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익명의 식당 노동자가


 제가 올해 쉰 중반이니까... 벌써 15년쯤 전이네요. 나이 40이 넘어 큰애가 중학생이 될 때쯤, 혼자서 학원도 가고 밥도 챙겨 먹을 수도 있고 의젓해졌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생활비라도 벌어보려고 일자리가 없나 구인정보를 찾아다녔어요. 쉽지 않죠. 마흔 살 아줌마를 받아주는 직장은 청소, 식당 일이 아니면 힘들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러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대학교 식당에 구인이 보이더라고요. 서.울.대... 공부해서 들어가지는 못해도, 일하러는 들어갔네요. 그때 참 설레고 기분 좋고. 정문 지나다니면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서울대 학생들만 봐도 남이 아닌 그런 존재랄까? 조카 같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에 일할 때는 젊었으니까, 힘들긴 해도 견딜 수 있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관절도 젊었고, 쌩쌩했는데... 15년을 서울대 생협에서 일하고 났더니 손 마디마디가 휘고, 어깨는 거의 매주 통증 치료하러 가지 않으면, 팔이 안 올라갈 정도로 심각해져 있고, 무릎, 허리는 7~80대 노인 수준보다 상태가 나쁘다고 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됐지 싶네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급여가 높지 않았어요. 매년 연말쯤 사무처나 영양사가 와서 종이 한 장 내밀면서, 돈 얼마를 준다니까 사인하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동안 월급으로 주던 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지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연말에 최저임금법 위반을 모면하기 위해 ‘딱, 최저임금만 겨우 면할 정도의 수준’ 만큼만 일시금으로 주는 거더라고요. 벌금 물을까 봐 그렇게 행동하는 거였으면 말이라도 하지 말지... ‘돈 받으니까 좋지?’ 하면서 비웃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괘씸한데, 그때는 몰랐으니까 따지지도 못했어요. 나중에야 노조에서 설명해주니까 알았지요. 사실 최저임금이 뭔지도 잘 모를 때에는 최저임금보다 못 받을 때도 있었어요. 나중에 노조에서 항의해서 최저임금은 받게 되었던 거고요.

 월급 좀 올려달라고, 너무 힘들다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월급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 하면, 어째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말이 똑같아요. “생협에 돈이 없어요. 돈이 많으면 당연히 주고 싶죠.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사정이 좀 나아지면 그때는 챙겨드릴게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렇게 회사에 돈이 없어서, 회사 경영이 안 좋다고 분명히 그랬거든요? 그런데, 느닷없이 사무처 직원들은 경영을 잘했다고 연말에 성과급 거하게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줄 돈이 없는 거구나 싶었죠.

 이렇게 15년째 일하고 있네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라고 왜 다른 곳을 갈 생각을 안 했겠어요. 중간에 다른 곳에 가면 처음부터 신입 취급이라, 다른 식당에 취직하는 것도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그리고... 그동안 같이 고생하면서 지낸 언니들, 동생들 두고 나만 떠나자니 마음이 걸리고... 그래도 같이 좀 힘들더라도 동거동락한 동료들하고 함께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 거기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밥을 짓고, 배식하고 그러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참 자부심이 남다르더라고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 서울대 학생들을 위해 일한다는 거. 뿌듯하고. 사실 그거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에요.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 많아요. 그런 자부심으로 버틴다고 하는 사람들...

