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35차 긴급행동’ 결합

안녕하십니까? 노동자 학생 연대 운동, 노학연대 활동을 하고 있는 이재현입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약칭 비서공이라는 단위에서 주로 활동해왔는데요, 오늘은 단위 차원은 아니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학생으로서 발언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학부에서 서양사를 공부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구적인 서양의 지배 확립과 이에 대한 저항이 거쳐온 역사를 살펴보면서 식민주의, 그리고 탈식민을 위한 요구가 중요한 주제라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탈식민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국민국가의 독립을 위한 요구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의제를 넘어선 다양한 사회운동, 이를테면 노동자운동의 역사에도 깊이 기입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착식민주의가 형식적으로 이전 세기들의 식민지배와 다른 외양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억압적 통치의 그 본질은 끊임없이 갱신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먼 곳의 일로, 혹은 머나먼 과거의 일로 상상되기 쉬운 식민주의가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저당잡고 있는지를 환기하기 위해, 이전 세기의 알제리라는 중요한 억압과 저항의 장소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전후 세계에서가 가장 잔혹한 식민주의 전쟁 중 하나가 벌어진 알제리에서, 끈질긴 해방운동을 대상으로 프랑스군이 자행한 학살과 고문의 기술은 프랑스라는 식민 제국의 ‘중심부’와 결코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식민전쟁의 폭력은 끊임없이 되먹임되어, 근대성과 민주주의의 중심부를 자임하는 서구에서 국가폭력을 강화했습니다.
파리 한복판에서 경찰이 알제리의 해방운동을 지지하는 이주민 시위대를 학살하고 그 시신을 센강에 던져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반전평화를 외치던 프랑스 공산당원들과 노동조합원들을 도심의 지하철역에서 총격으로 학살했다는 사실은 당대에도 지금에도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1961년 학살을 지휘한 파리시 경찰국장 모리스 파퐁이, 과거 1940년대 초 비시정부의 관료로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다는 사실도 이후 밝혀지며 많은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파시즘에 적용된 폭력의 기술과 논리들은 과거 식민주의를 통해 비서구인들을 대상으로 실험되었고, 전후에 다시 식민주의적 지배를 재확립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활용되었습니다. 알제리에서 ‘대테러’란 명목으로 개발된 기술들은 지금도 서구의 도심에서 대중봉기를 범죄화하고 노동조합의 가두행동을 전시와 같은 수단으로 억제하는 데에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식민주의의 지구적인 구조 속에서, 한때 식민지배를 경험한 한국 또한 가해와 되먹임이란 폭력의 고리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1980년 5월 전국으로 확대된 계엄을 배경으로 광주의 민중을 향해 가해진 계엄군의 폭력은, 베트남전쟁 참전에서의 ‘대게릴라’ 전술과 논리가 자국을 향해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자본이 생산하는 최루탄과 각종 무기 그리고 중장비들이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집단학살을 위해 수출되고 있는 지금, 가장 노골적인 형태의 내전을 통해 지배하려는 윤석열 정부를 보며 우리는 우리의 연루를 다시금 인식하게 됐습니다.
국경 바깥뿐 아니라 국경 안에서도 끊임없이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고 ‘국가 없는’ 존재들을 포섭하거나 혹은 배제 절멸하려는 식민주의의 폭력은,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지난 12월 이후로 개인적으로 많은 불안을 경험했는데요, 누군가의 죽음과 공포를 야기하며 우리가 연루되어 온 폭력이, 자신의 일상을 뒤흔드는 불안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그런 마음으로 책임을 갖고 계속 연대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