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세미나 ‘멀고도 가까운 노동, 우리 모두의 권리’ 발제문

1. 서울대에서 만나는 노동: 학내 노동현황 개괄
1.1. 들어가며: 서울대에 비정규직이?
●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런데 왜 아직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무엇이고 누구일까?
- 서울대학교에서 ‘정규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직원은 ‘법인직원’. 법인직원이란 2011년 서울대학교 법인화 당시, 그전까지 공무원이던 교직원들과 더불어 기성회직 교직원들을 포함하는 범주. 고용의 주체가 서울대학교 총장이며, 이러한 고용의 형태를 일반적으로 ‘총장발령’이라 지칭.
- 서울대라는 공간에는 공무원과 기성회직 이외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했고 대부분 계약직/용역/파견으로서 간접고용됨. 2017년 ‘비정규직 제로(0)시대’ 정책 선언 이후 2018년 서울대에서 이루어진 ‘정규직화’는, 이러한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것. 이를 통해 이전보다 고용이 안정.
- 그러나 고용안정 한 가지만 확보되었을 뿐 무기계약직과 법인직 사이의 차별은 잔존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전보다 더욱 악화되기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명절휴가비 등 복지에 있어서의 차별
- 무기계약직 전환 이전의 근속연수가 초기화되며 오히려 임금이 삭감되기도 함.
- 불량한 임금체계(10년을 일해도 임금인상 X) 등등.
- 그러므로 총장발령 법인직(=정규직)이 아닌, 차별받는 노동자로서 ‘비정규직’은 여전히 서울대에 존재하고 있는 것. 특히 그중에서도 시설관리직과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학식) 조리노동자 등 비사무직의 경우에는 물리적인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음.
1.2. 시설관리직 (청소・경비・기계・전기)
● 이전까지 30년 동안 용역 고용이었던 760명의 노동자가 2018년 2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환’만 이루어졌을 뿐, 그 이후 발생할 문제에 대해 대학은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고 책임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기존과 같은 노동시간을 유지한다면 초과근무가 발생 → 초과노동수당을 지급하거나, 신규 채용을 통해 1인당 노동시간을 줄여야 마땅할 것. 하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어느 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음.
- 2019년까지 단체협약도 제대로 체결되지 않음. 오히려 학교는 노동조합(이하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중단하고 조합원 대상 교육을 금지시켰으며, 교섭 자리에서 폭언을 하는 등 노조 활동을 탄압, 위축시킴. → 2019년 10월 노조 분회장의 삭발 및 단식투쟁.
- 학교 측 : “특이상황도 없는데 무슨 야간수당을 달라 그러니 뭐도 달라 그러니 이따위 짓들을 하느냐” ← “특이상황(비상)”이 있어야 좋은가? 학생 안전을 책임지는 시설관리 노동자를 학교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 이후로도 복지 차별이나 임금체계 불량 문제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음.
- 2019・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2부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지만, 시설관리 노동은 본질적으로 고강도 육체노동이고 종사자 가운데 고령자인 분들이 많음. 필수노동이자 위험노동. 그러나 인력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높은 1인당 노동강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
- 사례 : 유해성 폐기물 처리, 폭염, 계절성 옥외노동[제초, 낙엽, 제설]
- 한편 경비노동의 경우 퇴직한 인원을 새로 채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있음. 무인경비시스템을 통해 대체하려는 계획이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존재. 결국 학생들의 안전을 침해하게 되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음.
1.3. 생활협동조합
●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도 인력 충원이나 명절휴가비 등 복지 차별과 관련하여 시설관리직군과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학생식당의 식사나 서비스 질이 부실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이러한 부분 역시 인력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대체 생활협동조합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 생협은 [인력 부족으로 1인당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퇴직자가 늘어나고, 그 결과 남은 사람들의 노동강도가 더 높아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음. 이 과정에서 식단과 서비스의 질이 나빠지고, 식당이 운영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음. 결국 학생 복지와도 직결되는 문제.
- 서울대 단체급식 식당의 노동강도는 살인적인 수준. 업계에 악명이 높은 탓에 계속해서 신규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
- 몇 년 전까지 식당과 카페의 휴게・샤워시설이 매우 미비했음.
2019년에 지적된 사항- 생활협동조합 식당의 세척실 환기 문제: 세척실의 환기시설 용량이 적어 세척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이 호흡기로 들어감.
- 식당 노동자 휴게실 및 샤워실 시설 미비 문제
- 협소하고 노후된 샤워 시설, 남녀 샤워실 미분리
- 협소한 휴게실 면적
- 고온다습한 환경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지 않은 휴게실
- 카페 노동자 휴게실 부재 문제: 생활협동조합 카페 근무 노동자들을 위한 독립된 휴게시설 및 탈의시설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음.
