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권헌장, 학부생・대학원생・노동자 모두의 목소리를 담아

권리의 시작점이 될 서울대 인권헌장, 즉각 제정과 평등한 적용을 대학본부에 요구합니다


이미 너무나 늦었다, 인권헌장을 즉각 제정하라


 지난 12월 1일, 행정대학원 다양성위원회의 주관으로 ‘서울대 인권헌장에 대한 미래세대 인식조사 결과 발표’ 정책 포럼이 진행되었다. 서울대 인권헌장(안)은 대학의 지향을 나타내고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기본적 인권규범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작성되었지만, 2년이 넘도록 본교 의결기구인 평의원회의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못해왔다. 대학본부가 학생들의 무관심과 학내 합의 정도의 부족을 핑계 삼아 더 이상의 제정 추진 과정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권헌장의 모든 조항이 95% 이상의 매우 높은 찬성률을 보였으며, 그에 반해 인권헌장에 대한 반대 비율은 3.83%에 그쳤다. 특히 인권헌장 관련 핵심 논란으로 치부되어 왔던 제3조(차별금지와 평등권)는 인권헌장에 포함되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투표 문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번 조사는 “동성애에 대한 반발 여론이 분명하다”라며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과 관련된 소수자 혐오로 인권헌장에 반대해 온 목소리를, 모두의 권리를 위해 인권헌장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동등하게 취급해온 대학본부의 판단이, 오히려 구성원들의 인식을 왜곡했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따름이다.

 과거 총학생회의 주도로 만들어졌던 ‘인권가이드라인’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인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학생사회의 주도성을 빌미로 평의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러는 사이 현 인권헌장(안) 제6조와 제8조에 포괄된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주거권, 제7조에 포괄된 충분한 이동치원차량 등 배리어프리한 대학 환경에 대한 장애인의 권리를 비롯하여 대학 구성원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권리는 지속적으로 무시되어왔다. 이미 너무나 늦었지만,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대학본부의 실질적 행동이 지금 당장 요구되고 있다.

모든 노동자와 학생에게, 평등하게 인권헌장을 적용하라


 인권헌장(안)은 그 전문과 제1조(목적)에서 정의하듯 구성원 모두의 기본적인 권리를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지금까지 대학 내 비정규직 및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대학본부에 의해 학내 구성원에서 제외되거나 동등한 직원 사이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아왔다. 계속된 투쟁을 통하여 직고용을 쟁취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임금 체계에서부터 각종 복리후생에서의 비인격적 차별에 이르기까지, 대학 내 비정규직 및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총장발령 정규직(법인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학본부로부터 차등적인 대상으로 취급되어왔다.

 이를테면 대학본부는 적자에 시달리는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에 대해 재정지원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노동자의 권리와 질 좋고 저렴한 복지를 생활 속에서 누려야 할 학생의 권리 모두를 저버리고 있다. 대학본부의 무책임은 생협 단체급식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미진한 인력 충원으로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이로 인해 초래된 덥고 습한 식당 조리실에서의 고강도 노동은 어깨・허리 질환 등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해왔다.

 아울러 2019년과 2021년 서울대학교에서는 열악한 휴게공간과 비인격적 노동강도 등으로 인해 두 차례나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인권헌장의 제1조에서 언급된 “모든 구성원”이, 법인직원만이 아니라 자체직원 및 시설관리직원 등으로 분류되어 차별적이고 열악한 처우를 감내해온 모든 비정규직 및 무기계약직 노동자 또한 포함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인권헌장은 대학의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권리의 규범적 근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인권헌장을 출발점으로,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참여와 권리를 보장하라


 인권헌장은 어디까지나 구성원들이 향유해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규범적으로 선언하고자 하는 것이지, 권리의 한계를 경계 짓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현 인권헌장(안)의 제정을 시작으로 삼아, 구성원들의 권리 및 그들이 겪을 수 있는 권리 침해에 대한 더욱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논의에 있어서는 다양한 권리 침해를 경험하고 있는 대학 구성원들의 참여가 더욱 포괄적이고 확장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예컨대 지속적인 권리 침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 대학원생의 경우, 수업을 수학하는 학생, 강의를 보조하고 직접 진행하는 교원, 그리고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직원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특수성은 인권헌장 제정 이후 권리의 실질적 보장과 확장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요구한다. 실제로 특수한 위치에 처한 대학원생의 권리 보호를 위한 ‘권리장전’이 이미 2015년 7월에 이미 제시된 바 있으나 그 제정은 여전히 미루어지고 있다. 국내외의 여러 대학이 이미 권리장전을 도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각각의 인권 침해 사례들을 개별적으로만 다루면서 솜방망이식 처벌로 대응해온 것이다. 학생의 역할 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 과정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대학원생에게 인권헌장에서 선언된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의 노동자성 인정을 비롯하여 더욱 세부적인 권리 적용에 대한 논의가, 그리고 그러한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의 확대된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권헌장(안)은 직무 수행에 대한 정당한 보수나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대학 환경에 관해서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의 실질적 적용을 위해, 향후 비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기본적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현주소에 기반을 둔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대학은 인권헌장 제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더 나아가 노동인권의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과 성실하게 교섭하며 대학 노동자들의 최종적 사용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나가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갈 대학 공동체에서, 인권헌장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인권헌장(안)의 제17조(이행 조치)에서 이야기하듯, 인권헌장은 단순한 제정을 넘어서 헌장을 규범적 준거점으로 삼은 현장에서의 실질적 이행을 통해서 완성된다. 지금까지 서울대학교에서는 노동자,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인권 침해 사례들이 반복되었고, 각 사례는 책임 있는 해결과 피해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분명 해결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에 인식 차이가 존재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대학본부는 인권센터의 기본적 권고안조차 수용 및 이행하지 않거나, 여러 핑계를 통해 구조가 아닌 외부 혹은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겨왔을 뿐이다. 그러한 모습은 대학본부가 구성원들의 권리를 소극적으로 보호하거나, 때로는 적극적으로 회피해왔음을 보여준다. 인권의 준거가 될 규범의 명시적 제정과 함께, 대학본부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가 있어야만 인권헌장이 진실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헌장의 제정은 그 자체로서의 끝이 아닌, 더 본격적인 이행과 완성을 위한 출발점이다. 인권헌장 제정을 첫 발판으로, 차별과 인권 침해 없는 대학 공동체를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