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당신의 노동은 나의 일상입니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과 연대합니다


 9월 19일 오늘,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합니다. 이에 따라 생협이 운영하는 식당(농생대 제외)과 카페의 운영이 하루 동안 전면 중단됩니다.

 이번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시는 생협 노동자들께서는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식사를 조리・배식하고 식당을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오신 분들입니다.

생협 식당 노동자들은 인간적 처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협 노동자들의 1호봉 기본급은 171만 5천 원이라고 합니다. 주말근무를 해 시간외수당 등을 받아야 겨우 최저임금을 넘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음식점 및 주점업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 1인당 평균임금보다 62만 원 정도 낮은 금액입니다.

 낮은 임금에 더해 높은 노동 강도 역시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학생회관 식당 한 곳에서만 약 서른 명의 노동자가 하루 동안 6천 명 분의 식수를 준비합니다. 조리와 배식이 이루어지는 식당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여름이면 땀띠가 온 몸을 뒤덮고, 무릎, 팔꿈치, 팔목은 성할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자기 돈을 들여 진통제 주사를 맞아가며 일을 합니다.

 얼마 전 302동에서 근무하던 청소노동자 한 분이 1평 남짓한 열악한 휴게실 안에서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생협 노동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에어컨도 없는 3평도 안 되는 휴게실을 8명이 써야 해서, 여름에는 점심 배식 후 식당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밀려오는 잠을 잠깐이나마 해결합니다. 여성 식당 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장이 없어서 주방에 간이 커튼을 달아 흐르는 땀을 씻고, 일부는 남성 노동자들의 샤워장을 숨어서 이용합니다. 카페 노동자들은 휴게시간도, 휴게실도 보장된 게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처우가 이토록 열악하다 보니, 매해 채용공고가 올라가도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생협은 너무 힘들다고 소문이 난 것입니다. 오죽하면 생협 관리자들이 구인광고 유인물을 나눠주며 노동자들이 직접 구인해오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게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의 현주소입니다.

파업의 원인은 생협 식당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사측의 개선 의지 부족입니다


 노동자들은 기본급 3% 인상과 명절휴가비 지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업 전, 노조는 생협 사측과 수차례의 교섭과 노동위원회 조정 그리고 사후교섭까지 거쳤지만, 생협 측은 그렇게 많이 인상해줄 수는 없다며 양보를 거부해왔습니다. 학교 본부는 그간 생협은 별도 법인이라며 사태를 방관해왔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리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생협은 현재 매해 수억 원의 기부금과 임대료를 학교에 내고 있습니다. 생협은 학교 구성원의 후생복지를 위해 설립된 법인이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지 않고 이익금을 모두 서울대에 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새 몇 십억 원에 달하는 돈이 생협에서 서울대로 넘어갔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결국 처우를 개선할 의지가 없는 생협 경영진과 대학본부가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혹자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약 생협이 노동자를 쥐어짜서 만들어낸 이윤으로 ‘구성원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고, ‘천원의 학식’과 같은 프로그램은 노동자의 인건비를 깎아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것은 기만입니다. 생협이 합리적인 가격의 질 좋은 식사를 학생들에게 제공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도 인간적 처우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학교 당국이 생협에 대해 재정적 책임을 지고, 일 년에 수억 원 씩 하는 임대료 장사를 그만두면 됩니다. 학교는 책임 회피를 멈추고, 학생들의 생활권과도 직결된 생협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합니다.

당신의 노동이 나의 일상이기에, 우리는 생협 노동자들과 연대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농생대 식당을 제외하고 생협이 직영 운영하는 모든 식당, 카페가 문을 닫습니다. 그래도 사측이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의 불편도 커지게 됩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 한 순간에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렇게나 중요한 노동이 이토록 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하에서 행해져왔음을 증명해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생협 노동자들은 언제나 열악한 처우를 호소해 왔지만, 우리 중 누구도 파업 전까지 그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런 노동 실태가 유지되어 왔음에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낍니다.

 하루 파업에 돌입하는 노동자들은 학생들의 식사가 걱정된다며, 식사 대안이 부족한 농생대 식당에 대해 파업 제외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불편함을 약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무시로 일관해도 문제없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곁에 서겠습니다.

8명의 노동자들이 쓰도록 되어 있는 동원관 식당 휴게실. 한 평도 안 되는 규모에 에어컨도 없습니다. 이렇게 비좁아 식당 노동자들은 점심 배식 후 식당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겨우 쉽니다.
식당 바닥 한켠에 돗자리를 깔고 허리를 펴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입니다.
자하연식당 남자 탈의실 및 휴게실.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있는 모습입니다. 농생대 식당 주방에 설치된 샤워커튼. 여성 식당 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시설이 없어서 주방에 샤워커튼 하나 펼치고 샤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앙도서관 느티나무 카페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탈의실 겸 휴게실. 고용노동부 기준은 규정된 근무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경우 반드시 탈의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생협 측은 창고를 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