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노동과 의료공공성을 외치는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파업, 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건강권을 위한 싸움입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그 위탁운영기관인 보라매병원에서 3,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10월 11일(수)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합니다. 파업의 주요 요구사항은 필수노동자들의 인력을 충원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더 나아가 의료기관의 영리추구와 민영화 경향에 맞서 공공성을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이번 파업에서 제기된 요구들은 2021년과 2022년에도 수차례 반복 제기된 바 있습니다. 2021년 11월에는 파업 예고일 전날에 극적으로 잠정합의가 타결되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2022년 11월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작년 파업 이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올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본교섭만 16차례에 이르렀던 단체교섭 속에서도 이어졌던 사측의 완고한 태도는 조정을 결렬시키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울대병원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은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5.9%의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습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 사측의 김영태 병원장은 공공기관인 서울대병원의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정부 부처와의 관계에서 국립대학병원장으로서 부적절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국립대학병원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영태 병원장은 협회의 건의서에서 국립대학병원을 공공기관운영법상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이에 따른 총액인건비와 총정원 제한 규제 해소에 대해선 의사의 경우만 국한하여 제한을 풀어달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해당 건의서는 국공립대병원들이 의사 외의 보건의료 직종에 대해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임금 및 인력 총량 관련 규제를 풀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공공의료를 지탱하는 필수인력의 처우개선 및 인력충원은 서울대병원 내 다양한 직종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이며, 인건비와 정원에 대한 정부의 총량 제약은 그러한 요구를 가로막아왔습니다. 이를테면 작년 파업의 합의사항인 간호 직종 인력충원에 대해서도 병원장은 정부의 인력통제를 빌미로 거부해왔으며, 인력 부족으로 가중된 노동강도는 환자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보라매병원 내과중환자실에서 지난 10개월간 16명의 간호사가 퇴직하는 등, 연장근무와 야간근무에 지친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고 있습니다. 병원 내 위험업무와 야간업무는 여전히 2인 1조 근무가 아닌 1인 근무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부족한 응급환자이송 인력으로 과로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쓰러지기도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고된 노동강도를 견뎌내며 위기를 이겨내온 이들은 의사들만이 아닙니다. 간호, 돌봄 및 시설관리 노동자들 또한 열악한 처우 속에서도 공공의료와 시민의 건강을 지켜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감염병과 자연재해의 위험이 높아진 기후재난 시대에 공공병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아과나 응급실의 인력 부족을 비롯한 필수보건의료 영역 축소, 환자 정보를 민간보험에 판매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보험업법 개정 등 의료민영화의 추세가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점점 위협해 옵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인력충원과 노동조건 개선뿐만 아니라, 어린이병원 병상 수와 무상의료를 확대하고, 환자 정보를 보호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부 대학병원 교수들이 환자 대상 임상시험으로 자신의 수익을 창출해온 영리자회사를 축소하라고 요구하는 등 의료민영화를 막기 위해서도 투쟁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장애인 고용 의무 기준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서울대병원이 장애인 일자리를 개선하라고,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병원에서 의료폐기물과 에너지를 절감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라고 요구하는 등 대학병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0월 11일부터는 서울대병원뿐 아니라 경북대병원 노동자들도 파업에 돌입합니다. 대학의 이름을 내건 대학병원의 운영 형태와 대학이 다해야 할 사회적 책임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높은 노동강도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학병원의 현실은, 대학 내 인력 부족으로 인한 구성원 권리 침해, 대학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생명・안전의 위협, 비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과 겹쳐 보입니다. 당장 서울대에서도 청소 등 필수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경비노동자 인력 부족으로 학생 안전이 위험해지며, 법인직원과 자체직원 간의 차별이 매년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울대와 그 부속기관인 서울대병원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 학생이자, 보건의료와 건강의 공공성 축소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시민이기도 합니다. 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서울대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연대하고, 공공병원의 공공성 확충을 위한 모든 대학병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응원하겠습니다.
2023. 10. 10.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