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여성혐오와 노동자 소외가 부른 또 하나의 죽음

신당역 여성 노동자 스토킹 살인 사건에 부쳐


 지난 9월 14일 한 청년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2019년부터 3년 동안 피해자를 스토킹했으며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계획적인 살인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였다. 형사 고소를 결심하여 가해자를 스토킹 혐의로 두 차례나 고소했으며, 합의를 종용하는 가해자의 집요한 연락에도 굴하지 않고 엄벌 탄원서를 제출했다. 피해자는 누구보다 강하고 용감했다.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이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으나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가해자는 구속되지 않았고 고소 후에도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연락하였다. 지난해 10월 첫 고소 당시에는 경찰이 가해자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후 지난 1월 다시 고소했을 때 경찰은 구속 영장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구조적 젠더불평등에 의한 폭력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과 국민의 힘 의원들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같은 해 12월까지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검거한 피의자 818명 중 669명(82%)이 남성이다. '연도별 스토킹 112 신고 현황'을 보면, 올해 상반기 스토킹 신고자 1만 3,097명 중 9,647명(73.7%)이 여성이다. 이 통계를 보고도 피해자가 여성인 것이 우연이고 이 사건이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폭력적 대응을 한 것이다”라는 이상훈 서울시의원의 말과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인이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언론을 보면 스토킹 범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알 수 있다. 이는 스토킹과 소위 연애감정을 연결지으면서 심각하지 않게 바라보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스토킹은 구애가 아니라 상대가 자율성과 의사를 가진 한 주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토킹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토킹은 여성을 소유물로 바라보고 지배하고자 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의 재현이다.

여성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침해당했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대응이 얼마나 미흡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울교통공사는 수사 개시 사실을 통보받은 이후에도 가해자의 직위해제 이외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가해자는 직위해제 상태에 놓여 있음에도 내부 전산망을 통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직장 내 성폭력으로부터의 적극적인 보호는커녕 신고에 따른 소극적 보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직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역무 노동자가 얼마나 취약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야간 시간대 순찰 업무 관련 위험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있어왔지만, 2인 1조 순찰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 9월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여성 직원의 당직근무 감축을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여성 노동자를 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차별적 방안이고, 노동자 안전 보장의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여성 노동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이번 사건은 법과 제도의 한계와 여성안전대책의 빈틈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며 신속하고 적극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국민의 힘과 정부는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를 골자로 한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고, 검・경은 고위험 스토킹범에 대한 유치・구속수사 방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9월 24일 “직원들이 더욱 안전한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현장의 사각지대를 촘촘하게 챙겨보겠다”며 앞서 제시한 차별적 방안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시민들의 분노에 등떠밀려 나온 이러한 발표들이 말로만 끝나지 않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주시하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운 용감한 피해자를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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