- 식당 노동자 휴게실 및 샤워실에 대해 지적되었던 문제들은 개선되었으나(다만 세척실 환기 문제는 주방 여건상 문제의 원인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으므로 지속적 관리가 필요), 카페 노동자 휴게실의 경우 여전히 문제적. 독립적인 휴게공간이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음.
- 한편, 생협 단체급식 식당 노동자들의 경우 여러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음(근골격계 질환 치료경험자 76.5%). 재해사고(넘어짐, 부딪힘, 화상, 날붙이 베임, 염좌)의 위험도.
- 2019년과 2021년 이루어진 두 차례의 파업 결과, 위험수당이 신설되고 임금이 인상되는(7만 6천)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음. 하지만 근본적 해결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움. 왜?
- 2022년 5월 학생부처장 : “우리는 협동조합이니 다같이 협동해서 노력해야 한다”
협동조합이라면
- 출자한 조합원에게만 재화와 용역을 제공해야 함.
- 출자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굴려서 수익을 내야 함.
그러나 서울대 생협은 이 두 가지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재화 용역 제공 대상이 모든 학내 구성원.
- 과거 생협에서 흑자가 발생하면 그중 많은 부분이 대학본부의 발전기금으로 이전.
- 학교는 원래 후생과를 통해 직접 운영했던 학식 등 후생복지 업무를 별도법인인 생협으로 분리해 내고, 별도법인이라는 이유로 생협의 적자 및 구인난 문제에 손을 놓고 있음. 그러나 서울대 부총장과 학생처장이 당연직 생협 이사(각각 이사장과 부이사장)를 맡아 정책 결정권을 가진다는 점은, 생협의 지위가 실질적으로는 그다지 독립적인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줌.
- 대부분의 대학 생협이 그렇듯이 서울대 생협은 조합원을 중심으로 민주적 운영이 이뤄지는 소비자협동조합이라기보다는 학교 구성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대학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함.
1.4. 자체직원
● 서울대학교에는 단과대, 대학원, 연구소, 기숙사 등 여러 기관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기관의 기관장들은 ‘자체적으로’ 직원을 발령할 수 있다. 총장이 발령한 법인직(정규직)을 제외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기관장이 ‘자체적으로’ 발령한 기관장발령 자체직원이다. 총장발령이지만 법인직이 아닌 노동자들은 총장발령 자체직원이라고 부른다. 이름도 생소한 자체직원, 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까?
- 정의상으로는 법인직이 아니면 모두 자체직원. 대학원생 전문연구요원도 행정상으로는 자체직원으로 처리됨. 다만 일반적으로 자체직원이라고 하면 행정사무직을 가리킴.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비학생조교’라 불렸던 학사운영직(이들은 2017년 5월 파업투쟁을 통해 시설관리직보다 먼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음).
- 사무직 자체직원들은 법인직원들과 같은 공간,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수행하는데도――경우에 따라서는 교수나 법인직원보다도 학과 살림에 밝은 경우에도――임금과 복지에 있어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지켜지지 않음. 학교에서는 자체직원은 실무가 아닌 보조업무만 하므로 정당한 차등이라고 주장하지만, 특정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자체직원밖에 없는 경우도 있음. 그렇다면 이 업무는 보조하는 사람밖에 없다는 말인가?
- 직원카드 색깔을 법인직과 다르게 하거나, 직원번호에 Z를 넣어서 표시하거나, 교수들의 호칭문제(법인직에게는 “누구 선생님”, 자체직원에게는 “누구 씨”) 등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도 있어 왔음. 일부는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남은 문제들도.
-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학내 기관이 너무 많고 뿔뿔이 파편화되어 있어서 뭉치기는커녕 실태파악조차 힘들다는 것. 기관마다 상황이 다른 경우가 많음. 예컨대 언어교육원 한국어강사들은 2018년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강사’이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환 대상에서 제외됨(2019년 파업투쟁으로 전환).
1.5. 모든 직군을 관통하는 문제: 고용이원화
- 각 직군별 심각한 문제들의 1차적 원인은 예산 부족이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본부의 책임회피라고 할 수 있음.
- 서울대의 예산 편성 및 집행 권한은 본부 측에서 독점. 개별 기관들은 예산이 없어서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없다고 하고, 본부(총장)는 총장발령이 아니므로 책임질 수 없다며 각 기관에 떠넘기는 상호적 책임회피의 양상.
- 생협의 경우 별도법인으로 존재하지만 그 기능이나 운영 방식을 보면 사실상 학교의 기관.
-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용역고용에서 자체직원으로 들어온 셈. 2021년 돌아가신 기숙사 청소노동자도 관악학생생활관장 발령 자체직원. 당시에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중간관리자도 자체직원이었는데, 책임 규명 과정에서 최종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보직교수나 법인직원들의 책임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함.
- 결국 많은 문제들이 총장발령 정규직과 기관장발령 비정규직 간의 고용이원화에 기반하고 있음. 개별 기관들은 사실상의 사내하청, 본부는 사실상의 원청, 총장은 사실상의 원청 사장인 셈.
