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외침: “서울대는 아직 국가부도의 시간 속에 멈춰있습니다”

우리는 글로벌사회공헌단의 ‘시한부’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우리들은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이하 글사공)의 비정규직 직원들입니다. 너무나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지만 2년이면 해고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글사공의 봉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실제 봉사 기간 동안 학생들을 인솔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사회복지나 NGO 활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세상에 공헌하는 기관에서 일한다는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그에 비해 너무나 초라합니다.

 국내외 취약지역에 지속가능 봉사를 실시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우리 글사공은 17명의 직원 중 1명의 법인직원을 제외한 16명의 사업담당 직원 전원이 2년 계약직인 자체직원으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모든 사업은 큰 틀에서 사업의 주제가 바뀌지 않으며 '같은' 사업을 담당하는 '다른' 사람을 2년마다 교체할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모두 2년마다 해고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것입니다.

글로벌사회공헌단의 활동이 일시적‧간헐적이라고요?


그동안 수많은 우리나라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해고하기 위해 2년마다 인력을 교체하는 꼼수를 부려왔습니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고자 지난 2017년 7월 <9개월 이상 지속 중이며, 향후 2년 이상 지속이 예상되는 직군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한다>는 내용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글사공의 사업은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으며,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시・지속 업무임이 자명합니다. 드디어 고용안정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본부는 별다른 근거도 없이 우리 기관의 자체직원들을 일시・간헐 직군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2년이면 해고되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학교의 주장대로라면 왜 일시・간헐 직군인 우리가 하는 일이 4년 전에도, 2년 전에도 그리고 현재도 같은 것이며, 왜 이를 담당하는 사람만 바뀌는 것입니까? 정말로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의 활동이 일시적인건가요? 그리고, 대체 왜 일시・간헐 직군에 불과한 직원 1인에게 수십 명의 학생들 안전을 책임지게 하며 이들을 인솔해서 국내외 취약지역에 다녀오게 한다는 것입니까? 대학 본부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너무나도 부실하며 빈약합니다.

서울대학교의 위선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결과, 2018년 12월 기준 전국 74곳의 공공교육기관 중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은 곳은 서울대학교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교란 곳에서, 그리고 서울대생들을 사회의 선한 인재로 키우고자 복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나눔을 전달하는 사업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대학 본부는 우리와 같은 기관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포괄임금제를 강요합니다. 일하는 시간을 따지지 않고 그냥 무조건 전체 임금을 정해놓고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약정 자체가 위법이며 무효인 구시대의 산물입니다(대법원 2010.5.13. 선고 2008다6052 판결). 특히나 현재 대학 본부에서 만든 포괄임금제에는 무려 월 65시간의 시간외수당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1달 급여에서 제하면 몇몇 직원들은 기본급이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21세기 공공기관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힘든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최저임금도 못 받고, 봉사를 준비하기 위해 계속되는 시간외근무에도 딸랑 6천원 짜리 식권 한 장 받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국립대학법인이라는 서울대학교가 이렇게 인건비 후려치기를 하는 상황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우리도 서울대학교의 자랑스런 직원입니다


 우리는 마이스누에 출퇴근을 기록하고, 전자결재를 올리고, 시간외근무를 신청하고, 휴가를 신청합니다. 이처럼 모든 행정은 서울대의 공식 통합 포털사이트인 마이스누에서 진행되지요. 대학본부는 우리가 정식 부속 시설에 속해있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고용, 임금 등에 있어선 선을 긋고 있는 언어도단의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는 본부 차원에서 정규직전환위원회조차 꾸리지 않아 우리에게 전환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카드 돌려막기와 같은 인력 돌려막기로 학교를 운영하는 이런 행태가 과연 옳은 것인가요?

 서울대는 정규직인 법인직원과 비정규직인 자체직원의 비율이 거의 비슷합니다. 전국의 어느 회사도, 어느 기관도 비정규직의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곳은 없습니다. 워낙 방대한 캠퍼스에 수많은 기관이 있다는 것을 핑계로 비정규직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할 의지도 없습니다. 결국 서울대는 법인직과 자체직원이 함께 가야하는, 비정규직 자체직원이 없으면 학교의 행정과 사업이 마비되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교육기관이란 것입니다. 국내 최고 대학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국민의 세금을 받고 있는 서울대는 정부의 공공기관 가이드라인을 빠른 시일 내에 충실히 이행하여 교내 구성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사회공헌단의 노동자들이 맘 편히 학생들과 소통하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서울대 캠퍼스 내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이 서울대의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의해 최저임금만큼의 대우가 아닌, 일한만큼 충분히 임금이 보장되는 학교를 만들기 바랍니다. 이제 비정규직을 남발하는 국가부도의 시간을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2018년 12월 31일
서울대학교 본부 부속 시설 글로벌사회공헌단 비정규직 자체직원 일동

함께하는 단체들: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