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2023년의 노동정책을 정산하며

노동자의 개별화와 고용책임의 파편화로 일관되었던 2023년


 2023년은 윤석열 정부의 역행적 노동정책이 이어진 한 해였다. 그러나 한 해 동안의 노동정책은 단순한 ‘개악’을 넘어, 노동자가 개별화되고 고용책임이 파편화되는 사회적 추세 속에서 노동규범 자체를 형해화하는 성격을 지녔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철회한 ‘주 최대 69시간’의 노동시간 개편은 ‘유연화’를 명분으로 노동시간의 불규칙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었기에 더욱 문제적이었다. 노동시간의 불규칙화는 휴식시간도 불규칙하게 만들며, 노동자가 휴식시간에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거나 여가를 온전히 누릴 수 없게 만든다. 아울러 장시간 불규칙 노동 속에서 노동자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은 한계에 달하게 되며, 초장시간 노동과 초단시간 노동이 병존하는 현실은 극심해진다.

 고용노동부의 이른바 ‘파견제 선진화’는 ‘합법파견’의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서, 이 정책대로면 기존에 불법파견이자 위장도급이었던 편법적 간접고용이 합법적인 파견이나 도급으로 둔갑할 위험성이 크다. 간접고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중간착취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이를 오히려 합법화하고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직접고용 원칙의 노동규범이 해체되어가는 와중에 이를 더욱 가속화하는 정책인 셈이다.

 정부는 또한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칭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조법 2조 개정안은 간접고용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중간착취를 막기 위해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 ‘진짜 사장’과의 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노조법 3조 개정안은 사측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조합이 파괴되고 조합원 개인이 사회적 고립과 죽음으로 몰리는 현실을 막기 위한 법안이다. 이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현 정부는 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는 원청의 책임성을 규정하길 거부하고 노동시장 불평등에 내몰린 이들의 생존권조차 묵살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노동조건이 나쁜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되는 가운데  국가와 사회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질 낮은 일자리’에 노동자를 공급하는 데에만 매진해왔다. 노동자의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비방하고 축소함으로써 나쁜 노동조건을 받아들이고 취업하도록 압박했다. 또한 사업장과 지역의 이동을 제한하는 인권 침해적 고용허가제 체제하에서 이주노동자 허용 분야와 기간을 확대하도록 하여 위험하고 열악한 일자리에 이주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폭력, ‘갈라치기’와 분할통치로 향하는 길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을 이러한 정책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인식해왔다. 재해가 발생했을 시 책임소재마저 불투명해지는 ‘질 낮은 일자리’에 노동자들을 몰아넣으며 고용에 따르는 책임을 형해화하는 데 노동조합이 저항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설노동자・화물운수노동자・조선소 하청노동자 등 하청・파견・특수고용을 막론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조합들이 파업에 나설 때 공권력을 동원해 강력히 탄압하고, 집단적 노동권을 해체하며 노동을 개별화하고자 시도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봉쇄하며 집단적 노동권을 부정하면서, 노조가 배제된 원하청 ‘상생’ 협의회를 구성하는 식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폭력과 배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시장 불평등이 해소될 리 만무하다.

 정부는 노동조합을 고립시키기 위해 ‘법치’를 통제의 기제로 내세우거나, ‘시민 불편’을 구실로 삼아 “노동조합이 법 위에 있다”며 비난해왔다. 기업 규모에 따라 수직계열화된 산업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노조의 탓인 양 묘사하며 노동조합이 ‘기득권’이라고 호도하기도 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가 진정한 약자”라는 ‘약자 복지’와 ‘약자와의 동행’ 속에 반빈곤운동에 나선 홈리스, 지하철을 타려는 장애인, 광장에 나선 퀴어와 여성, 노조에 가입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는 배제된다. 저항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불법화하여 처벌하면서 ‘약자’를 시혜적인 대상으로 호명하는 이런 행태는 ‘갈라치기’를 통한 ‘분할통치’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실업난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 등 노동 문제의 원인은 노동조합인가? 노조의 조직률이 높아질수록 비조합원의 임금과 처우도 개선되며, 조직률이 낮아질수록 조합원-비조합원 간 임금 격차는 오히려 심화했다. 노동자 개인이 사측과 동등한 입장에 서기는 어렵기 때문에, 노조가 사업장 내에서, 그리고 산업과 지역 등 사회적으로 교섭력을 늘려나가는 일은 비조합원 노동자들의 권익에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 이후, 건설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시공사의 부실공사와 횡령에 대한 노조의 감시능력마저 탄압으로 약화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적 재해의 위험성은 더욱 높아지고만 있다. 이처럼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및 아웃소싱,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및 프리랜서 노동의 만연화 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처방은 회피하면서 불평등의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대안에 대한 당사자의 요구에는 범죄화로 일관해왔다.

다양한 모순과 위계화가 드러나는 ‘노동’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대안을 만들자


 이처럼 일자리의 양과 질이 모두 하락하는 상황 속에서 각자도생은 개인의 삶에 출구가 되기 어렵다. 노동의 분할과 중첩되어 나타나는 다양한 ‘갈라치기’, 이를테면 일자리 바깥으로 내몰리는 국내 노동자들과 저임금으로 도입된 이주노동자들 간의 탓하기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본뿐 아니라 노동의 국경 너머 이동도 활성화된 조건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기존 국내 노동자들의 조건도 바닥없이 추락할 뿐이다. 우리 삶의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분할을 넘어 연대하고 고용책임의 파편화에 맞서 모두의 존엄을 보장하는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암울해 보이는 현실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고용계약의 형해화 속에서 끝없는 경쟁에 내몰린 플랫폼 ‘라이더’ 배달노동자들의 투쟁은 산재보험 전속성 기준 폐지를 이뤄내며 65만 명의 노동자들이 새로이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편입되었다. 서울 시내 13개 대학의 청소 등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여러 대학이 함께하는 집단교섭을 통해 임금 인상과 휴게시설 개선 문제를 공동으로 요구하여 하청의 난립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급식실의 비정규직 조리노동자들은 여러 차례 파업투쟁의 결과, 작년에는 각 학교가 아닌 교육청을 상대로 임금협약을 체결하였다.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파편화된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의 재구성은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아울러 '노동'에 관한 보편적인 대안은 일터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모순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볼 때 만들어질 수 있다. 가족에 노동자 재생산의 비용을 전가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돌봄 노동은 노동시장 내에서도 ‘여성화’되어 평가 절하와 저임금에 내몰리고, '정상가족'에 포섭될 수 없는 퀴어한 존재들에 대한 위계화는 고착화하며, 돌봄 노동을 전가당한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권리로부터도 배제될 것이다. 이윤을 생산할 수 없는 몸으로 규정되어 온 장애인의 ‘권리중심일자리’가 축소되고 무력화될 때, 그리하여 장애인이 다양한 활동으로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일자리를 사회참여의 권리로 보장받지 못하게 될 때, 기존의 체제에서 비가시화된 다양한 노동은 더욱 배제되고 공동체의 권리와 관계를 만드는 노동은 더욱 평가절하될 것이다. 그렇기에 삶의 가치를 위계화하며 모두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항하기 위해선, 일터를 경유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돌봄과 사회적 공공성의 상을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노동’에 관한 권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과 우리 자신이 함께 경계를 넘는 노학연대의 전망을 꾸려가는 해로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