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사과, 사건의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8월 2일 자 서울대학교 총장 입장문에 부쳐, 실질적인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합니다


 8월 2일 오전에 발표된 입장문에서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은 고인과 유족 및 피해 노동자들에 사과를 표명하였습니다. 6월 26일 사망 사건 발생 이후 한 달이 훌쩍 넘었기에 너무 뒤늦은 사과입니다. 하지만 상처받은 유족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는 최소한의 도리이기에 총장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다행인 일입니다.

 그동안 오세정 총장 재임 동안 두 차례나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본부는 이에 대한 사과와 책임 인정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번 사망 사건 이후에는 전 학생처장과 관악학생생활관 부관장을 포함한 책임 있는 위치의 관계자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연이어 하며 큰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학교가 인권센터 조사를 핑계로 처우개선책 마련을 미루는 사이, 고용노동부는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고인이 경험한 여러 갑질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함을 인정하였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차차 밝혀짐에 따라 많은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시민들이 추모와 분노에 뜻을 함께하고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렇기에 서울대 총장과 대학본부도 2019년 사망 사건 때와는 달리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건에 관심을 기울여주신 모든 분들의 참여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총장의 사과는 사건의 끝이 아닌 책임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관악학생생활관 당국이 인력충원 없는 주말 근무 폐지를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하며 사생 대상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모습은 과연 이번 사과가 진정성 있는 조치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학생들의 불편을 야기할 뿐 아니라 실질적 노동강도는 낮추지 못하고 휴일근로수당만 삭감되게 만드는 기숙사 당국의 미봉책은 이번 대학본부의 입장이 언행일치로 이어지려면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서울대는 결코 노동자의 존엄을 보장하는 학교로서 신뢰를 쌓아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과가 형식적인 퍼포먼스나 말뿐인 사과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노동환경 개선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의 행정(지도)개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함은 물론이고, 더는 인권센터 조사를 핑계로 미루지 않고 즉각 갑질 예방책과 노동환경 개선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단순히 청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조합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책임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다운 노동강도를 보장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여야 하고, 이를 위한 인건비가 대학본부의 예산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나서야 합니다. 인사관리와 인건비의 책임을 기숙사 등의 기관에 미루지 말고 기존의 기관장 발령 노동자들을 실제 권한이 있는 본부가 총장 발령으로 고용하여 처우 개선을 진행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그동안 노동조합과 함께 ① 학교의 책임 인정과 사과 ② 진상규명을 위한 노사 간 산업재해 공동 조사단 구성 ③ 책임 있는 관리자에 대한 조치 ④ 노동조합과의 적극적 협의 ⑤ 처우 보장을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라는 다섯 가지 요구안을 주장해왔습니다. 이번 총장 입장문은 서울대학교가 응당 취해야 할 책임 있는 조치의 미진한 시작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이 보장되는 학교가 되는 날까지 노동자와 학생들은 우리의 당연한 요구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