- 그러므로 모든 학내 노동자들을 총장발령으로 일원화하고, 총장・본부 재무과 및 인사과에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서울대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선결과제. 물론 이것은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것. 비서공이 기조로 삼아 요구해왔고 여전히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
2. 일터 서울대, 쉼터 서울대: 작은 문 뒤, 청소노동자 휴게실 이야기
● 다음 발제문은 김민지 연구자(비서공 후원회원)가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을 주제로 작성한 「대학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의 폐쇄성, 비사시성, 임시성」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 김 연구자는 본 연구로 2023년 2월 서울대 건축학과 석사학위를 취득.
2.1. 서론
- 서울대학교에서는 2019년과 2021년, 휴게공간에서의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이 2차례나 발생. 본 연구는 서울대학교 내 청소노동자 휴게공간 130여개소 중 4개소를 분석한 것. 사망사고가 일어난 공과대학 302동은 사건 당시의 휴게공간이고, 나머지 3개소는 사망사건 이후 고용노동부 개선 권고 조치를 받은 공간.
- 저자는 각각의 연구 대상지를 직접 방문해 건물 내 위치, 규모, 동선 등 물리적 환경을 파악하고 추가적으로 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해 이전까지 “‘열악함’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온’ 청소노동자 공간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함. 이러한 연구는 휴게공간의 계획과 개선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임.
- 청소노동은 우리 사회의 ‘필수노동’이자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림자 노동’. 청소노동의 비가시성은 노동의 공간뿐만 아니라 휴게공간까지도 확장됨. 이 논문은 “대학 내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의 평등성과 공유성을 분석”해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이 지닌 ‘폐쇄성(Seclusion)’, ‘비가시성(Obcurity)’, ‘임시성(Impermanence)’을 밝힘.
- 청소노동자의 공간은 이전까지 학문적으로도 사각지대에 있었음. 건축학계에서는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고, 청소노동자의 휴게공간을 외면. 기존 사회학 연구들은 청소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다층적 불평등의 상황을 잘 지적했지만, 이러한 불평등과 공간을 연결해서 분석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움.
2.2. 이론적 배경
- ‘공간 불평등(spatial inequality)’이란 사회경제적 자원의 불평등이 공간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 이 연구에서는 주로 도시, 국가 등 폭넓은 범위를 설명하기 위해 활용되는 ‘공간불평등’ 개념을 단위 건축물에 적용함.
- 도시학자 르페브르(Lefebvre)에 따르면 공간은 사회적 생산물이며, 생산된 공간은 사고와 행위의 도구이자 통제, 지배, 권력의 수단. 공간은 사회적 관계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지며, 거꾸로 사회적 관계는 공간에 의해 구성﹒재구성됨.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파편화, 균질화, 계층화로 특징 지어지는 ‘가치 편향’된 공간을 생산했고, 신자유주의화는 공간적 불평등을 심화. 자본주의 사회의 공간 조직은 “‘주변화된 사람들’의 불평등과 소외를 더욱 견고하게” 만듦.
- 대학 캠퍼스는 특정 집단의 사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에 의해 유지되고 관리된다는 점에서 공유재(commons)의 성격을 가짐.
공유재를 구성하는 요소- 공유되는 자원
- 공유화(commoning)하는 실천과 제도
- 공유자원의 생산과 재생산에 연루된 공동체
대학 캠퍼스에 이를 적용하면?- ‘캠퍼스 건축물과 야외공간’ → 공유자원
- ‘캠퍼스 구성원들의 민주적 공간 사용을 위한 평등한 참여권과 실천’ → 공유화하는 실천과 제도로
- ‘캠퍼스 구성원’ → 공동체
- 이처럼 캠퍼스를 공유재로 해석할 때, 청소노동자 등 시설 관리자 또한 공유재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며, 이들이 공간을 사용하고 평등하게 분배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할 수 있음.
- 국내 청소노동자 휴게시설 관련 법규:
- 「산업안전보건법」의 제29조8과 동법 시행규칙 제30조의4: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위생시설의 설치에 관한 내용. 강제성을 가지지 않으며, 세부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형식적인 수준임.
- ‘청소근로자 환경시설 가이드라인’(서울시, 2014년 수립): 휴게공간 설치에 대한 5가지 기본원칙(①휴게실, 샤워실, 탈의실, 세탁실 등을 복합적으로 구성, ②청소근로자만의 전용 휴게공간 확보 및 남녀 구분 설치, ③거점 별 휴게공간 마련(작업공간으로부터 100m 내에 휴게공간 설치), ④냉난방 환풍기, 생활가전제품, 수납가구, 침구류 등 필수 비품 구비, ⑤1인당 5m² 내외의 적정규모 공간 구성)을 중심으로 실내환경 등에 대한 세부사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청소노동자’를 특정하는 등 보다 구체적임. 서울시 공공건축물에 우선 적용하고 민간에서는 자율적으로 적용토록 하였으나 상위 법령의 강제성이 부재해 실질적인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아 한계가 많았음.
