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새터: 모두의 학교

1부: 발제
노동으로 연결된 우리, 더 평등한 학교를 위해 함께!
: “노동이 저와 무슨 상관인가요?”

안녕하세요 관악에서의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드넓은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데요.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생활하는 서울대학교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여러 노동자들 또한 존재합니다. 물론 노동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있고요. 그래서 저희는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대학을 바라보려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노동이 무엇이며, 우리가 왜 노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부터 살펴봅시다!
1. 노동과 노동자의 의미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신문 기사나 뉴스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이지만, 조금은 거창하거나 혹은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와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노동은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형하는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활동’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는 것이죠. 노동의 성격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흔히 사업주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수행하는 노동, 즉 임금노동이 노동의 주요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란 정확히 누구일까요?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근로자’로 정의합니다. 노동조합법에서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근로자’로 정의하고 있죠. 그런데 단순히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노동자’와 달리,‘근로자’라는 단어에는 일할 때에 ‘부지런하다’라는 의미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고용하는 사람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죠. 때문에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 왔고, 이 글에서도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잠들기까지, 일상 속에서 학생인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노동을 마주치게 됩니다. 대학이라는 공간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학생회관을 청소하시는 청소노동자분들, 바쁘게 학식을 조리하고 배식하는 조리노동자분들, 강의 유인물을 나눠주는 수업조교님, 과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정 직원분들, 단과대 야간 순찰을 시작하시는 경비노동자분들…. 이외에도 다양한 노동, 그리고 그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캠퍼스에서의 일상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 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도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닌 형태의 고용을 의미하는데요. 짧은 기간 이후에 고용 불안에 노출되는 기간제 비정규직, 일하는 직장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사내하청업체・파견업체・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나 자영업자의 형태로 띠며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위험과 책임이 개별화되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등이 존재합니다. 한편 다음 장들에서 등장할 ‘무기계약직’의 경우, 불안정 고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처우에 있어 다양한 차별을 겪는다는 점에서 정규직이 아닌 ‘중규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서울대가 2018-19년경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역시 사실은 무기계약직화에 머물렀죠.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 정규직과의 차별 등 여러 ,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특히 노동조합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이 없다면 사용자에 비해 개별적으로는 권력상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 개인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혹독했던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이 투쟁한 결과 헌법에 ‘노동3권’이 삽입되었습니다. 헌법이 규정하는 노동3권은 노동조합을 결성할 ‘단결권’, 회사를 상대로 노동조건과 관련한 교섭을 요구할 ‘단체교섭권’, 그리고 교섭을 위해 파업 등의 단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단체행동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기업과 노동자 개인의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많은 학생이 대학 재학 이전, 혹은 재학 중에 다양한 노동에 종사합니다. 그중 상당수는 비정규 불안정 노동에 해당하기도 해요. 근로장학생이나 수업 조교처럼 학내에서 일하는 경우도, 학원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처럼 학외에서 일하는 경우도 모두 노동에 속합니다.
근로장학생은 학생에게 학내의 각종 업무 및 실습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근로’에 대한 보상으로 장학금을 받는다는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고, ‘근로’의 참뜻을 자각하게 하여 건전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하지만, 대학은 성실함만을 강조하면서 근로장학생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산업재해가 일어나도 인정받을 수 없고, 학교로부터 사적업무 지시, 추가근무 강요 등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구제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를 하여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어도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학교 측은 근로계약서를 도입하게 되면 사용자의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도입에 소극적입니다.
