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회・정부는 청소노동자 휴게공간 개선을 위해 책임을 다하라
2022년 8월 18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발효에 부쳐
어제 8월 18일, 노동자 휴게실 설치 의무화를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1년의 입법 예고를 거쳐 발효되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통해 휴게시간을 보장받았지만, 현행법은 휴게시설 설치에 대해선 권고사항에 그쳤었다. 그러던 중 2019년 8월 9일에 발생한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로 휴게실 설치 및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다. 폭염 속에 일하다 지친 고인은 창문도 냉방시설도 부재하던 열악한 휴게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죽음에 분노한 청년・학생과 노동자 및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연대하며 목소리를 높인 끝에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가 부족하게나마 법제화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사업주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휴게시설까지 책임지도록 하며, 크기・위치・온도 등 휴게시설 설치・관리 기준을 지키지 않을 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사업주 편의 봐주기로 인해 개정안에 여러 구멍이 생겨 모든 노동자가 휴게실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도 크다. 상시근무 노동자 20인 미만 사업장은 휴게실 설치의무에서 면제되었고, 2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의무가 1년 유예되었다. 개정안은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를 배제한다는 비판을 반영하여 1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전화상담원・텔레마케터・돌봄노동자・배달원・청소노동자・경비노동자가 2명 이상이면 휴게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으로 한계를 보충하고자 했지만, 여전히 생활쓰레기 수집・운반 노동자가 배제되는 등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아울러 1인당 최소면적, 성별 구분에 대한 기준이 없고 접근성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편안한 휴식시간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하다.
한편 거듭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대학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현장의 변화는 더디다. 휴게실의 위치 조건이 열악하거나 면적이 협소한 경우, 접근성이 부족한 경우가 만연하여 대학 노동자들의 건강・휴식권은 계속 위협받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로스쿨 휴게공간 등은 계단 아래 공간에서 환기가 용이한 공간으로 이전되어 개선되었지만, 여성 휴게실들의 경우 사용 인원이 한 번에 눕기도 어려울 정도로 면적이 좁은 사례가 많다. 더군다나 청소 노동 후 오물과 땀을 씻어내어 청결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샤워실마저도 부족하여 대걸레를 빠는 곳에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야 하는 노동자들도 존재한다. 중앙도서관 휴게실처럼 표면적으로 지상층이더라도 사실상 지하와 비슷한 환경에 환기가 어려운 건물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습기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더운 한여름에도 난방을 가동해야 한다.
서울대 외의 여러 타 대학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국대에서는 휴게공간이 옥상에 있어 더위나 추위에 취약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려대에는 지하에 위치하여 습하고 환기가 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 휴게실이 존재하며, 휴게실이 자리한 지하 2층에 이르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노동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계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연세대 제3공학관의 휴게실은 아직도 지하주차장에 위치하여 곰팡이 냄새와 옅은 매연이 코를 찌른다. 숙명여대 과학관의 휴게실은 계단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소음 때문에 쪽잠을 잘 수조차 없으며, 건물 구조상 방 한가운데 자리한 기둥 때문에 편하게 누울 수조차 없다. 성공회대 정보과학관의 휴게실은 냉방시설도 창문도 없어 장마철만 되면 곰팡이가 피어오른다. 홍익대 미술학관에는 휴게실이 아예 부재하여 학생 화장실 한 칸을 휴게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아 온 이유는 대학과 정부, 의회 모두 노동자를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처음 건물을 지을 때부터 노동자의 휴식권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결국 열악한 유휴공간을 이용해 휴게공간을 급조할 수밖에 없었다. 간접고용으로 청소 업무를 외주화한 대학들의 경우, 그동안 원청인 대학들은 하청 용역업체를 통한 고용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생활임금에 미달하는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해왔다. 대학 직고용 전환을 자랑하던 서울대도 대학본부 총장 발령이 아닌 각 기관 기관장 발령이란 이름으로 학내에서 이중적 고용구조를 재생산해왔고, 관악사 글로벌학생생활관 등 민자로 운영되는 기관들에서는 용역업체를 통한 계약직 불안정 노동자의 간접고용이 버젓이 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고용주로서 책임을 다해오지 않았던 대학들이, 비용의 부담으로만 여겨질 휴게시설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의회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사업주의 휴게실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법의 적용에 해당하는 사업의 종류와 노동자 수의 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하여 사실상 반쪽짜리 법이 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크다. 정부는 시행령에서 20인 미만 사업장 설치의무 면제와 50인 미만 사업장 1년 유예로 그동안 휴게실 미설치를 통해 비용을 절감해왔던 사업주의 편을 또다시 들어주었다. 휴식을 누릴 권리는 저임금・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더욱 절실한데도, 시행령을 통해 그 권리를 또다시 빼앗은 것이다. 아직도 SPC 파리바게뜨와 같이 법정 휴게시간조차 노동자들에게 보장하지 않는 사업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상태에서, 휴게실의 부재는 노동자들이 관리자에게 감시받지 않고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한 휴식을 취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1인당 면적, 성별 분리, 접근성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다는 사실 또한 대학과 같은 열악한 휴게실의 사업장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개정안은 분명 청소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 시민들의 사회적 요구가 함께 모였기에 미흡하게나마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결과물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여러 한계로 인해 근본적으로 노동자 사망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거나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휴식의 권리를 보장하기 어렵다. 산안법을 더욱 실효성 있게 개정하는 데에는 물론이거니와, 이번에 개정된 현행법이 제대로 현장에 시행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사업주가 처우 개선을 위한 책임을 다하도록 촉구하는 데 있어서도 추가적인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함께 목소리를 모아 요구하는 일 없이 자연스레 권리가 찾아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청년・학생들과 함께 요구한다. 정부와 의회는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가 제대로 된 휴게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마련하라. 대학은 ‘진짜 사장’으로서 개정안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더 나아가 열악한 휴게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책임을 다하라.
정부・의회・대학은 노동자를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여
건강과 안전에 필수적인 휴식권을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