- 2021년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휴게시설 설치 의무와 처벌 규정, 구체적인 휴게시설 기준이 명문화됨. 그러나 여전히 실제 현장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음. 휴게시설 면적 기준은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으며, 법령이 적용되는 사업장 규모를 차등해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별이 일어나고 있고, 남녀 휴게시설 분리가 강제사항이 아닌 고려사항으로 규정되어 있음. 무엇보다 지하, 옥상, 계단 아래 등 애초에 휴식이 불가능한 환경에는 휴게시설 설치를 금지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음.
- 대학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의 경우 별도의 기준이 없어 위와 같은 법령의 적용을 받음. 대부분의 대학은 각 대학별 ‘공간관리 규정’에 공간을 구분해 관리하는데,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대학 내 시설관리서비스 노동자나 그들의 휴게공간에 대한 분류 항목이 부재함. 이는 대학이 청소노동자를 대학의 구성원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줌.
2.3. 본론
-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의 출근시간은 오전 6:00~6:30. 교직원과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기 전인 오전 9:00~10:00 사이에 공용공간을 모두 청소함. 퇴근시간은 오후 3:00~3:30. 휴식은 보통 10:30~11:30 사이 정해진 휴게공간에서 이뤄짐.
- 청소노동자 1인당 청소면적은 약 2,000m². 청소노동자들은 건물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계절에 따라 여러 노동을 수행. 여름에는 잡초를 뽑고, 가을에는 낙엽을 치우고 겨울에는 눈을 치우는 등. 건물 간 내부구조와 외부환경의 차이에 따른 노동량의 편차가 심함.
- 다른 구성원들이 캠퍼스 건물의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며 ‘점(point)적인 공간사용’을 한다면, 청소노동자들은 건물 내부의 모든 바닥과 벽을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면(plane)적인 공간사용’을 함. 이는 노동시간 중 유휴시간이 발생하기 어려우며(학생이나 교수는 점과 점 사이를 이동하면서 휴대전화 사용이나 음료 섭취 등 휴식을 할 수 있지만, 청소노동자는 이동 역시 노동), 때문에 다른 구성원들보다 휴식 시간이 중요함을 의미함.
- 2022년 기준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의 총면적은 2,379m²로 건물 연면적 중 0.16%. 청소노동자 1인당 평균 휴게공간 사용 면적은 약 6m²로 타 구성원들과 비교했을 때 4~5배 이상 차이 남. 또한 이 수치는 단순 평균을 낸 것으로 실제로는 청소노동자 직군 내 휴게공간 면적 분배의 편차가 있음.
2.3.1. 중앙도서관
- 본관과 신관(관정관)으로 구분되어 있음. 신관 규모만 27,245m²이지만 휴게공간 전무. 청소노동자들은 신관의 화장실 비품박스 뒤 공간에서 잠시 휴식을 가짐.
- 본관 지상 1층에 휴게공간 5개소 위치함. 법적으로 지상이지만 경사지에 조성되어 있기에 실질적인 물리적 환경은 지하 1층에 가까움(중도터널 게시판 벽 너머에 묻혀 있음). 청소노동자 휴게공간 개선 시 지하 휴게공간들이 많이 개선되었으나 중앙도서관 휴게공간의 경우 별도의 조치가 없었음.
- 복도에 창문이 없음.
- 휴게공간 문 앞에 종이로 ‘청소원 휴게실’ 사인이 붙어 있음. 동일 건물 다른 공간의 아크릴로 만들어진 사인과 비교하면 휴게공간의 ‘임시성’을 보여줌.
- 본관 지상 1층은 ‘학생출입금지(시설보호구역)’으로 다른 공간들로부터 구별되어 있으며, 층별 안내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음.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의 ‘비가시성’을 보여줌.
- 휴게공간 1개소를 제외한 나머지 4개소의 공간에는 복도를 향한 환풍기가 없고 천장형 환기 덕트만 존재. 환기 덕트의 기능은 지하공간의 습기를 없애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바닥의 전기 난방시설을 켜야 함.
- 휴게공간 내에서 세탁물 건조를 해야 해서 습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여름에 휴식하기 어려움.
- 코로나 이전에는 7-8명이 한 공간을 사용해 감염성 질병에 취약했음. 코로나 이후에도 다수의 인원이 동시 이용하고 있음. 2개소에만 가벽을 설치.
2.3.2. 법학대학
- 법대는 총 5개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법대 15동에 유일한 휴게공간이 위치.
- 2019년 고용노동부 점검 당시 법대 다른 동의 휴게공간이 ‘계단 옆 공간 협소 및 위생상태 불량 휴게공간’으로 분류되어 15동 1층・2층의 휴게공간으로 통‧폐합. 통‧폐합 이후 하나의 방에 여자 5명, 남자 4명의 청소노동자가 한 공간을 동시에 사용하게 되어 휴식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함.