대학생들은 현장실습생으로서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현장실습학기제란, 실습기관과 대학이 협약을 맺고 대학에서는 제공할 수 없는 전공과 관련된 직무수행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현장실습학기제의 목적과는 다르게 실습생들은 저렴한 노동력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주 60시간가량 일하며 월 100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와 같이 과로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휴일, 휴가도 보장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실습생들은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실습기관사로 나섰다고 열사병을 사망하는 사건, 반도체공장에서의 방사능 피폭, 그리고, 작년 화훼농장에서 기계에 끼어 실습생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생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지만, 작은 농가 같은 경우는 산재보험 가입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미래에 대학원을 진학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대학원생은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고, 교수의 지도를 받아 학업을 정진하기도 하지만, 지식노동자로서 노동을 하기도 합니다. 교수의 갑질, 성희롱 등등 대학원생의 피해 사례 많이 들어보셨죠? 기업화된 대학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인력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대학교수들은 ‘중소기업 사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역할을 교수와 대학원생의 위계관계를 더욱 강화합니다. 대다수 학생연구원은 근로계약 없이 일하고 있어 이러한 비위에서 보호받기 어렵고, 또한 임금도 매우 낮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노동권 역시 학생들과 멀리 , 떨어진 개념이 아닙니다. 최저시급 이상의 임금 지급, 노동조건을 명확히 보장하기 위한 근로계약서 작성 등 언뜻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들도 모두 노동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노동과 노동권은 그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도 아주 밀접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더는 누군가 일하다 죽지 않는 대학
앞에서 대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노동에 대해 이야기했죠. 대학에서의 배움과 가르침, 연구가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매일같이 그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학교의 시설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직원들을 ‘시설관리직’이라고 하는데요. 건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청소노동자, 초소에서 혹은 순찰 중에 학교 구성원들의 안전을 지키는 경비노동자, 강의실을 비롯한 건물의 냉난방 등을 담당하는 기계・전기 노동자, 그리고 소방・통신・영선(건축 관련 업무를 의미) 노동자가 모두 시설관리직에 포함됩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2019년과 2021년,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서울대학교에서 두 명의 청소노동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더운 여름철 발생한 두 차례의 사망 사건 이후, 청소노동자들이 겪었던 열악한 처우들이 사회적으로 알려졌죠.
2019년 8월 9일,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가 세상을 떠난 곳은 1평 남짓한 지하 계단 아래 휴게실이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음이 그대로 들어오며, 오래된 선풍기 외에는 냉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사실상의 가건물이 고인의 ‘쉼터’였던 것입니다. 서울대는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전수조사하고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답했고, 2020년 후반부터 진행된 휴게공간 개선 사업 결과 낙후된 시설이 교체되고 지하에 위치했던 휴게실이 지상으로 옮겨지는 등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1인당 휴게공간 면적의 협소함이나 열악한 샤워시설, 먼 거리를 비롯한 낮은 공간 접근성 등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있습니다.
2021년 6월에는 관악학생생활관(기숙사) 925동의 휴게실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고인의 죽음 이후 알려진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증가한 쓰레기양으로 업무 강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드레스코드 지정, 업무와 무관한 시험 시행 등 사측의 강압적인 인사관리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는 지적이 많았어요. 특히 건물이 낙후되어 곰팡이가 쉽게 발생하는 샤워실과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 업무가 매우 힘든데도 196명 정원의 기숙사 한 동을 단 한 명이 청소해야 하는 등 노동 강도가 과중했음이 드러났습니다.
두 사건은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에도 청소 직종을 비롯한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제대로 개선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8년,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용역업체를 가운데에 두는 계약직 간접고용에서 서울대가 직고용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는요. 이를 통해 이전보다 안정된 지위를 얻게 되었지만, 차별 시정과 처우 개선은 미진했던 것입니다.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미비한 휴게공간에 대한 . 개선, 인력 충원을 통한 노동강도 완화, 임금 체계 개선 및 기존 정규직원인 ‘법인직원’과의 처우 차별 시정 등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도, 2021년에도 서울대학교의 변화는 제때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대학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존엄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비용 절감의 대상이라는 차원에서만 노동자들을 바라본다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요. 더는 누군가 일하다 죽지 않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내 노동자를 바라보는 대학의 시선이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3. 학생과 노동자 모두의 복지, 대학의 책임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시설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학생회관 식당, 기숙사 식당, 자하연 식당 등의 단체급식실에서부터 느티나무 카페, 편의점과 문구점까지 다양한 시설들이 학생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죠. 이렇듯 서울대는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구성원의 후생복지를 위해 필요한 각종 시설을 운영하고 관리해 왔습니다. 생협 노동자들은 단체급식 식당과 카페에서 조리와 서빙을 담당하거나 식권 매대 및 편의점・문방구・기념품점 등에서 판매를 담당합니다.