 예전에는 주변에 아는 분들이, 요새 뭐하냐고 물었을 때, “나 식당에서 일해”라고 하면... “아... 그래?”, 네가 무슨 식당일을 해. 난 네가 식당에서 일하는 건 상상도 못했다 야”, “나도 그랬는데, 그래도 서울대 식당에서 일해”, 그러면 물어본 분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래~~ 같은 식당이래도 서울대니까 다른 데보다 좀 낫겠다. 돈도 많이 주고. 다행이네”라고 말을 하는데, “맞아. 서울대라서 다른 데보다 좀 형편이 괜찮더라”라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사실이 아니니까 못했어요. 창피하죠.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까. 주변 사람들은 뭐, 같은 식당이라도 서울대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뭐라도 좀 낫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전혀 아닌데. 요즘은 벼룩시장 같은 데에 서울대 생협에 구인광고를 올려도 지원을 잘 안 한대요. 워낙에 박봉인 데다가 업무도 힘들어서 모두 기피하는 직장이라고요.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이 진짜 많이 줄었어요. 계약직들은 당장 계약해지해버리고. 정규직들은 퇴사하면 빈자리를 채워주지 않고요. 책상에 앉아서, 밥 먹으러 오는 사람이 줄 테니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줄여도 된다고 산수로 계산했겠죠. 어휴 말도 말아요. 일은 더 늘어났어요. 코로나 때문에 식탁에 칸막이 설치했잖아요? 칸막이 때문에 테이블 닦는 게 더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칸막이도 일일이 소독제로 닦아야 하고요. 일하는 사람이 여유가 있으면 모를까, 사람도 많이 줄어든 상태에서 빨리 테이블 청소를 끝내야지 조리업무를 하는데, 쉽지 않죠. 매일매일 뛰어다니는 것 같아요. 일할 때는 힘든 줄 몰라요. 모르겠어요. 나도 그렇고 다들 바쁘니까 뭐에 홀린 것처럼 그렇게 일해요. 한바탕 아침 장사 준비하고 나면 온몸에 땀으로 근무복이 흠뻑 젖어요. 그제서야 힘들 줄을 알죠.

 근무복이 젖은 상태로, 빨리 식사를 해요. 메뉴요? 우리는 식비가 없어요. 서울대에 정규직이건, 계약직이건, 무기직이건 식비를 다 준다는데. 우리 생협만 식비를 안준대요. 다른 서울대 직원들은 다 똑같이 받는데 저희만 못 받는 게 참 싫어서 달라고 요구해도 안 된대요. 이유요? 사무처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 식당에 널린 게 밥이고 반찬인데 그거 먹으면 됐지. 무슨 식비를 줘요. 안 그래도 생협에 돈이 없는 거 뻔히 알면서 말이야”라고 하죠. 근데 지난 7월에 복날 되었다고 반계탕이 메뉴로 나왔는데, 저희는 반계탕 삶은 국물에만 밥 말아 먹어야 해요. 그렇게 개수가 정해져 있는 메뉴는 주지도 않아요. 반계탕,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연어 덮밥에 연어 등등 이런 것은 못 먹게 하고, 그냥 밑반찬만 가져다가 먹게 하거나 그래요. 그럴 땐 직접 만든 건데 먹지도 못하나 해서 화도 나고 식비 받아서 학식 제대로 사 먹는 다른 직원들 부럽기도 하고 그러죠. 밥은 뭐... 식판은 고사하고, 그냥 넓은 접시에 밥 퍼담고, 주변에 밑반찬들 얹어서 논두렁, 밭두렁에서 먹듯이 먹어요. 일단 바쁘고 힘드니까. 얼마 전에 개수 정해진 주메뉴는 안 주는 걸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식판도 없이 큰 접시에 아무렇게나 담아서 찍으려니까 도저히 남들 보여줄 게 못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은 식판에 담아서 찍었는데, 저희가 평소에 실제로 먹는 건 사진보다 훨씬 안 좋아요.

 아까 아침 장사만 마쳐도 근무복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고 했죠? 저도 한 끼 식사를 우아하게 먹고 싶은데, 일단 일이 힘드니까 빨리 먹고, 조금이라도 쉬는 게 더 낫단 생각을 해요. 너무 힘드니까. 휴게실이 멀리 있는 사람들은 거기를 언제 왔다 갔다 하겠어요. 왔다 갔다 하다가 시간 다 보내죠. 그런 분들은 돗자리 깔고 그냥 식당 바닥에 잠깐이라도 누워있는 게 더 낫죠. 우리가 이렇게 살아요.