- 15동 1층의 남자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에 식사 준비, 식사, 세탁, 세탁물 건조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한 가구들이 공간을 차지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면적은 매우 좁음.
- 휴게공간 내부에서의 세탁물 건조로 환기가 어려우며 여름철 높은 습도로 휴식이 힘듦.
- 15동 2층 여성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은 ‘학위복 보관실’을 용도 변경한 곳임.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공간과 면적이 비슷하나 사용 인원이 1명 더 많음. 인원이 많을수록 필요한 가구가 증가해 휴식을 위한 면적이 좁아져 불편함이 가중됨.
- 설거지를 위해 휴게공간 외부 화장실 세면대를 사용하고, 세탁을 위해 타 건물 지하 샤워실 세탁기를 이용해 동선이 길어짐. ‘휴게공간-세탁실-샤워실’의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건물 설계 시 청소노동자를 위한 공간 계획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휴게공간의 ‘임시성’을 보여줌.
2.3.3. 공과대학
- 공대 302동은 2019년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이 발생한 곳. 먼저 건설된 공대 301동 건물의 문제점을 개선한 훌륭한 건물로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설계 시 청소노동에 대한 고려는 매우 부족하거나 전무했음을 알 수 있음.
- 사건 당시 휴게공간은 철제 구조의 계단 지하층에 경량벽재를 사용해 덧댄 공간으로 외부에서 용도를 추측하기 어려웠음.
- 계단으로 인해 소음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휴식이 어려웠을 것임. 바로 옆에 청소용품 창고도 있어서 악취도 발생했을 것.
- 내부 길이가 약 1.9m로 한 사람이 눕기에도 부족한 공간이었음.
- 창문이 없어서 환기와 채광이 매우 어려움. 청소노동자가 자비로 환풍기를 구입해 설치했으나 충분한 환기에는 역부족으로 사건 당시 걸레 냄새 등이 강하게 남. 냉난방시설도 미비.
- 적정한 공기질, 온도, 습도가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의 필수적 조건임을 보여줌.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시 노동자의 건강 악화, 최악의 경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2.3.4. 농업생명과학대학
- 200동은 3개 건물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높이는 지하 2층부터 지상 9층까지 이름. 이처럼 거대한 공간에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은 지하에 위치. 휴게공간이 지하주차장 내부에 위치해 매연에 취약하며 환기도 미비. 개선 조치에 따라 현재는 1층에 휴게공간이 새로 조성됨.
- 개선된 휴게공간도 열악함. 남성 휴게공간은 승강기 뒤에 위치하고 창문이 없음. 여성 휴게공간은 구석진 화장실 앞에 위치하고 하나의 방이 수납장에 의해 2개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음. 이 중 안쪽의 휴게공간은 창문도, 환풍기도 없어서 복도로 향한 문을 열어둠. 사생활 침해 우려.
- 여성 휴게공간은 1인당 사용 면적이 2.99m²로 조사한 휴게공간 중 가장 작음. 공간 사용인원이 모두 누우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크기임. 남성 휴게공간의 절반도 안되는 면적. 이처럼 좁은 공간을 2개의 더 작은 공간으로 또다시 구분한 것은 한 공간을 적은 인원이 사용할수록 휴식하기에 낫다는 판단에 의한 것임.
- ‘휴게공간-세탁실-샤워실’의 동선이 유기적이지 못함. 세탁을 위해서는 여자화장실 내에 위치한 싱크 옆 세탁기를 이용하고, 샤워를 위해서는 지하 1층 주차장 하역장 옆 공간을 이용. 샤워실은 자동차 매연뿐만 아니라 수시로 드나드는 자동차로 인한 안전 문제에도 노출되어 있음.
2.3.5. 소결
- 여성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이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공간보다 평균면적이 작다는 점은 성별에 따른 ‘집단 내 공간불평등’ 현상으로 볼 수 있음.
- 청소노동자 인터뷰에 다르면 용도에 따른 공간분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됨.
2.4. 결론
- 휴게공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불평등의 공간적 특성을 ‘폐쇄성(Seclusion)’, ‘비가시성(Obscurity)’, ‘임시성(Impermanence)’으로 정리할 수 있음.
- 폐쇄성: 휴게공간이 지하나 구석진 공간에 배치되어 나타난 특성. 특히 창문이 없다는 점은 밖에서 안이,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가시성’을, 비상시 탈출하거나 외부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함.
- 비가시성: 휴게공간의 위치가 비가시적일 뿐 아니라, 캠퍼스 내 그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 그 원인은 “청소노동자들의 공간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거나, 건물 내 필수적인 공간으로 ‘소속’되지 않”기 때문임. 이로 인해 청소노동자들은 ‘좁고’, ‘분산’되어 있는 공간을 오가는 비효율적인 동선을 가지게 되고, 휴식을 위한 진정한 휴게공간은 더욱 협소해짐.