그런데 지난 2019년, 이들이 휴게공간 등 열악한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며 30년만에 파업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도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 등의 문제가 이어지며 처우가 충분히 개선되지 않으면서 2021년 가을 파업이 이어졌고요. 대체 생협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2021년 파업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인력 부족과 높은 노동강도였습니다. 생협 학생식당에서 일하는 조리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아 왔어요. 생협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예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왔지만, 코로나19 기간 동안 직원 수가 줄어들면서 더악화되었습니다. 생협 급식조리 노동자의 80% 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했다고 이야기하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노동 강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필요하지만, 저임금 등으로 생협 식당의 노동조건이 다른 단체급식 사업장보다 열악한 탓에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동시에 인력 부족은 운영되는 식당 수 감소나 식당의 서비스 질 악화 등 학생 복지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실, 생협에서 담당하는 각종 복지 서비스는 원래 서울대에서 직접 운영하던 것입니다. 2000년 이후 대학과 형식적으로 분리된 법인인 ‘생활협동조합’이 복지를 담당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구조가 사실상 ‘별도 법인’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대학이 학생 복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대학본부는 생협이 대학과 분리된 ‘별도 법인’이라는 이유로 재정 지원에 소극적입니다. 과거 생협에서 수익이 났을 때는 그 중 많은 부분이 대학본부의 발전기금으로 이전되었음에도 말이죠. 이 때문에 대학본부가 아닌 생협과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생협 노동자들의 처우 역시, 생협 재정난 등의 문제로 잘 개선되지 못해 왔습니다.
학생식당은 기본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질 좋은 학식 제공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생협의 학식 판매 사업은 그런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죠. 노동자와 학생의 반대 속에서도 식대는 인상되었고, 그 이후 식사의 질은 개선되기는커녕 더 낮아졌습니다. 높은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으로 일하던 직원들이 떠나가고 구인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노동조건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식당의 영업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요.
학생 복지와 노동조건을 동시에 하락시키고 있는 생협 경영진(사무처)의 안일한 경영실태는 이전부터 계속 지적되어 온 심각한 문제입니다. 동시에, 대학본부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별도 법인’인 생협에 학생 복지의 재정 책임을 떠넘기는 대학의 무책임한 태도는, 생협 노동자의 노동조건 악화뿐 아니라 학식 가격 인상, 개점 식당 수의 감소와 같은 학생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이미 일어났거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죠. 학생과 노동자 모두의 복지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협 사무처의 경영 개선과 더불어 학교의 복지 사업에 대한 서울대의 재정적 책임이 제대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4. 부당한 차별 없는 대학을 위해
학교 행정실을 방문하면, 다양한 일을 처리하는 여러 직원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비슷해 보이는 행정・사무 직원분들이 ‘법인직원’과 ‘자체직원’으로 나누어진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서울대학교의 ‘자체직원’은 ‘국립서울대학법인’에 공식적으로 소속된 법인직원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총장발령으로 대학본부에 고용된 법인직원 이외의 계약직 및 무기계약직 직원들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는 2017-18년경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행정・사무 직원들을 주로 자체직원이라 부르는데요. 문제는 새로 전환된 ‘자체직원’이 대부분 대학본부에 직접 고용되지 못하고, 각 단과대나 기관과 고용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체직원’이라는 말처럼, 각 기관과 단과대가 마음대로 ‘자체적’으로 직원을 뽑았다가 너무 쉽게 해고하는 일들도 반복되었고요.
2017-19년, 언어교육원의 한국어 강사들과 학사운영을 담당하는 비학생조교들은 우리도 ‘유령 직원’이 아닌 서울대 직원으로 대우하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오랜 요구 속에서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통해 자체직원의 처우가 나아진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용형태와 처우가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을 만큼 다양한 기관에 자체직원들이 파편적으로 고용된 만큼 서울대의 모든 자체직원이 ‘유령 직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자체직원들은 법인직원과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임금체계 및 복지와 관련해 다양한 차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대학본부에서 일괄적으로 직원을 발령하지 않으니 각 단과대와 기관별로 자체직원들의 처우는 아직까지도 천차만별이죠. 취업규칙이 제각기 다르고, 심지어는 노동조합이 맺은 임금과 단체협약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기관도 있습니다. 임금, 직원코드, 경조사 관련 복지, 각종 복리후생 수당, 건강장려휴가와 같이 자체직원이 법인직원과 비교해 겪은 차별이 국정감사에서도 ‘단골 메뉴’라고 불릴 정도로 수차례 지적되었지만, 대학의 변화는 미진합니다. 국정감사에서 약속한 개선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죠. 대학은 총장이 아닌 단과대 학장이나 개별 기관의 기관장이 발령했다는 이유로 자체직원 처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요.