 2019년에 우리가 파업을 했어요. 보름 정도? 그때도,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개선해라. 식비를 지급해라, 명절휴가비 지급해라 하고 요구했거든요? 거기에 휴게시설이랑 샤워 시설 같은 근무환경도 좀 개선해달라고 같이 요구했고요. 그때도 302동에서 청소노동자분이 계단 밑에 환기도 잘 안 되는 좁은 휴게실에서 쉬시다고 돌아가셨는데,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서울대가 부랴부랴 휴게시설 점검하고 난리였어요. 평소에 그렇게 휴게실 개선해달라고 요구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생협도 그때 휴게실도 생기고, 샤워실도 만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했어요. 올해도 또 여름에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휴게공간 개선하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임금체계나 식비, 명절휴가비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어요. 심지어 1년 전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식비를 못 주겠으면 식사 질이라도 개선해서 제대로 먹을 수 있게 하라고 했어요. 생협에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여태 안 지키고 있었던 거죠. 정말 너무한 것 같아요. 저희는 나이 마흔에 입사해서 예순에 정년이 되면 이십 년 일한 거니까 20호봉쯤 되어요. 근데 평생 일해도 아무도 다다르지도 못할 115호봉은 웬 말인지 모르겠어요. 명절휴가비도 정규직들 반절이라도 좀 줬으면 좋겠어요.

 인력충원이 무엇보다 절실하죠. 일단 사람이 부족하니까, 힘들어도 웃으면서 일하던 언니들이나 동생들이 부쩍 짜증들을 많이 내더라고요. 농담이 아니라 “몇년째 일이 너무 힘들어서, 몸이 이상해. 요양이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라고 하는 언니들이 생겼고, 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언니들이 많아졌어요. 건강하게 퇴직했으면 좋겠는데, 골병들어서 퇴직하는 언니들을 보면 그게 내 모습일 것 같아서 무섭기는 해요. 50대 후반도 아직 젊을 때인데 몸 상태도 안 좋고, 걱정이 많아요.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을 하는데, 최저임금만 받아요. 무기직 선생님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는데, 1호봉 월급이 180만 원쯤 받나? 아무튼 최저임금보다 살짝 많이 받는다고 그래요. 그런데 서울시의 생활임금은 220만 원쯤 된다더라고요. 식당에서 일한다고 사람의 값어치도 그렇게 낮춰보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일하는 값어치를 생각하면 지금보다는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이 아파서 내 돈 내고 병원에 다니는데, 병원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요. 우리가 요구하는 건 적어도 생활이 유지될 만큼은 지급해줘야 한다는 거죠. 이게 과한 욕심인가요? 저는 과한 욕심이라고는 생각이 안 드네요.

 2019년에 전면파업을 한 보름 정도 했는데. 무노동 무임금이라고 해서 파업하던 기간에 대한 월급을 못 받았어요. 그 금액만큼 인건비를 안 준거니까 생협 입장에서는 세이브가 된 거잖아요? 그 돈을 글쎄 홀랑 서울대학교에 발전기금으로 납부를 했더라고요. 그걸 또 성과를 낸 거라고 사무처 직원들은 성과급으로 보상해주고. 그래서 노조에서 이번에는 가능하면 조합원들에게 부담이 안가는 파업 방식을 시도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10월 6일에 부분 파업을 했어요. 부분 파업은 하루 이틀 전에라도 사무처에서 알면 미리 대비를 해서 소용이 없어지니까 그날 아침에야 알릴 수가 있었죠.

 파업을 왜 하고 싶겠어요. 그냥 빨리 해결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파업을 하면 학생들이 불편하잖아요. 마음이 아프죠. 19년도에도 그랬고. 학생분들이 지지해주고, “불편해도 괜찮아요” 하면서 “힘내세요” 하면서 응원해줄 때는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런 학생들에게 불편하게 하니 마음이 편치 않죠. 이번에도 학생분들이 많이 응원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생협하고 서울대학교가 그래도 저희 목소리를 들어 주니까요. 매번 밥때마다 보는 학생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