- 임시성: 휴게공간은 주로 ‘기존 공간 개조하기’, ‘덧붙여 새로 공간 만들기’의 방법으로 조성됨. 이는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을 미리 계획하지 않은 건물에 사후적으로 휴게공간을 조성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내구성이 약한 재료를 활용해 급조된 공간은 소음과 냄새에 취약하고 냉난방 효율이 떨어져 공간 불평등을 재생산함.
- 2021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휴게시설 설치‧관리기준'의 문제:
- 휴게공간 최소면적(6m²)을 제시했지만 그 공간의 사용인원은 고려하지 않음. 양적 지표만 제시할 뿐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고려가 전혀 없음.
- 휴게공간 내 온도, 조명, 환경, 습도 등의 기준을 명시했지만 정작 ‘지하, 옥상, 계단 아래의 휴게공간 설치를 금지한다'는 조항이 부재해 ‘폐쇄성’과 같이 그 자체로 공간의 질을 구성하는 조건을 배제하게 됨.
- 법령 개정 과정에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의견이 배제돼 태생적인 한계가 있음.
3. SPC와 SNU: 우리가 불편한 동행, 언제까지?
3.1. 반(反) SPC 투쟁의 배경
- 파리바게트 노동자 처우 개선 및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는 천막 농성 (2021~2022년), 그리고 이후 언론에 보도된 SPC 내 생산시설에서의 일련의 노동자 사망/부상 사고들 (2022~2023년).
- - 2022년 3월 28일-5월 19일,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한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의 단식 농성이 진행됨.
- 2018년 1월, 3년 안에 정규직 본사와 동일한 임금 지급/근로계약서 전면 재작성/부당노동행위 시정 등을 이행하기로 노사간 사회적 합의가 진행. 그러나 SPC 본사는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음. 이에 반발하며 벌어진 단식 농성.
- 천막 농성은 2021년 7월부터 시작되었고, 노사 합의는 2022년 11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이 고용되어 있는 SPC의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와 노조 간에 이뤄졌음. 1년 4개월만의 합의에는 부당노동행위자 처벌, 승진 차별 철폐, 노조활동 보장, 정례적인 노사간담회 운영이 포함.
- 그럼에도 2022년 10월 15일 SPC의 계열사인 SPL 제빵공장 20대 노동자 사망사고, 2022년 10월 23일 샤니 성남공장 직원 손가락 절단 사고, 2023년 7월 12일 샤니 성남공장 손가락 골절 사고, 2023년 8월 8일 샤니 성남공장 노동자 사망사고가 차례로 발생. 더불어, 올해 8월 17일에는 SPL 제빵공장 내부에서 12시간 교대 일정으로 노동하던 직원이 의식을 잃는 사건 발생.
- SPL 노동자 사망사고 당시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 3년에 걸쳐 1000억원의 안전투자를 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함. SPC는 2022년 12월 그룹 내 생산시설 28곳에 대해 안전설비 확충과 위험요소 제거 등 개선을 완료했다고 밝혔으나 비슷한 사고가 여러 번 재발하였음. 지난 4년간 SPC그룹 내 생산시설에서 산업재해(이하 산재) 승인을 받은 건수가 759명에 이름.
- 이전부터 그룹 내에 뿌리깊게 존재해온 노조 탄압 등의 부당노동행위, 그리고 노동자 착취의 기조가 이렇듯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 어려움.
3.2. 서울대와 SPC의 유착 관계
- SPC그룹의 흔적을 서울대학교 내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음. 관정도서관 옆에 입점한 파리바게뜨, 관정도서관과 사범대에 위치한 파스쿠찌, 배스킨라빈스 자판기, SPC에서 직접 운영하는 농생대에 위치한 카페 벨에삐 등.
- 단순한 입점에 그치지 않음. 관악캠퍼스에는 SPC그룹과 허영인 회장이 ‘사회공헌’을 명목으로 기부금을 공동 출연해 설립한 SPC 농생명과학연구동이 존재. 해당 건물 내부에는 허영인 세미나실이 위치. 2008년,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은 서울대 제1회 ‘발전공로상’을 수상함.
- SPC와 서울대 간 산학협력은 지금까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 서울대 기술지주회사와 SPC그룹이 각각 5억원씩 출자해 설립된 ‘에스데어리’ 주식회사도 여전히 운영 중. 에스데어리는 낙농기업인데, 유제품에 서울대 로고마크를 박아서 판매하고 있음.
- 서울대학교 지속가능발전연구소는 2023년 5월 ESG 보고서를 발간하며, 국내 대학 부문으로는 첫 번째 ESG 보고서를 발간하였음을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 있음. 학교기구로서 ESG위원회도 신설됨.
잠깐! ESG란 무엇일까?
- 환경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서울대학교가 대학법인으로서 ESG 경영에 힘쓰겠다고 나선 것 자체는 환영할 일.
