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 기고문: 오세정 총장이 맡아야 했던 과제, 그리고 암울한 결산


 2019년 초부터 제27대 서울대 총장으로 재임한 오세정 총장의 임기도 어느새 올해 들어 막바지에 이르렀다. 제26대 성낙인 총장의 재임기였던 2017~18년 사이 서울대학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선도적으로 단행했다며 그 성과를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서울대의 ‘정규직화’는 많은 사각지대를 남겨두었던 것은 물론이고, 원청 사용자로서 대학의 재정적이고 행정적인 책임을 방기한 채 이루어졌기에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학내 여러 노동자와 학생들이 ‘진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018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을 결성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2017~18년 사이의 합의를 통해 그간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과 불안정한 계약직 고용형태에 놓였던 청소・경비・기계・전기 등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고용과 최소한의 직접고용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총장발령으로 대학본부에 고용된 정규직 ‘법인직원’과는 별도로 각 기관이나 단과대에 주로 고용돼 행정・사무 등의 업무에 종사해온 ‘자체직원’들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며 일터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차별적인 처우와 열악한 저임금 등은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고, 때로는 악화되기도 했다. 오세정 총장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던 성낙인표 ‘정규직화 합의’의 한계를 극복할 과제를 떠맡게 됐던 셈이다. 4년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 과제에 대한 결산은 상당히 암울하다.

2019년: 대학의 무책임 속에 쌓여온 전 직종의 문제가 드러나다


 2019년은 반쪽짜리 정규직화 과정에서 오랜 시간 쌓여온 학내 여러 직종의 문제가 드러난 한 해였다. 그 시작은 2월에 개시된 기계・전기 등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파업이었다. ‘정규직화’ 합의 이후에도 비정규직 수준의 저임금이 지속되고, 후생복리 성격의 수당도 차별적으로 지급되면서 단행된 투쟁이었다. ‘도서관 난방 파업’을 둘러싸고 ‘학습권’과 ‘노동권’을 대립시키는 대학의 갈라치기 속에서도, 많은 학생의 지원과 연대 속에서 투쟁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대학본부가 노동조합과의 교섭에 성실하게 나서지 않는 가운데 노동자들은 다시 행정관 앞에 천막을 치고 삭발까지하며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위해 2019년 초부터 2020년 초까지 1년간 진행된 언어교육원 한국어강사들의 투쟁은 자체직원들이 경험하는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대학본부에 총장발령으로 고용되기보다 여러 단과대와 기관에 파편적으로 고용됐던 직원들은 근무 기관에 따라 처우 적용은 물론 무기직 전환 과정도 파편적이고 개별적으로 경험해야 했던 것이다.

 2019년 8월 공과대학 302동의 휴게공간에서 발생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열악한 시설관리직 휴게공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학생들이 주도해 진행된 노동환경 개선 요구 서명운동에 1만 4,000여 명이 마음을 모았음에도, 노동자들은 휴게공간 개선 작업이 실제로 진행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편 2019년 9월에는 단체급식 식당과 카페 등을 운영하며 대학의 후생복지를 담당해온 생활협동조합에서 30년 만에 노동자들의 파업이 단행됐다. 휴게시설 개선 등의 성과는 있었지만, 당시 울려 퍼졌던 요구들은 2년 후에 또다시 되풀이된다.

2021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다시 수면 위로


 2019년 이후 학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일정 부분 개선됐지만, 이것이 근본적・전반적인 노동환경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렇게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던 학내 여러 직종의 문제들은 2020년을 지나 2021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2019년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으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1년 6월, 이번에는 관악학생생활관 925동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다. 사건 이후 드러난 강압적 인사관리 실태와 과중한 노동강도,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중간관리자였던 팀장 개인이 경징계를 받았을 뿐, 부적절한 발언을 한 교수나 인사책임자들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노동강도 완화를 위해 필요한 인력 충원도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월에는 인력 부족과 높은 노동강도, 그리고 만성적 저임금, 식비 미제공과 부실한 식단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다. 저임금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임금체계 개선은 2019년 파업에서 요구됐으나 수용되지 않았던 사항이기도 했다. 파업 이후 이루어진 합의에 노동자들의 모든 요구가 담기지는 못했지만, 식사 질 향상과 저임금・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개선 등은 분명 소중한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10월 중순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거의 매년 그래왔듯이 자체직원의 차별적 처우에 대한 여러 질의가 이루어졌다.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라고 불릴 정도로 이전부터 관련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돼왔지만, 학교의 변화는 늘 미진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답변하거나, 그 자리에서만 개선을 고려하겠다고 말하고 후속 조치는 취하지 않는 경우도 잦았다. 2021년도 국정감사에서 오세정 총장은 자체직원의 이원적 고용구조에 대한 장기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으나, 1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관련 논의는 전무하다.

더 나은 일터, 모두를 위한 대학을 위한 길


 5년 전 서울대학교가 자랑스럽게 내걸었던 정규직화는 아직도 진짜 정규직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학교는 총장 발령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내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방관하면서, 노동 환경 개선의 책임을 각 기관이나 단과대, 혹은 생활협동조합이라는 별도 법인에 떠맡겨 왔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총장 발령’이 아니라 할지라도 서울대 내 단과대나 기관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분명 대학본부이며, 대학본부가 편성하고 집행하는 예산 없이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본부와 개별 기관・단과대・별도 법인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중적인 고용구조를 극복해야만 한다. 따라서 본부는 차별적 고용구조를 해소하고, ‘진짜 사장’으로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재 기관장이나 단과대 학장이 발령하는 자체직원들을 총장발령으로 전환해 일원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이전부터 지적해 온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복리후생적 성격의 수당과 관련된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 또한 서울대 구성원들의 복지를 담당하는 생활협동조합에 대해서도 재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대학의 정책에 따라 저렴한 가격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본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구성원 복지와 노동자 처우 모두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별도 법인’을 통해 대학의 책임을 은폐하는 현재의 구조에서 벗어나 대학이 학생 복지를 직접 책임지는 생협 직영화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오세정 총장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반쪽짜리 정규직화 합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앞으로의 4년은 지난 4년과 달라질 수 있을까. 4년 후에는 서울대학교가 더 나은 일터, 모두를 위한 대학에 보다 가까워져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