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서울대 특강이 드러낸 비뚤어진 노동권 인식에 부쳐

노동시간의 연장과 불규칙한 ‘유연화’, 생활하기엔 너무 낮은 최저임금, 과연 누구를 위한 “지킬 수 있는 법”인가?


 지난 2023년 5월 17일(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학부생 교양강의 특강을 위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방문하였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회원들로 구성된 ‘주69시간 노동시간 개악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모임’에서는 장관의 서울대 방문 특강에 맞추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노동자와의 대화가 책임있는 자세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강의실 앞에 부착하였다. 최대 주69시간 근무를 가능케 하는 노동시간 연장 정책을 전면 철회하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을 장관에게 요구하는 대자보였다. 이정식 장관은 특강 당시 대자보의 내용을 언급하며 “오늘 강의한다니까 대자보가 붙었는데 주69시간 빨리 없애라고 하고…(과거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 ‘최저임금 인상하라!’ 하면서도 최저임금 얼마인지도 몰랐던 기억이 난다.”라며 학생들이 ‘뭘 몰라서 요구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더군다나 ‘혁신과 변화의 시대,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개혁’을 내건 특강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을 마주한 장관은 여러 차례 노동권에 대해 비뚤어진 인식을 드러냈다.

 노동시간 연장 법안에 관한 이정식 장관의 발언은 그의 왜곡된 노동관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이 장관은 서울대학교 특강에서 주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최대 주52시간 노동을 가능케 하는 노동법은 사업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업장에서 이러한 노동시간이 강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또한 불규칙하게 ‘유연화’되고 연장된 노동시간 정책과 같이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과 함께, 현실적이지 못한 "지킬 수 없는 법"은 현장에서 무시되거나 편법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장관이 말한 "지킬 수 있는 법"이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제시된 것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3월에 종로 빌딩의 한 경비노동자가 4일 동안 62시간 노동을 하다 쓰러져 세상을 떠난 일, 5월 19일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던 모 대기업 팀장급 직원이 여의도 한강변에서 사망한 일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연속된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을 극도의 스트레스 및 산업재해와 질병에 노출시키며 생명의 위협까지 초래한다. 당장 서울대의 경우에도 ‘감시ˑ단속적 근로자’로 지정된 경비 직종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 중 노동시간ˑ휴게ˑ휴일에 관한 조항을 적용받지 못해 장시간 연속 노동을 감내해왔는데, 건강에 긴 노동시간이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경비노동자들이 서울시 및 서울대병원의 경우처럼 ‘감시ˑ단속적 근로자’ 지정을 폐지하라고 요구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터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 과잉 노동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이 시민들의 건강과 생존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미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청년ˑ학생과 노동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신체가 기계도 아닌데 노동시간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극도로 불규칙하게 만드는 법을 정말로 "지킬 수 있는 법"이라 부를 수 있는가?

 최저임금 인상 요구에 대한 이정식 장관의 관점도 문제적이다.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측과 사측 간의 교섭을 통해 정해지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조직화하기 어려워 교섭상 매우 불평등한 위치에 놓이는 영세ˑ중소사업장 및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의 경우, 최소한의 생활조건을 사회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지정되는 최저임금은 생존권에 다름 아니다. 최저임금이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고 저평가된 직종의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된다면, 이는 생계를 위해 강요되는 초과 노동시간으로 귀결된다. 물가와 공공요금의 상승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생활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면, 많은 일하는 시민들은 건강과 안전이 위험해짐을 알면서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저해할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현 정부의 노동시간 연장 정책이 신규 채용보다 한정된 기존 인력의 초과착취를 장려할 우려가 크다. ‘선택권’과 ‘자유’를 명분으로 내건 정책이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강제’로 다가오는 조건 속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악순환을 가져오는 현 상황을 ‘개혁’하기는커녕 “지킬 수 있는 법”만을 운운하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모습은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개악’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고용 책임의 파편화와 비가시화에 맞서 쟁의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책임으로 일관한 이정식 장관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이 파편화되고 비가시화된 상황에서, 이정식 장관은 이를 올바르고 합법적인 노사관계라 포장하고, 존엄을 위해 쟁의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매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기간제’ 채용이 임시적 업무 뿐 아니라 상시ˑ지속적 업무에까지 손을 뻗치거나, ‘파견근로’라는 간접고용이 용역ˑ도급ˑ하청ˑ외주 등으로 고용 관계를 숨기거나, ‘특수고용’처럼 아예 노동자를 자영업자/개인사업자로 위장한 채 실질적인 고용을 비가시화하는 모습이 오늘날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이러한 비정규 고용 속에서 불안정한 삶을 감내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민주주의 사회의 당사자로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존엄한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적 목소리를 내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동안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호명하고 사회적 노동권을 주장해나가는 것은 노동조합이 당연히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그러나 강연에서도 노동조합 출신임을 자부하던 이정식 장관은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기본”이라며 “‘밥을 굶다가 가는 한이 있어도 내가 하는 거지 왜 남의 사업장에 가서 그러냐’고 주변에 말해왔다”고 말했다. 그동안 30%에 달하는 임금 삭감 속에서 저임금 하청 노동자들이 조선업 사업장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그리고 지금도 조선업계의 인력 부족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현실을 되돌아보면, 하청노동자가 케이지 안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해야 했던 일터가 왜 “남의 사업장”인지 장관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작년 7월 정부가 지배지분 100%를 보유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였음에도, 정부는 조선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하청 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는커녕 하청 노동조합의 단결권ˑ단체교섭권ˑ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당장 이 장관부터 강제력을 동원한 불법 진압을 공언하고는 2022년 8월 3일 “책임질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다”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비정규 간접고용이 난립하는 노동 체제에서 조선 산업을 지탱해온 숙련 노동력을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지 장기적 고려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이정식 장관은 강연에서 작년 화물연대 파업과 이에 대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으로 그 열악한 조건이 드러난 화물노동자들에 대해 이들이 ‘자영업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특정 사업에 상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전속성’을 지닌 화물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법원판결이 나오는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더욱 확장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최근의 법적 추세이다. 게다가 화물트럭이나 레미콘 노동자들 등 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1990년대 이후에야 사측의 요구에 따라 ‘자영업’의 외양으로 내몰린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 장관은 책임을 파편화시켜 교섭을 어렵게 하고 노동권을 약화하기 위해 생겨난 ‘위장 자영업자’의 외양을 들어 특수고용이라는 질 낮은 일자리의 문제를 회피하려 하는 셈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관련 기본협약(87・98호)에도 배치되는 강압적 업무개시명령으로 작년의 화물연대 파업은 막을 내렸지만, 정부가 ‘법치’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안전운임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불법’으로 매도해온 가운데, 앞으로 장시간 운전 노동이 도로를 달리는 시민들의 안전까지도 위협하게 되는 현실을 어떻게 개선하고자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청년세대의 권리를 위한다면, ‘갈라치기’ 대신 노조할 권리・교섭할 권리 확장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하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특강에서 정부가 ‘MZ 세대’를 강조하는 것에 노림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약자를 조직이 없는 사람, 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한 사람,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체계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한다”며 “대표적인 게 MZ”라고 답했다. 약자를 살피려는 시도는 유의미할지 모르지만, 이정식 장관은 추상적으로 ‘MZ 세대’만을 내세우며 현재 노동시장 내에서 기간제, 파견 등의 간접고용, 특수고용 같은 고용형태로 내몰린, 그중 다수가 청년일 노동자들의 약자성에 대해선 애써 외면하고 있다. 편법적인 고용 관행 속에 이윤 극대화를 명분으로 불합리한 처우를 겪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에 의견을 개진하기도 어렵다. 이정식 장관이 이야기하는 ‘미래세대’ 안에 그런 노동자들은 대표되고 있는가?