- 그러나 서울대와 협력하는 기업의 ESG가 어떠한지에 관한 언급은 현재로서 전무.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서울대가 인권과는 전혀 거리가 먼 기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지금까지 이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앞 발제에서 논했던 학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서울대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음.
- SPC그룹이 서울대학교와 맺은 긴밀한 산학협력적 관계는 연구 및 학문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노동자성을 지니는/혹은 지니게 될 학생들을 교육하는 대학이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과 협력을 지속하는 것은 모순. 또한 변화의 의지 없이 사회에 ‘피묻은 빵’을 여전히 유통하고 있는 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서울대학교가 지향하는 ESG 경영과는 괴리가 큼.
- 특히 에스데어리와 같은 자회사 합작은(지분을 SPC가 50%, 서울대 기술지주회사가 50% 보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 대학의 브랜드가치를 이용해 그 물의를 은폐하는 것으로서,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 에스데어리의 수익금이 지주회사를 통해 서울대에 재투자된다면 서울대 학생들 또한 SPC 계열사들에서의 산재사고에 직간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 참고로 SPC는 올해 8월 한국ESG기준원에서 ‘양호’ 판정을 받음.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은 자회사들이지 SPC 본사가 아니라는 이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정. 이 부분은 4부에서 언급할 ‘노조법 개정운동’과도 연결이 되는 문제.
3.3. 비민주적인 일터가 노동자들의 건강 및 안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 노동자들의 의견이 노동 구조와 업무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비민주적인 일터의 형태가 노동자들의 건강 및 안전을 위협하고 있음. 공장 노동자들의 경우 그 업무의 중요성이 괄시받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설에서 노동함. 사측에서 이를 인지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
- 안전 조치들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문제. 2022년 10월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경우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2023년 8월 성남 샤니공장 노동자 사망사고의 경우 고인이 끼어 사망한 기계가 작동 시 안전하지 않음을 사측에서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
- 노동자와 사측, 그리고 안전보건 관리자가 직접 재해 발생 원인을 찾아내는 위험성 평가도 하나의 해결방식이 될 수 있음. 피해 가능성(빈도)과 중대성(강도)을 추정하여 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일컬음. 기업의 구성원이 모두 참여할 수 있고 의견 수렴이 민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 하지만 이것도 현재로서는 한계가 분명한데, 이후 4부 발제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함.
- 파리바게뜨 농성 당시에는 무반응으로 대응했던 허영인 회장이, 2022년 SPL 공장 노동자 사망 사건에는 사회적 반발 확산 및 불매 운동으로 인해 열흘만에 대국민 사과를 진행한 바있음. 이러한 조치가 취해지기까지 노동자의 죽음이 필요했다는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사회적인 관심이 이러한 조치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 노조를 악마화하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가 특히 문제적인 이유.
3.4. 마치며
- 노조는 산재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사건을 공론화하여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음. SPL 제빵공장 사망사고는 안타까운 사고였고, 미흡하였던 SPC의 대응은 이후들의 사고를 막지 못했음.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 소속의 SPL 노조는 이러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 더 이상의 사고를 막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일터 내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역할이 더욱 중요.
4.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해서: 노조법 2・3조 개정운동과 함께
4.1.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기존의 안전장치와 그 한계들
4.1.1. 산업안전보건법 (산안법)
- 산재 예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률. 관리감독, 안전보건계획 수립,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음.
-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보호대상으로 함. → 계약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에 따라 적용되지 않을 수 있음.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노동자가 소외된다는 문제.
- 안전보건계획 수립・안전보건위원회 설치를 수행하지 않았을 때의 벌칙 규정은 있지만, 수립・설치는 해두고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벌칙규정은 없음 → 대다수 기업에서 요식행위로 전락.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거의 완전히 무시되는 실정.
4.1.2. 중대재해처벌법 (중재법)
- 벌칙규정이 없어 유명무실화된 산안법을 보완하기 위한 처벌 법률. 직접적 계기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 사망자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1년 이상 7년 이하 징역 또는 10억 이하 벌금. 사망자 발생 외에, 동일 사고로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 2명 이상, 동일 요인으로 인한 직업병 3명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처벌 대상.
- 산안법에서의 ‘근로자’ 규정과 달리 중재법에서는 안전조치 의무 적용대상이 ‘종사자’로 규정되어 노동자 일반으로 확대.
- 그러나 중재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고용주를 처벌하는 법. 그 자체로 예방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예방법령은 아님. 중재법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미 누군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
-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처벌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존재.
4.1.3. 위험성평가
-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부상이나 질병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위험 요인이 무엇인지 사전에 찾아내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살펴보고, 위험하다면 그것을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
- 절차: 시행 횟수는 1년에 한 번 정도, 상시 평가도 가능. 재해발생 원인을 사업주・안전보건관리자・노동자 등이 찾아내고, 피해 가능성(빈도)과 중대성(강도)을 추정하여 위험성 감소대책을 수립 및 실행
- 산안법에서 규정된 안전보건위원회가 안전관리 간부 중심이라면, 위험성평가는 일반 조합원까지 참여할 수 있음. 이를 통해 작업자에게도 본인 스스로 작업 중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인지하도록 할 수 있음.
