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일터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되는 대학, 올해에도 우리에게 남은 책임

서울대 공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4주기 및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2주기를 맞으며


 인간다운 노동을 위한 노력은 사회 깊숙한 곳까지 닿을 때, 그래서 모두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 때 희망이 될 수 있다. 지난 2019년 8월 9일, 서울대학교의 한 청소노동자분이 공과대학 302동 휴게공간에서 세상을 떠났다. 계단 아래 간이공간에 조성된 좁은 휴게실은 폭염에 대비되지 않았으며 창고와 붙어있어 청소용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이었다. 그로부터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2021년 6월 26일, 관악학생생활관 925동에서 또 한 사람의 청소노동자분이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196명 정원의 건물을 내부와 외곽까지,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미화해야 했던 높은 노동강도 속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였다. 당시 일부 보직교수들의 부적절한 발언은 유족과 고인의 동료를 포함한 대학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 2023년, 최소한의 노동환경을 지키고 모두가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서울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충분한가?

 올해 2023년은 한국에서 산업재해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故 문송면 노동자 사망 사건 35주기이자 원진레이온 노동자 참사 공론화 35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오랫동안 이어졌음에도, 2019년과 2021년의 사망 사건이 드러냈듯,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재해는 교육의 공간을 표방하는 대학 현장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청소・경비, 기계・전기, 학생식당 단체급식 조리 등 대학의 일상을 유지하는 다양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처우 개선과 함께 노동조건에 대한 포괄적 관심이 필요하다. 즉 노동강도와 노동시간 및 휴게공간, 직무 스트레스와 심혈관 건강, 근골격계 유해요인 및 시설 내 사고 위험요소, 화학물질과 공기 질 등 환경적 요소들이 포괄적으로 고려될 때 일터의 안전과 보건이 개선될 수 있다.

 서울대의 경우 2019년 사망 사건 이후로 2020년경 휴게공간이 대거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명목상 조치에 그칠 뿐 실질적 개선에 미치지 못하는 공간들이 많다. 이를테면 중앙도서관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처럼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심하게 낮거나, 명목상으로 지상층이지만 실제 건물 구조상 지하 환경이나 마찬가지로 환풍, 채광, 제습 등이 열악한 공간은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인간다운 업무 강도를 위해선 미화 직종 및 생활협동조합 학생식당 조리 직종에 인력 충원이 시급하며,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지정되어 장시간 연속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경비노동자의 노동시간 개선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나 생활협동조합의 단체급식 학생식당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인력이 감축된 이후 대면수업으로 전환된 현재에도 인력 충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학외 조리 직종 인건비에 비해 낮은 임금과 처우로 구인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높은 노동강도는 제자리인 실정이다. 대학이 구성원들의 복지에 직접 재정적으로 책임지지 않고 사실상 ‘별도법인’ 생협에 ‘외주화’함으로써 학식 등의 복지와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동시에 악화한 셈이며, 대학본부의 재정 책임을 통한 인력 충원이 없다면 사고와 재해의 위험이 크게 우려되는 형편이다.

 아울러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선 차별적 고용구조의 극복도 요구된다. 실질적인 처우 개선과 인력 충원에 대학이 제대로 책임지기 위해선 총장발령으로의 고용 일원화가 필수적인 것이다. 2017~2018년 이후 미화 직종 등의 ‘시설관리직’을 포함한 다양한 학내 간접고용 및 기간제 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고는 하나, 전환된 ‘자체직원’은 여전히 총장발령의 ‘법인직원’에 대해 여러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며, 단과대 학장 및 기관장 발령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사실상의 ‘간접고용 구조’를 대학 내에서 경험하고 있다. 특히나 관악학생생활관의 경우 청소노동자를 관장발령으로 고용하다 보니 대학본부에서 인력 충원 등을 재정적으로 책임지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진정한 학내 구성원이 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학내의 이중적・차별적 고용구조는 시정되어야 한다.

 지난 2022년 11월 4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옴부즈퍼슨에서 오세정 전 총장에게 제출한 건의서에서도 “청소노동자의 발령주체를 총장으로 일원화함으로써 관리체계 정립”할 것이 건의 사항으로 언급되었다. 더불어 “근로시간 개편, 휴게시설 정비, 위험 업무 조정, 연차 및 숙련도에 따른 적절한 보상, 휴가 사용,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예방과 지원 조치 강화를 통한 근무여건 개선”이 건의된 만큼, 기관장발령 노동자의 총장발령 전환 및 처우 개선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대학본부가 조속히 이행하여야 한다.

 끝으로, 대학의 미화와 위생을 담당하는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흔히 ‘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노동은,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노동’이자 다양한 ‘숙련’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노동이다. 그럼에도 중고령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청소노동은 지금도 자주 평가절하되고 휴게실을 비롯한 노동자의 자리는 비가시화된 공간으로 내몰린다. 유홍림 신임 총장과 대학본부는 더는 대학 내 사망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리고 대학의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그동안 제기된 요구들을 적극 수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 내에서 소중한 몫을 다하고 있는 노동이 ‘사소’해지지 않도록, 대학과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의 우리도 더 관심을 기울여나가자.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 빗소리 of SNU ・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기계・전기분회 ・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