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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Affinity Group for the Abolition of Precarious Work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abbr. Biseo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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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식탁을 차리는 이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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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1:
제목: 식탁을 차리는 이의 식탁
본문: 식탁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누구와 나누느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까? 이번 전시를 준비한 프로젝트팀 ‘이야기가 있는 숲(이숲)’은 2022년 12월부터 우리 식탁이 갖는 의미를 탐색해왔다. 청년들이 모여 제철 과일을 나눠 먹기도 하고, 청년 기후활동가를 중심으로 식사를 직접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눠왔다. 지금까지 청년이란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식탁을 탐닉해왔다면,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이들, 즉 타자와의 식탁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배경: 나무 쟁반에 잡곡밥을 퍼담는 사람들의 손이 찍힌 사진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서울대생협 조리노동자들의 손이다.
패널 2:
배경: 붉은색 바탕에 흰색 반원 한 개와 사분원 두 개가 배치되어 있다. 이하 글씨는 흰색이다.
제목: 많은 거 안 바란다 함께 먹고 함께 살자!
본문: “생협 노동자 식사, 닭 없는 삼계탕, 햄버그 없는 함박 스테이크”, “야채보다 못한 노동 인간 대우 받고 싶다”, “우리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각주: 2019년, 2021년의 생협 노동자 파업 당시 평등한 식사를 요구하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자는 취지에서, 해당 구호의 동물성 먹거리 관련 내용을 그대로 포함시켰습니다. 노동자들은 2021년 파업을 통해 해당 구호에서 이야기한 평등한 식사 실현 과제를 해결했습니다.
패널 3:
인용문 1: “제철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죠. 내가 키워서 먹는 건 벌레가 먹었어요. 친환경적으로 키운 채소인 거죠.”
인용문 2: “제가 원하는 건 남이 해주는 밥인 듯해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남이 차려주지 않잖아요? 내가 차려서 가족들을 다 먹여야 하니까.”
인용문 3: “예전엔 급식으로 반계탕을 준비해도 정작 우린 닭을 못 먹었어요. 그래도 2019년 파업을 통해 이젠 우리도 다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때는 먹지 못하게 하니까 더 먹고 싶었는데 지금은 안 먹어요. 이젠 우리가 나이를 먹다 보니 건강식으로 많이 먹으려 해요.”
본문: 서울대 생협 노리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먼저 시작한 건 함께 어우리는 밥상회였다. ‘같은’ 자리에서 동등한 존재로 만나는 일상적인 식탁을 만들고자 했다. 매일 누군가의 식탁을 마련하는 이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 대접하고 싶었다. 우리는 식탁 너머의 삶과 존재가 드러나고, 모두가 편하게 음식을 나누며, 서로 먹고사는 이야기를 나눌 식탁을 준비하고자 했다. 6월 밥상회엔 서울대 생협 조리노동자와 서울대생 등 15명이 함께했다.
밥상회의 중심 메뉴는 토종쌀 열무비빔밥과 죽염된장국이었다. 여기에 조리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의미에서 광주 오월주먹빵과 장미 선물을 더했다. 열무비빔밥은 청주 청년 농민이 지은 쌀과 진천 여성농민이 담근 김치로 만들었다. 죽염된장국은 구례에서 아홉 번 구운 죽염으로 담근 된장을 사용해 끓였다. 그 외 식재료는 한살림 생산자들의 농산물로 준비했다. 우리는 친환경 식재료로 다양한 연령대가 편히 즐기도록 채식 위주의 속 편한 식사를 준비하고자 했다.
우리는 밥상회에서 ‘식탁을 돌보는 이의 식탁’이란 주제 아래 “평소 어떻게 드세요? 각자 바라는 식사를 일상으로 가져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등의 질문을 나누며 이야기했다. 하나의 식탁을 나눈다는 건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로, 노동자와 이용자로 나뉘는 게 아니라 같은 것을 먹으며 동등한 존재로 만난다. 우리가 바라는 건 거창한 고급 식사가 아닌, 그저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일상이 되는 것이다.
