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그날 그대가 훼손한 것은
학내 인권의제단위 대자보 5종의 훼손 사건에 부쳐
6월 2일, 학내 인권의제단위들이 중앙도서관 터널에 부착한 대자보의 훼손 사실이 확인되었다. 노동절에 노조 탄압에 저항하며 분신한 건설노동자, 고 양희동 열사를 추모하던 대자보도, 노동자로 하여금 분신을 감행케 한 정부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던 대자보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를 결정한 차별행정을 규탄하던 대자보도 모두 훼손되었다. 누군가가 테이프로 훼손을 복구하려던 시도도 발견되었으나, 그 복구된 자리마저 다시 훼손한 흔적 역시 발견되었다. 범사회적인 백래시의 폭주 속에서도 상식 바깥의 일로 여겨지던 대자보 훼손이 이토록 극명한 형태로, 진리를 위한다는 대학의 중심에서 자행된 것이다. 이것이 이 사회가, 이 대학이 누군가의 생에 대한 발화를 마주하는 태도다.
그날 그대가 훼손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대는 우리의 존엄을 훼손하지 못했다. 그대는 고작 글 한 편으로 우리의 발화에 맞설 자신이 없어 얇고 넓은 종이 다섯 장을 찢은 비겁자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그대는 그대가 훼손한 대자보의 제목처럼, 우리의 ‘행진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훼손된 얇은 종이 너머에서 온갖 방식으로 움직임을 시작할 것이고, 끊임없이 행동할 것이며, 이 폭력의 세계가 변화할 때까지 온몸으로 저항할 것이다. 그대가 아무리 우리의 글을 훼손하고 우리의 발화를 막으려 할지라도, 변함없이 비겁하게 이 한 장의 종이마저 훼손할지라도 그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무참히 찢긴 다섯 편의 종이로부터 훼손된 모두의 권리를 본다. 애석하게도 그날 그대가 훼손한 것은 대자보를 게시한 우리의 존엄이 아닌, 이 공동체의 모두가 어떠한 것에 대한 발화를 시작할 권리다. 어떠한 사태의 부당함을 논할 권리, 그 부당함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발화를 이어갈 권리, 이러한 일련의 발화에 참여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방법을 익힐 권리. 그리고 이 모든 발화를 안전하고 평등한 공론장에서 지속할 권리. 그날 그대가 훼손한 것은 이러한 권리들이다.
이제 우리는 그대와 그대로부터 그러한 행위를 가능케 했던 이 사회의 백래시가 훼손한 우리의 공론장을 지키고 복구할 방안을 찾아나서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가 어떠한 발화를 시작할 수 있는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것이다. 고작 대자보 한 장을 붙일 용기도 의지도 없어 애꿎은 종이만 찢은 그대 역시 늦지 않았다. 그대가 최소한의 양심이나 이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가졌다고 믿는다.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훼손한 만행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사과문과 그대의 연락을 기다리겠다. 6/19일까지 해당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시 우리는 그대가 공동체적 해결의 의사를 저버린 것으로 간주하고 법적으로 책임을 묻겠다.
2023.06.06.
관악중앙몸짓패 골패,
노동당 서울대분회,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ueer In SNU,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
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
학생사회주의자연대 서울대모임
훼손된 대자보 5종의 발화 단위
관악맑스주의학회 맑음,관악중앙몸짓패 골패,
노동당 서울대분회,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ueer In SNU,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
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
학생사회주의자연대 서울대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