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이행하라

대학의 책임 인정, 산업재해 예방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다


 지난 2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1년 6월 26일 서울대학교 기숙사(관악학생생활관) 휴게실에서 세상을 떠난 청소노동자분의 유족에게 서울대가 8,600만 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내렸다. 가슴 아픈 그 여름을 지켜보았고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대학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서울대의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고인은 2019년 11월 관악사에 청소직종으로 입사하였고, 관악사 925동을 혼자 청소하도록 배정받았다. 925동은 입사 정원이 196명에 달하며, 1970년대에 건축되어 엘리베이터도 존재하지 않는 낙후된 건물이다. 196명의 학생이 배출하는 쓰레기양은 시기에 따라 하루 최대 1,800 리터, 250 킬로그램에 달했으며, 고인은 엘리베이터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많은 양의 쓰레기를 혼자 수거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낙후된 재정생활관 건물들(92N동)은 샤워실 및 화장실의 환기와 제습 조건이 열악하여 곰팡이가 상시적으로 발생하였고, 이것을 벗겨내는 미화 작업 역시 강한 육체적 부담을 요구하는 노동이었다.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높은 노동강도 속에서도,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은 사실상 없었다. 휴일이라고 근무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인 쓰레기 때문에 다음날의 노동강도가 더욱 높아지는 실정이었다. 또한 저임금이 만연한 시설관리직의 입장에서 생활임금을 위해선 매달 23만 원의 휴일근무수당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인이 돌아가신 2021년 6월 26일 역시 토요일이었다. 고인은 주말에 출근하여 쓰레기를 수거하고 휴게실에서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2021년 12월 27일,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는 고인의 사망을 산업재해로 승인했다. 청소노동의 과중한 노동강도와 부적절한 인사관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고인의 죽음을 야기한 이유가 되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서울대학교는 부적절한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왔다. 당시 학생처장은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게 역겹다”며 동료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비난하다 여론의 지탄을 받고 사임했다. 당시 기획시설부관장은 노동조합이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해서 “서울대 전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부적절한 발언을 관악사 홈페이지에 올려 입사생들에게 회람시키기까지 했다. 오세정 당시 총장은 8월 2일 입장문과 8월 5일 간담회에서 유족에게 사과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약속하였으나, 약속은 책임 있게 이행되지 못했다. 8월 31일, 관악사는 주말 청소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인력충원을 통해 노동강도를 근본적으로 완화하기보다 외주화를 통한 책임회피로 반응한 것이다. 더군다나 오히려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되고 주중 노동강도는 개선되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부적절한 인사관리에 대한 대책도 윗선에 대한 책임 규명 없는 ‘꼬리 자르기’에 머물렀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울대의 모습은 고인의 유족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더욱 심각하게 드러났다. 서울대는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업무강도가 과장”되었다고 언급했다. 더군다나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자체조사에서도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부적절한 인사관리를 고인이 “오히려 좋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하였다. 다행히도 법원은 이와 같은 서울대 본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2021년에 제기된 사망 사건의 본질적 문제들을 재확인하고, 이를 부정하고자 한 학교 본부에 명백히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2019년과 2021년에 되풀이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이원화된 중층적 고용구조와 노동조건 개선을 가로막는 차별 속에 발생했다. 관악사와 같이 일부 기관에 고용된 청소노동자의 경우 총장발령이 아닌 기관장발령으로 고용되어 있어 대학본부가 인력충원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더군다나 재정생활관이 아닌 민자형 BTL 생활관의 경우 용역업체를 통한 노골적인 간접 고용이 이어지며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총장발령이 아닌 기관과 단과대별 발령, 별도법인 고용이 이어지는 한 어떤 직종의 학내 노동자도 차별적 처우와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울러 여전히 대학가에 만연한 용역업체 간접 고용은 일터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책임을 대학이 회피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2021년 모두가 안타까움에 휩싸였던 그 여름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파편화된 고용에 대해 책임을 계속해서 회피하고 있는 대학본부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울대학교 본부에 요구한다.

하나. 항소를 포기하고 법원의 배상 판결을 즉시 이행하라.
하나. 사망 사건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와 노동조건 개선에 책임 있게 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