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이 존엄할 수 있도록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합니다

지난 9월 16일부터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소속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은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정문에서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9월 26일부터는 대학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10월 6일에는 하루 부분파업에 돌입하게 되면서 생협 노동자들이 운영해온 식당과 카페가 잠시 문을 닫습니다. 이후에도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파업이 이어져 생협이 운영하는 식당과 카페 및 일부 편의점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생협의 노동자들은 우리가 학식을 먹는 식당에서, 차를 마시는 카페에서, 그리고 각종 일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문방구와 편의점 등지에서 학교 구성원들의 필수적인 후생복지를 유지하는 일에 종사해 왔습니다. 그런 생협 노동자들이 왜 식당과 카페의 운영을 잠시 멈추고 거리 위로 나서게 된 것일까요?
출근 시간 선전전의 피켓에 걸린 몇 장의 사진은 정문을 지나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판매되는 식사와 그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식사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식사에서 햄버거 오므라이스 위에 올려진 함박스테이크는 사라졌고 삼계탕에서는 닭이 사라졌습니다. 연어 덮밥 메뉴를 조리하는 날에 노동자들은 연어 없는 연어 덮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조리한 식사의 주메뉴조차 먹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우리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일상을 유지해온 노동이 얼마나 부당한 조건 속에서 수행되어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었습니다.
생활협동조합의 노동자들은 다른 서울대 노동자들이 매달 14만 원씩 정액급식비를 받아온 것과는 달리 식비를 전혀 지급받지 못해왔습니다. 이에 대해 항의하면 생협 사무처는 식당과 카페 노동자들에게 현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답하지만, 제공되는 식사의 질은 위와 같이 판매용 식사보다 열악한 데다 판매 부서의 노동자들은 그마저도 제공받지 못합니다. 올해 임금협상에서 노동조합은 열악한 식사를 제공받느니 차라리 식비를 받아서 식사를 사 먹는 것이 낫기에 생협 노동자 모두에게 다른 서울대 노동자들과 동일한 월 14만 원의 식비를 지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임금협상이 결렬되어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이 이루어지게 되자, 노동조합은 판매 부서 노동자들에게는 월 8만 원의 식비를 지급하고 식당 노동자들에게는 주메뉴를 먹을 수 있도록 식사 질을 개선하는 한편 월 5만 원의 위험수당을 지급해달라는 양보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식당 노동자들은 불과 칼을 자주 다루며 위험한 일을 맡아 해야 하기에, 초・중・고교의 급식실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원 식당 노동자들은 정액급식비와 함께 위험근무수당 또한 지급받습니다. 그러나 생협 사무처는 조정 과정에서도 식사 질 개선만 “가능”하다며 최소한 초・중・고교 급식노동자만큼의 처우는 보장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식사 질 개선마저도 사실 2020년 조정에서 생협 사무처가 시행을 약속한 후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사항입니다.
올해 임금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생협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이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생협에서는 J1, J2, W 3가지 직급으로 노동자들을 나누고 직급별로 각각 35, 35, 45구간의 호봉을 두는 임금체계를 시행해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빠르면 40세 늦으면 50세에 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총 115구간 호봉에 따른 임금 인상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60세가 정년인 생협에서 가장 낮은 W 직급의 10~20호봉에만 도달한 채로 퇴사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구간 사이의 임금 인상분도 매우 작기에 장기 근무로 근속연수가 아무리 쌓여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에서는 이처럼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임금체계를 개선하여 직급을 없애고 호봉을 총 45구간으로 단순화하는 단일호봉제를 요구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생협 재정 상황이 어렵다는 경영진의 주장을 수용하여 2022년부터 개선된 임금체계를 실시한다면 기본급 임금은 동결해도 좋다고 양보하기까지 했습니다. 서울대 법인직원 노동자들과 동등하게 매년 월급의 60%로 명절상여금을 지급하라는 요구도 40% 지급 요구로 양보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협상과 지노위 조정 과정에서도 생협 사무처는 고된 노동을 하는 만큼 최소한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임금과 수당을 지급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하였습니다.
30년 만에 벌어졌던 2019년 생협 파업 당시에도 노동자들의 요구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3일 동안의 파업과 많은 학생 및 시민들의 연대 속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끝내 명절휴가비 동등지급 요구는 온전히 수용되지 못했고, 당시에 약속되었던 임금체계 개선도 오늘날의 요구안에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오히려 2020년 이후 2년째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비대면 수업이 장기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우는 더욱 나빠지고만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인력이 감축되면서 남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생활협동조합의 식당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할 때 140여 명에서 80여 명으로 60명 이상이나 감축되었습니다. 생협 사무처는 비대면 수업으로 식당 이용자 수가 줄어들었기에 노동강도가 개선된다며 인력감축을 합리화하지만, 식수가 줄어들어도 식사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노동이 그에 비례하며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력감축 속에서 계약직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인해 계약만료라는 이름으로 해고당했고,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줄어드는 인력으로 인해 높아지는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력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남은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생협 노동자들은 코로나19와 인력감축 이전에도 한 끼에 적게는 200인분에서 많게는 4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흔히 ‘뼈주사’라고 불리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며 고된 노동으로 인한 고통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최저임금 월급 받아 병원비로 다 나간다”는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앞으로 10월부터 제한적으로나마 시행될 대면 개강이 시작되면 지금의 인력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입 모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속에서는 대면 개강을 앞두고 시도되는 인력충원조차도 원활할 리가 만무합니다. 일반적인 집단급식 사업장에 비해 지나치게 노동강도가 높다고 소문이 자자한 상황에서 서울대 생협에서 채용공고를 내더라도 지원자를 쉽게 구하기 어려운 것이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생협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노동환경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후생복지 사업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생활협동조합이 즐겁게 노동할 수 있는 일터가 되도록 처우를 개선하고 적정한 노동강도가 보장될 수 있도록 인력충원을 시행해야 합니다. 생협 경영진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생협의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재정 투여를 완고하게 거부해왔습니다. 하지만 생활협동조합은 구성원들의 후생복지를 위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왔기에, 애초부터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코로나19 이전에도 장기간 재정난에 시달려왔습니다. 실질적으로 생협이 서울대 구성원들의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임에도 대학본부는 생협이 별도법인이라는 이유로 재정 지원을 하지 않으며 책임을 회피해왔습니다. 결국 대학본부가 재정적 책임을 전가하면서 생협의 재정이 어려워지면, 그 부담은 오롯이 저임금과 식대 인상 등의 형태로 노동자와 학생 모두에게 전가됩니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는 결코 생협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불가능하기에, 노동조합은 학교가 생협을 직영화하여 구성원에게 필수적인 복지사업을 직접 운영하고 그 복지를 유지하는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처우를 책임 있게 보장하라고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직영화 요구는 물론이고 노동자 인건비와 대학 구성원 복지 질 향상에 대해 재정 지원을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대학본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이 지금처럼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저렴하게 이용해온 복지는 노동자의 삶이 갈려 나가며 만들어진 기만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아울러 학교가 구성원의 복지에 필요한 재정을 직접 책임지지 않을 때, 학생에게 꼭 필요한 후생복지의 질과 저렴함도 보장되지 못함을 우리는 끊임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잠시 일손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던 생협 노동자들과 연대합니다. 그리고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의 존엄함을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생협 경영진은 임금체계 개선과 식비 지급 등 노동자의 존엄한 처우를 위한 요구를 즉각 수용하라!
2. 대학본부는 생협을 직영화하여 구성원 복지와 노동자 처우를 직접 책임져라!
〈붙임〉 판매되는 학식 메뉴와 생협 식당 조리원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식사 메뉴 비교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