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무엇이 문제인가?’ 발제문
안녕하십니까?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약칭 비서공) 학생대표를 맡고있는 이재현입니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다루는 이번 긴급 토론회에서 서울대 학생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 사태의 본질과 문제점, 개선 방향에 관하여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학생들이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가 아닌 산재 공동조사단 조사를 주장하는 이유
서울대학교 당국은 이번 사망 사건 발생 이후 갑질 등 인권침해에 대하여 인권센터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족과 고인이 소속된 민주일반노동조합은 인권센터 조사가 아니라 사측과 노조 및 국회 전문가 등 제3자가 포함된 산업재해 공동조사단을 결성하여 객관적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신뢰성 없는 인권센터 조사에는 협조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저희 비서공 또한 인권센터 조사가 아닌 산재 공동조사단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이는 서울대 인권센터가 그동안 보여온 모습에서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능동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 서울대 인권센터는 센터에서 주최하는 인권주간에 교수의 학생 대상 권력형 갑질 및 성폭력과 관련된 코너를 빼라고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학생사회에서 오랫동안 인권주간을 보이콧한 바 있습니다. 교수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하는 학보사 대학신문 기자들이 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하자 인권센터가 학생 기자들이 교수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인권교육 이수를 권고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가깝게는 사회학과 H교수나 서어서문학과 A교수, 음대 B・C 교수 등 이어지는 알파벳 교수들의 권력형 갑질과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인권센터는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조사에의 학생 참여를 지속적으로 거부하였으며, 솜방망이 처벌 권고만을 내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그동안 인권센터가 학생을 동등한 학교 구성원으로서 바라보고 인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 역할을 해오지 못했기에, 저희 학생들은 인권센터가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않는 학교 당국의 시선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인권센터는 비록 독립성 있는 조사를 주장하고는 있지만 분명 학생처의 산하에 놓인 기구입니다. 전 학생처장의 SNS 발언이 큰 물의를 빚었던 상황에서 학생처 산하에 위치한 사측 기구의 조사는 사측만의 ‘셀프 조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번 사안은 갑질 뿐만 아니라 높은 노동강도를 비롯한 노동환경 전반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산업재해인데, 포괄적 노동환경을 인권센터에서 조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학교 측은 신뢰성이 땅에 떨어진 인권센터 조사를 고수하지 말고, 이 사안에 있어서 노사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동조사단 결성 요구를 수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측의 거부로 인해 노사 공동조사단 결성이 어려워진다면, 국회 차원에서의 객관적 조사단을 통한 조사를 비롯하여 국회 청문회 시행,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시행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2. 2년도 안 되어 또다시 이어진 죽음, 차별적 고용구조가 근본적 원인
지난 2019년 8월 9일, 폭염 속 공대 302동의 열악한 휴게공간에서 우리는 한 명의 청소노동자분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이후 지속적인 노동자와 학생들의 요구 끝에 학교 측은 2020년 말에 휴게공간에 대한 일정한 개선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2주기 추모를 지내기도 전에 우리는 또 다른 청소노동자분의 죽음이 갑질과 높은 노동강도 속에 발생하는 일을 보아야 했습니다. 열악한 휴게공간, 비인간적 직장 내 괴롭힘, 지나치게 높은 노동강도 등은 모두 포괄적인 노동환경의 문제이며, 이렇게 청소노동자의 노동환경이 서울대 내에서 개선되고 있지 못한 현실은 노동자를 바라보는 학교 당국의 차별적 인식이 제대로 변화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동자를 학교 공동체의 존엄한 구성원으로 바라보기보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아 통제하고, 이를 위해 차별적인 고용구조를 유지하며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서울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18년경 서울대학교는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선제적으로 시행하였다고 대대적으로 언론에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총장 발령 정규직인 법인직원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임금과 복지 등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도 맞지 않는 각종 차별에 시달려야 했고 전환 이전보다 처우가 더욱 악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기계약직 심의위원회가 열리지 않아 무기직으로의 전환도 진행되지 못한 채 고용불안과 해고 위험에 놓여야 하는 계약직 노동자들도 많습니다. 관악학생생활관의 청소노동자들도 용역 고용에서 직고용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정년이나 처우에 있어서는 오히려 상황이 악화하였음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왔습니다. 고인의 동료 노동자들 중에는 매 6개월 혹은 1년마다 새로 재계약을 해야 하기에 상시적 고용불안에 놓인 계약직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인력 충원이나 계약직 노동자의 무기계약직 전환에 대하여 기숙사의 재건축 예정을 핑계로 삼아 응하지 않고 있지만, 재건축에 대한 구체적 일정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 새롭게 지어진 글로벌학생생활관은 BTL 민자 기숙사로, 청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업무가 용역에 외주화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서울대학교 노동의 현실입니다. 서울대 당국의 주장과는 달리 학교가 책임지고 재정을 투여하여 차별을 시정하는 ‘진짜 정규직화’는 요원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총장 발령 법인직원과는 달리 각 기관 기관장 및 단과대 학장이 발령 및 인사관리의 권한을 갖는 다수 자체직원의 존재는 서울대의 차별적 고용구조를 드러냅니다. 고인을 비롯한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들은 시설관리직 직군으로 분류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총장이 아닌 관악학생생활관 관장이 발령하는 자체직원으로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관악학생생활관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기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169명이 정원인데다 노후 시설로 인해 엘리베이터도 부재한 기숙사 925동을 한 사람의 청소노동자가 담당해야 하는 비인간적 노동강도는 이러한 차별적이고 무책임한 고용형태와 맞닿아 있습니다. 노동강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인력 충원을 요구해도 이를 위한 인건비 증액 등을 대학본부와 총장이 책임지지 않고 기관장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사장인 서울대가 책임 있게 인력 충원과 노동환경 개선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 지난 4월 비서공을 비롯한 학생들과 학내 여러 노동조합들은 4월 30일까지 총장이 교육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는 정부 출연금 예산요구서에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반영하라고 요구하며 공동성명 공문을 발송하고 기자회견 등 공동행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총장 발령 법인직원의 인건비 예산은 긴밀히 조율하는 학교 본부에서 저희의 요구에 대한 응답은 없었습니다. 더는 단 한 사람의 노동자도 산업재해로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환경을 포괄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인건비와 인사관리를 대학본부가 평등하게 책임지는 고용구조가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