패널 4:
배경: 초록색 바탕에 흰색 막대 세 줄을 나란히 놓은 모양 두 개가 배치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막대 한 줄이 배치되어 있다. 이하 글씨는 흰색이다.
제목: 노동강도 완화하고 대책을 마련하라!
본문: “서울대학교와 생협은 조리인력 충원하고 대책을 마련하라!”, “서울대 구성원 모두를 위해 지금 당장 인력충원!”, “공공기관 대비 3배! 높은 노동 부담, 천원의 학식은 6배!”
패널 5:
인용문 1: “즐겁게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부족해서 힘드니까 인원 보충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인용문 2: “파업 당시 연대하러 온 학생들이 우리에게 미안해서 식사를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어요.”
인용문 3: “많이 드세요. 열심히, 인원 늘려달라고 말할 거에요.”
본문: 누군가의 건강한 식사를 준비하던 누군가는 건강을 잃었다. 누군가가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나눌 식사를 위해, 누군가는 부족한 사람 하나를 아쉬워하며, 온갖 차별을 당하며 미끄러운 급식실 바닥을 뛰어다녔다. 1대 100. 대한민국 급식실 노동자는 혼자서 최소 100명분의 식사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서울대가 대학생의 ‘저렴하고 건강한 점심’을 표방하며 마련한 ‘천원의 밥상’은, 노동자에겐 혼자 400명의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굴레로 작용했다.
정작 일할 사람은 줄어들었다. 서울대 학생회관 조리노동자 수는 2017년 52명에서 2023년 25명으로 반토막 났다. 학생들이 수다 떨며 ‘건강한 식사’를 나누는 시공간 이면엔 “사람이 부족하다”, “이대로는 다 쓰러진다”는 노동자의 아우성이 있었다. 그러나 ‘원청’ 서울대는 그러한 아우성을 사실상 외면해 왔다. 하루 이틀 된 아우성이 아니었건만 우리 중 누군가는 그것을 듣지 못했고, 누군가는 분명히 듣고도 못 들은 척 했다.
아우성은 서울대 바깥에서도 들려온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만들다가 골병이 든 노동자, 급식실에서 발생한 발암 물질로 인해 폐암에 걸린 노동자들의 외침이다. 비록 처한 환경은 달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누군가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주체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오늘도 각지에서 아우성을 친다. 우리는 이러한 아우성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우리는 ‘먹거리를 만드는 이의 노동’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패널 6:
배경: 보라색 바탕에 흰색 작은 원들이 모여 있는 도형들이 배치되어 있다. 작은 원의 개수는 위쪽에서부터 4개, 10개, 7개, 5개다. 이하 글씨는 흰색이다.
제목: 웃으면서 출근한 길 골병 들어 퇴사한다!
본문: “고된 노동 반복되어 뼈주사로 연명한다”, “손님만 왕이냐 직원도 살펴줘라”, “멀쩡하던 내 손가락 생협 와서 안 남아난다”
패널 7:
인용문 1: “학교에선 배식 30분 전엔 밥을 먹어야 해요. 11시부터 배식이면 늦어도 10시 30분에는 식사를 마쳐야 하죠.”
인용문 2: “우리 식탁 문화에는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것이 낫다는 의식이 있는 듯해요. 다들 많이 담아가도 잔반이 언제나 많이 남아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도 정말 부담스러워요.”
인용문 3: “내가 바라는 건 식사시간이 길어지고, 저녁에 집에서 밥을 해 먹어도 분위기 있게 천천히 먹고 싶다는 거에요. 시간에 쫓기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밥을 먹고 싶어요. 이거 먹고 저거 해야지 이러는 게 아니라요.”