 이정식 장관은 특강에서 이른바 ‘MZ 세대’를 이야기하며 은연중에 생산직이 아닌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MZ 세대’를 연관 짓기도 했다. 장관은 ‘MZ 세대’를 강조하는 이유는 ‘MZ’가 경제활동인구의 45%나 되기 때문이라고 이날 강연에서 밝혔지만, 청년 노동자 중엔 과연 안정적인 정규직 지위에 놓인 사무직 노동자만 존재하는가? 청년도 건설 현장의 노동자로 취직하곤 하며, 청년 비정규 금속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한다. ‘MZ 세대’를 강조하는 가운데 청년 노동자와 중장년 노동자를, 그리고 청년 내에서 사무직 노동자와 현장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갈라치기’하고, ‘청년 정규직 사무직 노동자’만을 과대대표하려는 모습은 무척 문제적이다. 정부가 ‘MZ노조’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 건설노조의 투쟁을 ‘건폭’으로 매도해온 모습을 보면, ‘청년 사무직 노동자’의 이미지와 ‘중장년 현장직 노동자’의 이미지를 부당하게 대립시키는 프레임이 떠오른다. 건설 현장에서 화장실에 갈 권리부터 노동조합을 통해 쟁취해온 여성 청년 건설노동자들을 생각해보자. 정규직 사무 청년 노동자만을 ‘MZ 세대’로 과대대표해오며 ‘세대’를 빌미로 노동현장의 불평등을 비가시화해온 정부의 문제적 행태가 선명해진다. 이정식 장관은 특강에서 끊임없이 ‘국민통합’을 강조했지만, 그가 말한 ‘국민’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에게 ‘통합’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정식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미래세대’와 ‘법치’, ‘공정’과 ‘상식’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였지만, 비뚤어진 노동권 인식에 기반한 노동정책은 오히려 청년세대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정식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은 평소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청년세대의 희망을 박탈하는 착취구조라며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정부는 노조할 권리마저 보장받기 어려운 영세・중소 사업장의 조건을 방치했고, 불안정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과 쟁의를 통해 차별적 처우를 개선하고자 할 때 탄압으로 일관했으며, 다수의 청년세대가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실질적 사용자와 교섭하기 위해 꼭 필요한 노조법 2・3조 개정 즉 ‘노란봉투법’ 제정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만을 내보였다. 5월 23일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초기업교섭・산별교섭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법청원이 5만 명의 서명 목표를 달성하였다. 기업 규모와 고용형태별로 처우의 차이가 극심해지는 이중구조와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업별 교섭의 담장을 넘는 초기업교섭・산별교섭으로 동일노동 동일처우를 만들어가야 한다. ‘MZ세대’를 내세우는 ‘갈라치기’로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노동권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할 권리를 더욱 열악하고 차별받는 일터로까지 확장하는 것이 이중구조를 극복하는 길이다. 이정식 장관과 윤석열 정부는 진정 청년세대의 미래와 존엄한 삶을 추구한다면 노란봉투법 및 초기업교섭・산별교섭 활성화 입법에 적극적으로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