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헌단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촉구합니다.
글로벌사회공헌단 다낭봉사팀 성폭력 피해자 학우를 지지하며,
지난 8일,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의 다낭 해외봉사 중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습니다. 봉사단으로 파견된 학생들 중 일부는 현지 다낭고엽제피해자센터(DAVA센터)에서 특수교육 활동을 진행하던 중, 센터 소속의 성인 남성 학생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은 이 문제를 봉사팀과 책임기관인 글로벌사회공헌단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봉사가 끝날 때까지 피해를 막기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고, 봉사팀을 인솔했던 공헌단 직원들은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봉사가 끝난 이후에도 사과는 없었고, 피해자는 그간 자신이 견뎌야 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적어 사건을 공론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글로벌사회공헌단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연대해 온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은 이 글을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하나, 피해 학우의 요구를 지지하며 연대합니다
비서공은 피해자의 용기를 응원하며 피해자와 연대합니다. 이 사실을 글 앞머리에서 특별히 밝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서공은 지금까지 글로벌사회공헌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연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취약한 지위에 있다고 하여, 그들의 잘못 자체를 모른 척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연대활동을 펼쳐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대란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세상을 꿈꾸며 손잡는 것이라 믿습니다. 연대하기 위해서는 동지적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헌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한다는 것은, 그들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무조건 노동자 개개인을 옹호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동자들과 함께 진정 올바른 정치적 실천을 해 나가는 일이어야 합니다. 비서공은 앞으로도 공헌단 노동자들의 해고를 막고 고용안정을 이뤄내기 위한 연대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건과 관련된 해외팀 소속 노동자들이 자신의 오류를 이해하고 스스로 시정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피해 학생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공헌단에 산적한 구조적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피해 학생의 편에 설 것을 촉구하겠습니다. 그렇게 피해 학우와 연대하겠습니다.
둘, 이 사건의 배경에는 글로벌사회공헌단의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서울대 보직교수들의 대표적 ‘치적’으로 여겨져 왔던 글로벌사회공헌단이 지속가능성보다는 무분별한 외적 확장에만 치중해왔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헌단 당국이 이번 문제제기를 스스로의 조직 자체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 바랍니다.
애초에 공헌단은 학생 인솔 등 핵심노동을 하는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인력 돌려막기’를 해 왔습니다. 2년마다 직원을 바꿔가며 경험이 쌓인 직원을 내보내고, 대신 수습기간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신입직원에게 수십 명의 학생들을 인솔해 해외 취약지역으로 떠나게 한 것입니다. 공헌단은 매년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을 갈아끼우면서도, 제대로 된 안전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 제정보다는 당장 새 사업을 개척하는데에만 골몰해 왔습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이번 다낭 봉사에서는 수습 중인 ‘새내기’ 직원이 매뉴얼도 없이 학생들을 인솔해야 했습니다. 공헌단 측은 다낭 봉사지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지 예상조차 못한 채 봉사단을 떠 민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의 배경에는 인력 돌려막기와 매뉴얼 부재라는 공헌단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공헌단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피해자에게 상처 준 직원들이 직접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공헌단 당국 역시 학생들의 안전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실적에만 치중해온 것,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해외 취약지역으로 떠 민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공헌단 당국은 이 사건을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 잘못으로 축소하거나, 그들에게만 불이익을 주고 마무리하는 ‘꼬리자르기’식 대응은 절대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님을 깨닫기 바랍니다.
셋, 글로벌사회공헌단은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으십시오
비서공은 이번 사건을 접한 뒤, 글로벌사회공헌단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노동자들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아직 공헌단 구성원 전반이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피해자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나, 일부 노동자들은 공헌단이 사과하는 것이 맞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수는 피해자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만나자”고 연락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부디 글로벌사회공헌단 일부 보직자들은 피해자 압박을 그만두고, 그의 문제제기와 내부의 반성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랍니다. 많은 학생들이 이미 이 사건이 공헌단의 구조적 취약성으로부터 발생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대처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끝으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다시 한 번 피해자와 연대하여 글로벌사회공헌단을 바꾸는 길에 함께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우리는 공헌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이번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중요한 대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 요구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공헌단 노동자들이 학생과 동등한 연대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시정하고 피해자의 편에 서서 공헌단을 바꾸는 데 함께할 수 있도록 목소리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