본문: 조리노동자는 언제, 어떻게 식사하며 자신을 돌볼까? 이숲은 밥상회에서 ‘돌봄’이라는 주제를 꺼내고자 했다. 조리노동자가 학식을 준비해 음식을 건네고 주방을 정리한 후, 집에서 다시 저녁상을 차리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나누고 싶었다. 밥 먹는 입이 나를 돌보는 행위라면, 식탁 위에 올라가는 반찬 종류를 고르고 재료를 손질하는 일 또한 돌봄 과정에 속한다. 학식을 먹을 때 학생들은 조리노동자의 ‘노동이자 돌봄인 행위’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리노동자는 스스로를 위한 ‘식사’라는 돌봄행위도 상대(학생)에게 맞춰야 한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조리노동자가 학생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식사 준비 과정은 먹는 과정보다 시간과 품이 더 많이 든다. 밥이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게 낫다는 한국의 식문화도 조리노동 강도를 높인다. 조리노동자는 식사해야 할 시간에 배식을 앞두고 있어 쫓기듯 밥을 먹는다. 한 끼 식사가 차려지는 과정은 일상이자 노동이며 고단한 돌봄의 과정이다.
이숲이 밥상회를 열어 조리노동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학생들을 불러 모아 함께 밥을 먹은 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의 일상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나의 밥을 준비해 준 이들은 내가 배불리 먹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는지, 나를 돌보는 이 또한 스스로를 충분히 돌보고 있는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생협 조리노동자의 투쟁은 단순히 서울대 학내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돌봄 문제와 식문화와도 연결되는 사안이다.
패널 8:
배경: 카키색 바탕에 45도로 기울어진 정사각형 도형이 5개 배치되어 있다. 이하 글씨는 흰색이다.
제목: 천원 짜리 밥상에 ‘엄마’는 죽어난다!
본문: “일하다 쓰러져도 고된 노동 피할 길 없다”, “고된 노동에 내몰리는 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 식비도 못 받는 노동자, 20년 근무해도 승진 없는 노동자!”, “생협 이대로는 다 죽는다! 졸속경영 이제 그만!”
각주: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은 2021년 파업을 통해 해당 구호에서 요구했던 ‘임금체계 및 승급체계 개선’, ‘평등한 식사 실현’ 과제를 해결했습니다. ‘식비도 못 받는 노동자’ 구호도 평등한 식사를 누리자는 측면에서 외친 구호였습니다.
패널 9:
인용문 1: “회사에서 종일 지쳤는데 또 집 가서 음식을 해야 해. 20년 가까이 이렇게 살다 보니까, 음식이 이렇게 싫을 때가 있나 싶어요.”
인용문 2: “집에서는 급식이 아닌 음식을 먹고 싶더라고요.”
인용문 3: “계속 무엇에 쫓기듯 밥을 먹는데, 좀 편하게 밥을 먹고 싶어요. 그러려면 답은 퇴사밖에 없지 않나….”
본문: 돌봄노동. 한 가정의 딸로 태어난 ‘여성’의 정체성은 나를 늘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밥상회에서 만난 그녀들의 이야기도 내 이야기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한 가정의 어머니란 정체성을 가진 그녀들은 학교에서 종일 누군가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집에 가서도 그 노동을 이어갔을 것이다. 집밥에서 급식 맛이 난다는 말, 누군가의 철없는 반찬 투정일 테지만 경계 없는 노동을 계속 이어가는 그녀들에겐 이 한 마디가 매우 크게 다가갈 테다.
집에서의 돌봄노동은 휴일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매일매일 내가 돌봐야 하는 가족을 위해 어떤 밥상을 차릴지 고민하면서 정작 자신의 먹는 행위를 돌아볼 시간적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엄마의 마음’으로 학생들의 식탁을 돌본다. 우리 사회가 부여한 엄마로서의 사명감은 그들의 조리노동을 쉽게 착취하는 수다이 된다. 모성애적 돌봄을 강요당하며 쉽게 착취되는 그녀들의 노동은 ’학생들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이 시대에 어머니가 여성으로서 돌봄 노동을 강요당하며 수행하는 조리노동은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이어진다. 집에선 시간에 쫓기지 않고 누군가 차려준 식사를 하고 싶다는 그녀들의 바람은 모성애적 돌봄이 쉽게 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과 연결되지 않을까?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부장제의 문법이 여성에게 돌봄 노동을 강제하며 우리의 식탁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면, 그런 식탁을 이제는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