그러나 사실상 서울대의 예산과 정책 결정 권한을 지닌 곳은 각 기관이 아니라 대학본부입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단과대나 기관, 별도 법인에서는 소속 노동자들이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해도 대학본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권한이 없다거나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재원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마치 원청과 하청으로 이루어진 간접고용 구조처럼, 대학본부와 각 기관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인 것이죠.
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던 관악학생생활관의 청소노동자들도 총장 발령이 아니라 관장 발령으로 고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 강도를 낮추기 위해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해도 재원이나 권한을 빌미로 요구가 반려되어 왔습니다. 이렇듯 이중적인 고용구조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부당한 차별 없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총장이 모든 직원을 직접 책임 있게 발령하고 고용하는 ‘인사 발령의 일원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인사 발령 일원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한 번에 시정되거나 일터에서의 어려움이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같은 일을 수행함에도 대우는 크게 다른 상황을 극복하고, 서울대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지금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근거이자 디딤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5. 대학 공동체, 우리의 소통과 연대

여러분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아마 많은 분이 배움이 이루어지는 교육적 기관으로서 대학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은 또한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노동의 공간이며, 동시에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학생과 노동자는 대학이라는 공동체에 함께 속한 구성원인 것이지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대학의 방향과 미래를 고민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정말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는 아닙니다. 노동자도, 학생도 공동체의 주체로서 지녀야 할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기보다는 대학의 비용 절감을 위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2019년 시행된 식당 운영시간 단축 속에서 학생의 생활권은 물론이고 시차근무제와 보상휴가제 시행으로 생협 식당 노동자의 처우 역시 악화되었던 사건은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자와 학생 모두의 권익이 후퇴하는 대학의 상황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2022년 초에 감축된 생협 식당 인원은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식대 인상이 단행된 일도 생협 경영진과 대학본부가 학생과 노동자의 권리를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죠. 저렴하고 질 좋은 식사를 하며 생활할 권리, 원하는 수업을 수강하고 원활한 학사행정 서비스를 보장받을 권리 등 학생에게 꼭 필요한 권리들은 대학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인력 부족 속에서 침해되거나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왔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대학은 결국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대학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노동자와 학생들은 함꼐 권리를 찾아 나가기 위해,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는 대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함꼐 연대해 왔습니다. 학생과 노동자의 권익은 한쪽이 높아지면 다른 한쪽이 낮아지는 제로섬 관계가 아닙니다. 노동자의 노동권이 악화한다면 이와 결부된 학생들의 학습권, 교육권 및 생활권도 향상되기 어렵습니다. 대학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만 여겨져 왔던 구성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때, 모두의 권익을 지키고 증진해내는 변화는 보다 빨리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의 밑바탕에는, 대학 구성원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소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위치와 입장을 갖고 있는 학생과 노동자 사이에서, 여러 사안에 대한 이해관계가 늘 곧바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생과 노동자의 권리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학식 개선과 식대 유지를 위해서는 생협 식당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인력 충원이 어렵다고 말할 것입니다. 높아진 물가 속, 학내 노동자들의 임금과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과 관련해 제기되는 이슈들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겠죠. 무한하지 않은 재원 속에서 이러한 고민들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속에서 공공성에 대한 대학과 정부의 책임이 숨겨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공동의 권익을 구성해나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서로의 권익이 충돌하는 듯 보일 때 소통과 조율을 통해 공동의 입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죠. 소통을 통해 구성원들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연대가 가능할 것입니다. 소통은 우리가 이 공동체에 함께 속해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각자가 처한 구체적 상황은 다를지라도, 서로가 무관한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되니 말입니다.
사실 대학이라는 한 공간에서 생활함에도, 학생과 노동자가 소통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통’이라는 말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러나 자주 드나드는 건물의 경비노동자분이나 기숙사에서 마주치는 청소노동자분께 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일도 소통의 발걸음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시도들이 쌓여 구성원 간의 신뢰로, 그리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2부: 체험활동
보드게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