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성명!: 계엄령 앞에 그 누구의 권리도 안전하지 않았다

윤석열 퇴진과 함께, 노동권과 일터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세상으로


일터의 민주주의도 멈춰 세운 윤석열의 비상계엄


 수많은 시민이 두려움에 잠 못 이룬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마자 울산의 어느 자동차부품 하청업체는 노동조합에 파업 중단 공문을 발송됐다.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은 계엄법을 운운하는 사측의 요구에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계엄사령관 포고령은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라며 포고령 위반에 대해 초법적 처단이 가능하다고 위협했다. 계엄은 국가의 비상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강제적으로 억누르는 조치이며, 특히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존재하지 않는 비상사태를 구실로 기본권마저 부정한 반민주적 폭거였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어 계엄이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서 계엄군을 막았던 노동자 시민들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권에 대한 전방위적 탄압, 국가폭력을 확대해온 윤석열 정권


 이번 계엄은 누구도 쉽사리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 사태였지만, 윤석열 정권의 국가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직에 취임한 2022년부터 안전한 물류 운송을 가능케 하라는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은 업무개시명령을 맞닥뜨렸고, 중층적 고용구조에서 권리의 바닥을 다져왔던 건설노동자들은 ‘건폭’이라는 오명을 감내해야 했으며, 좁디좁은 철창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야 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공권력 투입 협박을 마주했다. 2023년 노동절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던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그해 여름 포스코 하청노동자의 머리를 겨냥했던 경찰의 곤봉, 2024년 ‘노란봉투법’에 대해 행사된 대통령의 거부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계엄령으로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정권의 폭력성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데 먼저 동원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하는 시민이 곧 노동자이고, 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가 곧 시민인데, 국가와 자본은 언제나 노동자와 시민을 분리하는 수사를 구사하며 노동 탄압을 자행해왔다. 기만적이게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응한다며 ‘노동약자’ 지원을 내세우다, 정작 ‘취약한’ 상황에 놓인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들이 불평등에 맞서 권리를 요구하면 오히려 폭력적 탄압으로 투쟁하는 이들의 존엄을 짓밟았다.

 이는 노동자들이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 앞장서온 역사적 기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투표에 제한된 제도정치를 넘어 일터와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투쟁에 참여해온 노동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 활성화의 원동력이란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와 김경숙 열사,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노동자들이 쌓아온 민주주의를, 깊디깊은 차별을 넘고자 하는 오늘날 불안정 노동자들의 외침을 폭력과 혐오로 부정하려 했던 정권은, 결국 반인권적 쿠데타 시도를 통해 모든 시민을 적으로 돌리기에 이르렀다.

갈라치기와 혐오를 넘어, 모두의 공통적인 시민성을 엮어나가자


 그동안 윤석열 정권은 목소리 내는 이들을 ‘갈라치기’함으로써 고립시켜 우리의 공통된 시민성을 와해시켜 왔다. 정권은 ‘투쟁하는 노동자’를 ‘선량한 시민’에서 배제했고,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요구는 공공의 안전과 무관한 것으로, 장애인 탈시설과 이동권을 외치는 몸들은 시민의 편의를 방해하는 존재로, 평등과 존엄을 요구하는 여성과 퀴어의 목소리는 사회를 교란하는 위험으로 낙인찍으며 공론장 밖으로 내몰고 혐오를 조장했다. 그러나 노동자도, 장애인도, 여성도, 퀴어도, 이주민도, 수많은 다양한 몸을 지닌 존재들도 모두 우리의 공동체에서 마땅한 자리를 보장받아야 할 시민이라는 사실을, 모두를 위협한 이번 계엄령이 우리에게 일깨웠다.

 우리의 삶들은, 그리고 이를 위협하는 다양한 폭력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지키는 안전망이 되도록 얽어나가는 사회만이 국가폭력으로부터 모두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오늘의 퇴진 광장을 열었다. 민영화를 거부하고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들이, 일터의 건강권을 요구하는 학교 급식노동자들과 화물노동자들이 12월 공동파업으로 그 광장에 선다.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를 얽어나가고자 했던 우리도 그 광장에 함께하고자 한다.

퇴진 이후의 세상을, ‘노동’의 자리가 있는 민주주의를 함께 이야기하자


 초법적인 계엄령으로 최소한의 정당성마저 스스로 파괴한 윤석열에게 남은 길은 퇴진밖에 없다. 스스로 하야하지 않는다면 탄핵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국가권력의 책임자로서 시민을 상대로 내란을 공모한 책임자들은 준엄한 법적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위기의 근원이 아니라 증상이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불평등과 구조적 차별은 결코 정권 퇴진만으로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하게 생각해온 권리조차 역행시킬 수 있는 국가폭력의 위험성은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위기를 민주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가는 일이 퇴진 광장에 선 우리의 몫이다.

 윤석열 퇴진과 함께, 윤석열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자. 노동권이 보장되고 일터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위해 어떤 전환과 개혁이 필요할지 함께 이야기하자. ‘노동’의 자리가 있는 민주주의로 서로를 엮어나가며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극복하자.

2024.12.05.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비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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