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샤니 빵공장 노동자의 죽음, 지켜지지 않은 약속
시민들이 불매로 요구한 안전 일터, 중대재해 재발에 원청이 책임져라
지난 8월 8일, SPC그룹 계열사인 샤니 성남공장 노동자가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계에 끼여 심정지에 놓인 노동자는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중대재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SPC그룹 계열 공장에서 또다시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샤니 성남공장에서 발생한 이번 끼임 사고는 고인과 함께 2인 1조로 근무하던 동료 작업자가 고인이 반죽분할기 안으로 상체를 숙인 채 작업하고 있던 것을 확인하지 못한 채 반죽 볼 리프트 하강버튼을 조작해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강버튼을 조작한 동료 작업자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원인이 단순한 동료 작업자의 부주의 때문만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반죽 볼이 상승하고 하강할 때 울려야 할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보음이 제대로 울렸다면 반죽 볼의 하강을 고인이 인지했을 것이고, 이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SPC 계열사에서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사망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SPC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서 교반기에 끼인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후 SPC그룹을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이 확산하였다.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3년에 걸쳐 1000억 원의 안전투자를 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대국민 사과 발표 직후에 SPC 샤니 성남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끼어 절단되는 사고가, 지난 7월 12일에는 노동자의 손이 끼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불어 SPL 평택공장 사망사고에 앞서 샤니 성남공장에서 반죽분할기에서 이번과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 드러났다. SPC 샤니 성남공장에서 일어난 수차례의 끼임 사고는 이번 사고를 비롯해 끼임 사고의 원인이 노동자의 부주의에 있다기보다는, SPC 계열사들의 안전 시스템의 부재에 있음을 보여준다.
SPC그룹의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SPL 평택공장에서 노동자가 숨진 후 나온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SPC 계열사의 86.5%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12개 계열사 52개 사업장 중 45개 사업장에서 277건의 법 위반이 확인되었다. 거듭된 사고 이후 “안전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던 허영인 회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위험한 노동환경 속에서 SPC그룹은 노동자들의 저임금,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다쳐도 산업재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을 파괴하면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더불어 2017년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는 SPC그룹 파리바게뜨가 협력업체 노동자 5300여 명을 불법 파견한 것이 드러났다. SPC그룹은 자회사 고용으로 이를 무마하려 했지만 원청 파리크라상과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 소속 노동자 사이의 임금과 처우엔 차별이 있었다. 2018년 SPC그룹이 여러 단체와 맺은 사회적 합의에서 “급여는 법이 정하는 요건에 따라 3년 내 파리크라상과 동일 수준, 복리후생은 즉시 동일 수준으로 적용한다”는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불법 파견, 노동조합 파괴와 약속 위반으로 점철된 SPC그룹의 경영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과연 어떤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했는지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재학 중인 서울대학교 또한 SPC그룹과 무관한 공간이 아니다. SPC그룹은 서울대 캠퍼스 내의 생활 속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관정도서관 근처의 파리바게뜨와 파스쿠찌, 여러 군데에 설치된 배스킨라빈스 자판기,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삼립 제품들뿐만 아니라, 아예 SPC의 이름을 내건 ‘SPC 농생명과학연구동’과 ‘허영인 세미나실’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건물은 2009년 11월 SPC그룹과 허영인 회장이 ‘사회공헌’을 명목으로 기부금을 공동 출연해 설립한 것으로, 허영인 회장은 서울대 ‘발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동권을 짓밟고 노동자들의 목숨값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허영인 회장이 ‘사회공헌’을 확대하려 했다며 ‘발전공로상’을 받은 것이다. ESG 등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온 서울대가 정작 이토록 인권과는 거리가 먼 기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거듭되는 산업재해 속에서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서울대의 실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노동자의 인권과 생명을 담보로 생산된 ‘피 묻은 빵’을 먹을 수 없다는 연대 의식은 SPC그룹 계열사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이 불매로써 요구한 안전한 일터. SPC그룹은 위선과 책임 떠넘기기를 멈추고 원청이 직접 나서서 안전한 일터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의 생명권 경시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울대 또한 산학연협력이나 학내 입점 업체 선정 등에 있어서 인권과 사회적 책임에 소홀했던 그동안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일하다 죽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일터를 위해, 서울대 구성원들도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요구를 만들어나가고 실천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