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교원ㆍ직원은 징계시효 3년, 학생은 무제한?!
‘서울대학교 학생 징계 규정’ 개악 철회하라!
2023년 2월 21일 서울대학교 유홍림 총장은 「서울대학교 학생 징계 규정」 중 징계시효 조항을 삭제한 개정규정을 공포ㆍ시행했다. “징계 의결 요구는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2년이 지난 경우에는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종전 규정(제10조)을 삭제한 것이다.
징계시효 제도는 자의적인 징계권 행사를 막기 위한 보호장치로서 기능해 왔으며, 뚜렷한 이유 없이 이를 전면 폐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교원과 직원의 경우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징계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학생에 대해서만 징계시효를 폐지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이 같은 차등적 규정은 교수-학생 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으며, 교수나 대학 본부가 학생들의 반대 목소리를 옥죄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다. 대학 본부는 이처럼 중차대한 개악을 진행하면서도 토론과 숙의를 거치기는커녕 개정안의 사전공고, 평의원회의 심의 등 법적으로 요구되는 절차마저도 준수하지 않았다.
2017년 당시 성낙인 총장이 시흥캠퍼스 반대 투쟁에 참여한 학생 12명에게 무기정학 등 중징계를 내렸던 일을 생각해보자. 그 중 일부는 학내 4.19혁명 추모행사에 참석 중이던 성낙인 총장에게 항의해 피켓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누구도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았던 이 시위는 징계의결서에 “업무방해”로 적시되었다. “(농성 중인) 학생에게 물대포를 쏘고 박정희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무슨 4.19에 헌화를 하냐, 부끄럽지도 않냐”고 외친 것은 “폭언”으로 둔갑했다. 12명에 대한 부당한 징계는 1년 7개월 뒤 법원 판결에 의해 비로소 무효화됐다. 대학 본부가 징계권을 동원해 학생들의 저항을 억압하는 것을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징계시효의 폐지는 앞으로 대학 본부가 학내 분규에 참여한 학생을 ‘졸업할 때까지’ 괴롭힐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이번 개악은 이미 불평등한 교수-학생 관계를 더욱 불평등하게 만들 것이다. 교원은 징계시효가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이므로 학생은 교수의 비위를 신고하려면 ‘3년 이내’에 해야만 한다. 그러나 학생 징계시효는 폐지돼, 이제 교수는 ‘언제든지’ 학생에 대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불합리는 대학원생의 경우에 특히 문제가 되는데, 교수가 수년도 더 지난 일을 가지고 문제를 삼거나 이를 빌미로 부당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교수가 대학원생에게는 과거의 일을 가지고 ‘무기한’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반면, 대학원생은 그러지 못하는 게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2001년 학생 징계 규정을 제정할 때부터 20년 넘게 징계시효 조항을 유지해 왔던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자의적인 징계권 행사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대학 본부는 “징계 시효 도과로 인해 징계대상자가 재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징계가 불가하였던 사례를 방지하고자” 징계시효를 폐지했다고 설명한다. 모 단과대학에서 피해학생 면담을 통해 비위 사실을 인지했으나 징계시효가 경과되어 징계가 불가했던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한 취지라면, 이는 교원 징계 규정과 마찬가지로 성폭력범죄의 경우에 특별히 장기(長期)의 시효를 두는 방법으로도 해결 가능하다. 그리고 종전 규정 하에서도 검찰ㆍ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는 징계시효의 진행을 중지할 수 있었다. 대학 본부가 밝힌 개정 이유만으로 징계시효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이유다.
대학 본부에 묻고자 한다. ‘재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징계가 불가’한 것은 교직원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학생의 징계시효만 폐지한 이유가 무엇인가? 서울대 인문대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8만 장 분량의 문서 스캔을 지시하였던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 사건’과 같이 교직원이 인권 침해를 자행했음에도 징계시효가 경과해 처벌받지 않은 사례도 많다. 아니, 그런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다. 교원ㆍ직원에게 적용되는 징계시효 제도를 유독 학생으로부터만 박탈하겠다는 것은, 학생을 대학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이번 개악은 적법한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있다. 「서울대학교 학칙」 제119조는 하위규정을 개정하고자 할 때 개정안을 7일 이상 공고한 후 학사위원회 및 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 총장은 학내 기관들의 의견조회만 거쳤을 뿐, 막상 규정을 적용받을 일반 학생들에게는 개정안의 사전공고를 하지 않았다. 또, 개정안은 학사위원회의 심의만 거쳤을 뿐 평의원회의 심의는 거치지 않았다. 징계시효 조항을 삭제한 이번 개악은 부당함을 넘어서 위법하고, 무효인 것이다.
서울대학교 유홍림 총장은 징계시효 조항을 삭제한 「서울대학교 학생 징계 규정」 개악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
2023년 8월 30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서울대분회(준),
관악중앙몸짓패 골패,
노동당 서울대분회,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
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시흥캠퍼스 반대 학생시위 폭력진압 사건 손해배상청구 소송인단,
학생사회주의자연대(준) 서울대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