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인상에도, 버스요금 인상에도 미치지 못한 최저임금 결정을 규탄하며, 모든 일하는 사람의 생활 보장을 위해 보편적인 연대를 만들어나가자


 내년 최저임금은 결국 시급 1만 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역대 두 번째 낮은 인상률인 2.5% 인상으로, 올해 시급 9,620원에서 겨우 240원 오른 9,860원에 그쳤다. 110일이라는 역대 최장기 최저임금위원회 심의 기간을 거치면서도, 세계적인 최저임금 인상 추세 속에서도, 올해로 10년째 이어진 ‘최저임금 1만 원’ 구호는 현실이 되지 못한 셈이다.

 이번 불충분한 최저임금 결정이 특히 문제적인 이유는 최근 생활물가의 급상승과 공공요금의 인상이 이어지며 체감소득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을 중요시해온 정부가 라면값 인하를 기업에 요구할 만큼 심각한 고물가 속에서 실질임금은 사실상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3.5%로, 기획재정부는 3.3%로 예측했는데, 면피에 불과한 240원 인상은 물가 인상률 예측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실상의 삭감이나 다름없다.

 공공요금의 인상은 청년・학생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겨울부터 전기 및 가스 요금의 폭등이 큰 이슈로 떠오른 데 이어, 8월부터는 시내버스 요금이 300원 인상되고 10월부터는 지하철 요금이 150원 인상되며 생계난 우려가 심해져만 가고 있다. 특히 학외에서 통학하는 경우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에게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여러 대학이 등록금 인상까지 거론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최저임금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많은 청년・학생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학비와 주거비, 식비를 비롯한 각종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 긴 시간의 노동으로 내몰릴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결정의 결과가 이토록 부족한 이유는 노동에 대한 정부의 왜곡된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최저임금위원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음은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가 최대 주69시간 노동을 가능케 하는 노동시간 연장 정책의 설계자였다는 사실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더군다나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기간 중 김준영 노동자위원이 하청 노동자 고공농성장에서 경찰의 곤봉에 맞고 연행되었다가 강제로 해촉되기까지 했다. 노동에 대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이 최저임금위원에까지 미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9,800원 선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정부 고위인사의 발언과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를 부정하는 경사노위 위원장의 말은 그대로 현실화되었다. 정부와 경영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영세자본이나 자영업자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주장하지만, 임대료 제한이나 하청계열화 구조개혁 등 대기업의 독점이윤을 재분배하자는 정책은 찾아보기도 어렵다. 내년, 아니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은 고려의 대상에조차 없는지,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최저임금의 수준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불충분한 최저임금은 생계난은 물론이거니와 이와 뗄 수 없는 건강과 안전의 문제로까지 이어지며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그 가치를 평가절하당하며 불평등한 위치에 놓인 여성 노동자,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 등의 소득에 직접적 악영향을 미치며 노동시장 불평등을 오히려 강화할 것이다. 당장 대학의 청소 및 단체급식 직종 노동자 등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인력이 부족하여 휴가를 사용하면 동료가 겪을 고통이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휴가 없이 일하며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조금이나마 벌충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생활임금 보장, 노동시간 단축과 인력 충원이 함께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모두의 보건과 안전이 보장되는 일터, 불평등과 차별이 극복되는 사회, 인간다운 노동이 이루어지는 대학은 현실로 다가올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부족한 결과로 끝을 맺었지만, 올해의 투쟁 과정에선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들이 가시화되며 최저임금이란 제도의 보편성 확장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만들어왔다.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산입범위 확대가 저임금 고착화를 초래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수습노동자와 장애인 노동자 등 ‘생산성’이 낮다는 핑계로 최저임금의 적용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및 프리랜서 노동자 등 헌법적 권리인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해온 노동자들은 개수・과업당 혹은 월 소득 기준 최저임금을 지정하여 권리의 보편성을 확대하라고 외쳤다. 노동시장 불평등을 더욱 심화할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안은 노동자와 시민의 반대 속에서 철회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년 최저임금 결정 앞에 절망하지 않고, 일하는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생활이 보편적 권리로 보장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물가 인상에도 버스요금 인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결정을 규탄하면서, 최저임금의 보편성 확장을 위한 연대에 동참하자. 모든 일하는 사람의 생활 보장을 위한 보편적인 연대에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