전기・소방・통신・영선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와 수당 등 차별 시정은 매우 미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몇몇 기관들에서부터 기간제 계약직 채용과 용역업체 간접고용이 다시 확장되고 있습니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이 이러한 고용 불안정에 놓여야 할까요?
많은 한계와 함께 새로운 난관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의 대학을 조금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들어 온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노동자와 연대하는 학생들이 구축한 관계였습니다. 노학연대가 시작되는 관계는 일상 속에서 비롯됩니다. 올해 비서공에서는 학내 휴게공간을 전수 조사하며 개선된 측면과 부족한 측면을 정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시설관리직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 스포츠를 배우는 “호호체육관” 프로그램도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함께하는 작은 용기가, 더 나은 학교와 사회를 위해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자체직원 이야기: 일터의 차별과 위험을 넘어 평등한 권리를 만들어가는 길
지난 2월, 서울대의 ‘자체직원’ 노동자들이 제기한 임금 차별 시정 소송에서 2심 승소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대 정규직인 '법인직원'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무기계약직으로서 임금과 수당 등 많은 차별을 받아온 자체직원 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겁니다. 그런데 ‘자체직원’은 어떤 직원을 의미하는 걸까요?
서울대에서는 많은 기관과 단과대에서 기관장 및 학장발령으로 ‘자체적’으로 직원을 뽑아왔고, 그런 노동자들은 ‘법인직원’과 동일한 사무실에서 동일한 업무를 오늘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극심한 차별과 고용 불안정에 놓였던 노동자들은 2018년을 즈음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차별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호칭 차별, 직원 카드와 코드 차별, 연가보상비 미지급 등이 공론화됐고, 기관마다 노동조건이 천차만별인 경우도 많습니다.
상시적인 고용불안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무기계약직 전환 또한 오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2017년에는 ‘비학생조교’ 노동자들이, 2019년에는 글로벌학생사회공헌단 노동자들이 투쟁 끝에 기간제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습니다. 어학연수생을 교육하는 언어교육원의 한국어교원 노동자들은 교원으로서도 직원으로서도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왔기에 생활임금을 위해 5개월에 걸쳐 투쟁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자체직원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에도 총장발령이 아닌 기관장발령이라는 파편적이고 이중적인 고용구조 속에서, 원청으로서 대학본부의 책임을 요구해왔습니다. 서울대가 이번 2심판결을 수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본적으로 총장발령 전환을 통해 '진짜 사장'으로서 발령주체 일원화로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행정사무 업무에 종사하는 자체직원 노동자들만의 요구가 아닙니다. ‘중규직’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을 넘어 대학 공동체 구성원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란 건 시설관리직 노동자와 생협 노동자의 외침이기도 합니다. 교육권과 생활권, 의사결정에의 참여권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와도 맞닿아 있지 않나요? 노동자와 학생 모두의 권리를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길은, 우리 자신의 시민권을 재구성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학생회관 옆,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다 보이는 24동 지하로 뚫려 있는 터널,
뭐 하는 곳인지 아시나요?

이 깊은 터널은 24동 아래를 지나서, 63동 학생회관 지하로까지 이어집니다.
학생회관 1층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학생회관 지하에는 서울대생협 학생회관식당 조리실과 조리노동자들의 휴게실, 샤워실이 위치해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 너머에 숨겨져서 학생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 휴게실은 넓이가 5평 남짓. 원룸보다 작은 공간에서 스물네 분 조리노동자가 휴식을 취합니다. 눕는 것은 고사하고 다리 뻗을 공간조차 없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식당 운영이 축소되면서 인원이 줄어든 것이지 그 이전에는 쉰 분이 5평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5평 넓이에 24명은 여전히 많은 수이고, 인력부족으로 인해 1인당 노동강도만 두배가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위험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이곳은 109동 자하연식당 조리실 안쪽에 위치한 조리노동자 휴게실의 문간입니다. 네 평 남짓에 열여덟 분이 휴식합니다. 이곳은 다른 식당에는 있는 장화 수납공간이 없고 공간도 협소해서 이렇게 문간에밖에 장화를 둘 곳이 없습니다.
문간에 쌓여 있는 장화 때문에 여닫이문이 충분히 열리지 않아서, 다 열리지 않는 문틈으로 비집고 나가거나 쌓여 있는 장화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휴식에 도움이 되는 집기를 추가로 둘 공간이 없을 정도로 너무 협소한 휴게실. 문이라도 미닫이문으로 바꾸면 조리노동자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작고 일상적인 데서부터 개선의 여지는 발견됩니다.
서울대 노동자들과 비서공이 함께한 길
| 2017년 5월: | 비학생조교 파업, 무기계약직 전환. |
|---|---|
| 2018년: |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시작, 서울대에서도 용역업체 시설관리직의 직고용 전환 및 자체직원 무기계약직 전환 진행.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각지대와 차별 발생. 이를테면 전환 심의위원회를 거치기 전 많은 기관 자체직원이 계약 만료되어 학교를 떠나야 했음. |
| 2018년 3월: |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이 책임지는 ‘차별 없는 정규직화’와 실질적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결성. |
| 2019년 1~6월: |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원 투쟁, 무기계약직 전환 및 생활임금 보장. |
| 2019년 2월: | 임금과 복지 개선을 위한 기계・전기 노동자 파업. 일부 보직교수와 언론에서는 학생과 노동자를 ‘갈라치기’하며 투쟁을 비난하며 사회적 논란이 됨. |
| 2019년 2~3월: | 글로벌사회공헌단 노동자 투쟁, 무기계약직 전환. |
| 2019년 6~9월: | 서울대병원 노동자, 파업을 통해 여러 직군이 함께 정규직 전환 쟁취. |
| 2019년 8월: | 공과대학 302동 열악한 구 휴게공간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발생. 재발 방지 요구 속에 2년에 걸쳐 시설관리직 휴게공간에 대한 개선이 진행. |
| 2019년 9월: | 30년 만의 생협 조리 및 카페 노동자 파업. 샤워실 개선 및 브레이크타임 확보. |
| 2019년 9~10월: | 노동조합 탄압에 맞선 청소・경비 및 기계・전기 노동자 단식 및 삭발 투쟁. |
| 2021년 6월: | 높은 노동강도 속에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발생. 이후 산업재해로 승인됐으며, 손해배상소송에서도 대학의 책임을 인정. |
| 2021년 10월: | 생협 노동자 파업으로 임금체계 개선 및 식사 차별 시정. |
| 2022년 5~12월: | 노조탄압 및 중대재해 기업 SPC 규탄 투쟁이 서울대에서도 진행. SPC 농생명과학연구동과 허영인 세미나실, 허영인 발전공로상 등에 문제를 제기하였음. |
| 2022년 11월: | 서울대병원 및 보라매병원에서 인력 충원 및 의료공공성 요구 파업. |
| 2024년 3월: | 생협 조리노동자들의 인력 충원 요구 피케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