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에서 노동할 수 있는 권리

신당역 살인사건 청년학생 추모문화제 연대발언



 2022년 9월 14일 저녁, 신당역에서 한 여성 역무원이 살해당했습니다.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피해자의 입사 동기였던 가해자는 약 3년이나 피해자를 스토킹해왔고, 이로 인해 고소된 상태였지만 법원도, 수사기관도, 직장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그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젠더 기반 폭력인 동시에,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노동환경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입니다.

 가해자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직장 동료인 피해자를 스토킹하고 협박해 왔습니다. 분명한 직장내 성적 괴롭힘, 직장내 성폭력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오랜 기간 괴롭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한 동료 직원도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공사가 문제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수사 개시 사실을 전달받은 이후에는 상황 파악과 피해자 보호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직위 해제 이외의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확정된 판결 뒤 사내 징계’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확정된 판결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는데 그동안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 및 보호를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추가적인 징계 없이 직위해제 상태에 놓여있던 가해자는 내부 전산망을 통해 피해자의 과거 거주지와 근무 일정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직장내 성폭력으로부터의 적극적인 보호는커녕 피해자의 신고에 따른 소극적 보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시각, 피해자는 홀로 역사를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순찰 업무가 2인 1조로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이전부터 순찰 업무, 특히 야간과 같은 취약 시간대의 순찰 업무에 있어서 2인 1조 근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늘 인력 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혀 왔습니다. 역무원들이 폭행과 폭언을 겪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많은 직원들이 야간 근무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합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일찍 귀기울였더라면, 경영효율화와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하에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간과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일터는 집 다음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친숙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그곳은 최소한 안전의 측면에서는, 전혀 안심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일터는 동료에 의한 직장내 성폭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고 오히려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창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야간 순찰의 위험 속에 피해자를 홀로 노출시켰습니다. ‘하나라도 달랐더라면…’, 그런 생각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지난 24일,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더 안전한 지하철, 안심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겠다며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일시적인 말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약속이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지난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사장이 인원 충원이 아닌 여성 직원의 당직근무 감축을 대책으로 제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공사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는 있는 것인지 우려됩니다. 이는 ‘여성’ 노동자를 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성평등하지 않은 방안이고, 직장 내부에서의 성차별적 인식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 안전 보장의 근본적 대책이 되지 못함은 물론입니다.

 누구나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직장내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고, 홀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아야 합니다. 국제노동기구는 지난 총회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노동기본권에 추가했습니다. 안전한 일터 보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일터가 안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현실이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직장내 성폭력 문제로부터 노동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피해 사실을 보다 쉽게 신고할 수 있는,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서울교통공사, 그리고 실질적인 사용자인 서울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러 차례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을 막지 못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말 죄송합니다. 또 다른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가 달라질 수 있도록 청년학생들도 노력하고 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