- 그러나 10년째 시행 중임에도 제도 정착은 아직도 미진. 노조가 강력한 곳은 그나마 제도 적용 가능성이 높지만, 무노조 사업장 또는 노조의 힘이 약한 사업장은 적용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 (47% 노조 참여 없었음)
- 위험성평가를 통해 도출된 개선 대책을 이행하지 않거나 위험성 평가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사업주를 포함한 누구도 처벌받지 않음.
4.2. 현행 노동조합법의 한계와 개정 필요성
● 그렇다면 산재 및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처음부터 산안법・중재법・위험성평가를 잘 지킬 것을, 사측에게 노동자가 현장에서부터 요구할 수 있어야 함. (국가가 모든 것을 감독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고, 늦을 수밖에 없기 때문.)
- 그러나 노동자 개인의 힘보다 사측의 힘이 크므로, 노동자 개인이 이를 요구하기는 어려움! 따라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어 노조 대 사측의 교섭을 진행할 필요가 있음.
- 현재의 노동조합법은 여기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함.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표를 참조.
ⓐ 2조 2항 | 내용 |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
문제점 | 사업주, 또는 원청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한 하청 및 특수고용 노동자가 포함되지 못힘. 그래서 하청・특수고용 노동자는 원청과 교섭을 할 수 없음. | |
ⓐ 2조 5항 | 내용 |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이하 “노동관계 당사자”라 한다)간에 임금ㆍ근로시간ㆍ복지ㆍ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주장의 불일치라 함은 당사자간에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
문제점 | ‘근로조건의 결정’이라 함은 미래시제. 즉 앞으로의 노동조건 결정을 위한 쟁의만 합법파업이라는 이야기. 현재의 노동조건에 문제가 있어서, 산재가 발생해서, 산안법 위험성평가를 지키라고 요구하기 위해 파업을 한다면 불법인 것. 합법파업이 되기가 매우 어려운 조건. | |
ⓐ 3조 | 내용 |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
문제점 | 손해배상 청구가 어떻게 제한되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탓에 사실상 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현재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부진정 연대책임’으로 청구되어 옴. 쉽게 설명하자면, 조합원 n명이 있는 노조에 사측이 20억짜리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면, 이것이 20억/n 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연대책임으로 조합원 각각에게 20억씩 청구되는 것. 노조를 탈퇴하면 취하해 주겠다는 식으로 노조 파괴 공작에 이용되고 있으며, 다수의 자살자를 발생시키는 원인. |
4.3.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하여
● 상술한 것과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그 렇다면 노조법 2・3조 개정안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 2조 2항 | 변화 | [사용자 범위의 확대]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 범위에 추가.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자성과 실질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을 근거를 마련. |
문제점 | 현재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거나 설비 가 동방식의 개선을 통해 노동안전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청해도 하청업체는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실상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설비 소유 및 운영권자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사용자 개념의 확대가 필요. | |
ⓐ 2조 5항 | 변화 | [노동쟁의 개념의 확대] 기존의 임금협상, 단체협약 체결과 같은 사안을 넘어 해고자 복직, 노동법 위반 등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분쟁도 노동쟁의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음. |
의미 | 현 노조법 2조 5항은 현재의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파업이 어려움. 개정안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도 합법 파업으로 인정되므로,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근로조건을 바꾸는 것에 도움. | |
ⓐ 3조 | 내용 |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노동조합원과 그들의 가족 등 ‘신원보증인’에게 천문학적 액수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것에 제동을 걸기 위해, 각 개인의 위법행위를 법적으로 입증해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함. |
의미 | 법률적으로, 위험성 평가나 위험성 평가에 의해 도출된 개선 대책 실시를 강제할 의무가 없음. 따라서 이러한 부분과 관련해 단체협약, 더 나아가 쟁의행위가 필요할 수 있음. 사측의 손해배상 소송이 이러한 쟁의행위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노조법 3조 개정이 필요. |
4.4. 결론
- 앞서 1부에서 발제한 바와 같이, 비서공의 핵심적인 활동 기조는 서울대 학내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일원화. 서울대 본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직접 책임지라는 것.
- 노조법 개정운동, 특히 그 중에서도 2조와 관련된 부분은 비서공의 기조와 적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 서울대 본부는 청소경비노동자, 생협노동자, 자체직원들의 실질적 사용자임. 서울대 본부가 고용일원화 요구에 복지부동한 태도로 대응한다면 학교 외부에서 상위 법령의 개정을 통해 그것을 이뤄낼 수도.
- 서울대와 여러 관계를 맺고 있는 SPC그룹의 본사와 자회사 관계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음.
-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조법 개정 서명운동(18일까지 진행)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림. 주변에도 널리 알려주신다면 감사드리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