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우리의 연대: 2023년 세계노동절 전야제


 안녕하십니까. 저희 비서공은 2018년 대학이 책임지는 ‘진짜 정규직화’를 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자-학생 연대기구입니다. 그동안 모든 학교 구성원이 존엄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서울대를 만들기 위해 2019・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대응, 대학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국정감사 대응, 노동자 처우와 학생복지를 함께 개선하기 위한 대학생협 학생식당 노동자들과의 공동 투쟁 등의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투쟁으로 인사드립니다. 투쟁!

 근래 들어 학령인구 감소 속에 대학의 구조적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대학 구조조정이 심화되고 있고, 14년 동안 사실상 동결되었던 등록금도 많은 대학에서 인상되고 있다고들 합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대학이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대학구조조정의 부담은 학생과 노동자 등 대학 내의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의 동의 없는 학과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고, 대학의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노동자 인력 감축이 일어나는 곳도 많습니다. 대학 구조개편의 비용을 분담하고 이해당사자들을 조율해야 할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습니다. 학생과 노동자 등 다양한 구성원들의 교육과 생활 공간인 대학에서 공공성은 실종되어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활동해온 서울대학교는 2011년 졸속으로 법인화가 이루어진 이후 급속하게 대학으로서 지녀야 할 공공성을 잃어버려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은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투기를 위해 시흥캠퍼스 건설을 비민주적으로 밀어붙였고, 학생들의 복지와 교육권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또한 대학 법인은 직접 고용한 정규직원 이외의 다양한 학내 노동자들을 각 단과대와 기관 발령, 혹은 대학생협 등 별도법인 발령으로 고용하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대학이 노동자의 고용을 직접 책임지지 않는 조건에서, 고용안정은 다소 개선되었지만 실질적인 처우 개선과 차별 해소는 너무나 미진했습니다.

 대학이 재정적 책임을 미루고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면서 높은 노동강도 속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생협의 단체급식 학생식당 노동자들은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조리환경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심폐질환의 위험에 노출되어 안전하게 일할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공성의 역할을 방기하며 대학기업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다양한 윤리적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반인권 기업으로 악명 높은 SPC그룹과 서울대가 산학연협력을 하는 가운데 SPC의 이름을 내건 건물과 허영인 회장의 이름을 딴 세미나실이 기만적인 ‘사회공헌’의 명목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학 공공성이 훼손되면서 축소되는 학생과 노동자의 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학이 학내에서 안정적 일자리를 권리로 보장하지 않을 경우 생활과 복지, 학사행정, 교육 등 모든 측면에서 학생의 권리도 보장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경비노동자의 인력이 감축되면서 학생의 안전이 위험해지고, 학생의 일상을 지탱해온 학생식당 조리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면서 원하는 시간에 좋은 질의 학식을 저렴하게 먹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안정적 교육노동자의 축소 속에 수업의 질은 낮아지고, 학생들은 학문일자리에 대한 진로 걱정으로 원하는 공부를 이어나가기도 어렵게 됩니다.

 그렇기에, 대학이 안정적 일자리를 권리로 보장하라는 '진짜 정규직화'는 대학 노동자 뿐 아니라 학생들의 권익을 위한 요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 대학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은 간접고용과 계약직 사용이 만연한 사립대학, 그리고 수도권 집중화 속에서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비수도권 대학일수록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많은 분이 2021년 비수도권 대학의 위기를 이유로 청소노동자 전원이 해고를 당했다가 오랜 투쟁 끝에 정규직화를 이루어낸 부산 신라대학교의 사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고등교육 시스템 전반이 처한 위기, 그리고 그 위기마저도 불평등하게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공공성이 제고되고 안정적인 대학 일자리가 보장되기 위해선 각 대학의 노력만으론 부족합니다.

 대학 구성원들의 권리를 책임지는 윤리적인 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선 정부의 책임이 필수적입니다. 국가는 대학 구조조정의 비용이 약자에게 전가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의 제도화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고등교육기관의 재정을 책임져야 합니다.

 대학과 정부가 우리의 권리를 책임지도록 요구하기 위해, 같은 공동체 내에서 함께 배제되어온 노동자와 학생이 공동의 목소리를 만들어갑시다. 이곳에 모인 우리가 함께, 더는 대학구조조정의 비용을 등록금 인상과 노동자 인력감축이라는 방식으로 약자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책임을 확대하고 노동자-학생의 목소리가 대학의 정책 결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외칩시다.

 그렇게 교문 안과 밖에서, 학생과 노동자를, 대학과 대학 사이를 나누어온 경계를 넘고, 노학연대로 우리의 민주적 대안을,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갑시다.

 약자에게 전가되는   대학구조조정 반대한다
 대학위기 극복 위해   정부 재정 확충하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