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 기고문: 우리는 투쟁과 일상의 경계를 짚을 수 없다


 당신의 일상은 얼마만큼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가? 현재 일반 사무직의 근무 시간은 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다. 1인 가구를 기준으로, 퇴근 후 저녁 시간에는 밥상을 차려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일과가 끝나면 다음 날 9시 출근을 위해 취침할 시간이 된다고 한다. 전부 일상을 지탱하는 것에 필요한 행위지만 이에 들어가는 시간이 적지 않다. 이러한 형태의 ‘일’, 즉 돌봄은 오랫동안 가정주부의 전유물로 인식돼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식사를 차리거나 청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노동은 지금도 평가 절하되기 십상이다. 누군가의 일상 유지에 필수적인 돌봄 노동인데도 말이다.

 6월, 먹거리 운동가 모임 ‘이야기가 있는 숲(이숲)’과 함께 서울대 조리노동자와의 밥상회 ‘식탁을 돌보는 이의 식탁’을 진행했다. 5월에 처음 사업을 제안 받았을 때는 생소한 형태의 사업이기도 해서 단위 내부에서 고민을 나눴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전에 해왔던 것과 다르고 또 새로웠기에 함께하기로 했다. 밥상회 이후, 방학이 지나고 9월부터 밥상회의 후속 사업으로 전시회토크콘서트를 이숲과 함께 기획, 진행했다. 이 글에서는 두 자리에서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들었던 감상들을 정리해 나누고자 한다.

 생활협동조합(생협) 노동자분들을 만나 뵀던 간담회와 같은 이전 행사들은 책상 두어 개를 사이에 두고 앉아 학생들이 노동 및 투쟁 현황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드리고, 노동자분들은 그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시는 구조였다. 그에 비해 밥상회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간담회에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책상을 두 개 붙이고 열무비빔밥과 죽염된장국을 올려놓자 책상은 식탁이 됐다. 거기에 노동자, 학생, 이숲 팀원 나눌 것 없이 둘러앉아 식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식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렇기에 식사는 보편적인 대화 주제이자 인사말로도 우리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어요?”와 같이. 밥상회 내용을 기획한 이숲에서 ‘우리가 원하는 식사’를 한가지 대화 주제로 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테다.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채소로 식사를 하거나, 직업 특성상 오래 운전해야 해서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거나, 학내 학생식당이나 편의점을 전전하는 등 여러 식사의 형태를 공유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식사, 예를 들면 시간에 쫓기지 않는 식사, 제철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식사, 주메뉴가 빠지지 않은 식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21년 10월, 생협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 높은 노동 강도, 115단계의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임금체계와 함께 식비 미제공 혹은 주메뉴가 빠진 부실 식단에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했다. 닭 없는 “반계탕”, 함박스테이크 없는 “함박스테이크&볶음밥”이라니, 그때는 먹지 못하게 해서 더 먹고 싶었다고 한 조리노동자분이 말씀하셨다. 그때 그분이 바라셨던 식사는 주메뉴가 빠지지 않은, 식당 이용자가 먹는 식사였고, 이제는 당신의 식사에 오롯이 선택권이 있으시기에 소화하기 편한 채소로 구성된 도시락도 싸온다고 하셨다. 파업 당사자가 요구했던 것은 동물성 식자재를 포함한 특정한 식사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존엄이었다는 맥락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시 건조하게 전달됐던 투쟁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사뭇 진지하고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말할 수 없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있다.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같이 했기에 그런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19년과 2021년 당시 투쟁하셨던 분들은 일상에서 당했던 부당한 처우를 지적하며 투쟁에 나섰고, 그 결과는 일상을 바꿨다. 투쟁에 일상을 유리할 수 없는 만큼이나 일상에 투쟁을 분리할 수 없다. 밥상회가 이런 사실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이숲에서는 밥상회에 그치지 않고 2021년 당시 투쟁에 사용된 구호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바꿔 전시물을 제작해 주셨고, 비서공에서도 전시물 제작 과정에서 현 상황에 적절한 내용을 덧붙일 수 있도록 피드백 과정을 거쳤다. 기획전시 『식탁을 차리는 이의 식탁』은 밥상회에서 오간 이야기를 바탕으로 돌봄 노동자가 자신을 돌보는 일, 그런 돌봄을 불가능하게 하는 대학의 구조적 문제, 여성에 대한 가사노동 전가 등을 다뤘다. 그와 더불어 조리노동자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를 같이 준비하고 열었다. 밥상회보다는 조금 더 진지한, 3인의 패널로 구성된 자리였지만 이전에 식사를 같이해서인지 어색한 공기가 사라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토크콘서트는 조리노동자 박승미 선생님, 이숲 팀원 김진아 씨, 그리고 내가 패널을 맡았다. 박승미 선생님은 앉아서 식자재를 손질하는 것으로 대체된 휴게시간, 식당 홀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던 관리자 등 2019년 파업 이전에 조리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당한 갑질과 차별적 대우가 파업으로 인해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투쟁의 결과로 이제는 식당에 휴게실이 있고, 그 휴게실을 학교 공간 중에서 가장 좋아하신다고도. 청소노동자 파업에 연대한 기억을 가진 김진아 씨는 노동자분들과 얼굴을 트며 관계를 맺고 연대할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학생들이 밥 먹을 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천원의 학식이 오히려 대학의 책임 부재로 인해 노동조건 악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지 걱정을 이야기했다. 그런 말들을 경청하면서 나도 내가 노학연대를 왜 하는지 등 준비해간 내용을 조금씩 꺼내뒀다. 무겁거나 어렵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반응하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

 2024년이 된 지금,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생협 파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3월에 있었던 학생식당 인원 충원을 위한 피켓팅과 같은 노동조합 바깥으로 드러나는 활동이 아니라면, 학생으로서 우리는 저 배식대 너머에서 누군가 부당한 노동 조건을 겪으며 일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공론장에 끊임없이 화두를 제시해야 한다. 이와 같이 이번에 진행한 전시회와 토크콘서트는 밥상회가 몇몇 학생, 노동자들과 먹거리 운동가들이 공유한 한순간으로 남지 않고 대학공동체 내부에, 나아가 사회공동체에 이 투쟁이 존재했으며 우리는 그 담론을 이어나가야 함을 환기하려는 시도라고 느낀다.

 밥상회와 토크콘서트를 통해 안면을 텄던 조리노동자분들과는 배식대가 한적한 시간대면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 식사를 나누는, 무엇보다 일상적이지만 특별했던 경험 때문에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대학공동체의 일원이기에 매일 우리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자와 인사를 나눠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공론장으로 끌어올리는 이 말들에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대에서의 전시는 이미 종료됐지만, 11월 23일 서울시 종로구에서도 1일 전시와 전시 연계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전시의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다음 페이지를 확인해주세요.
https://bit.ly/식탁을차리는이의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