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최대 69시간 노동시간 연장 정책, 선택권의 확장이 아닌 생명권의 침해
62시간 연속 근무 후 사망한 경비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노동시간 연장
지난 3월 8일, 4일 동안 연속해서 62시간 노동을 하던 한 경비노동자가 종로구의 빌딩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이틀 전인 3월 6일,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통해 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겠다며 일할 때 바짝 일하고 장기간 휴가를 쓰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장기간의 연차가 현장에서 쉽게 보장되기 어려우며 해당 안이 연장수당을 삭감시켜 임금을 저하할 수 있다는 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나친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신체는 기계가 아니다. 연속된 장시간 노동은 급작스러운 산업재해 등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초래할 뿐 아니라, 생체 리듬을 훼손하며 장기간 누적될 경우 노동자를 각종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일하는 사람의 질병과 죽음을 초래할 69시간제 노동시간 연장,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MZ 세대’는, 청년 노동자는, 과연 주 69시간 노동을 원하는가?
정부는 소위 ‘MZ 세대’가 유연한 근무를 선호한다며 69시간 노동시간 연장을 밀어붙이고자 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연장은 ‘MZ 세대’를 포함하여 전 사회적으로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청년층에 대한 대표성이 결코 높다고 보기 어려운 정부가, ‘MZ 세대’의 선호를 이유로 내건 정책은 현장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MZ 세대’는 흔히 20대와 30대 청년층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청년 세대 중 일부만을 과대대표하는 범주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런데 ‘MZ 세대’의 여론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보장받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조차도 69시간제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그동안 그런 여론에 포함되지 못해온 많은 청년・학생들, 비정규 노동의 불안정성으로 고용주의 권력에 대해 쉽게 항의하기도 어려운 이들에게 노동시간 연장은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청년 세대도 노동자도, 자기 자신이 아닌 고용주의 권력에 의해 규정되는 ‘유연성’을 원하지 않는다.
낮아지는 실질임금과 길어지는 노동시간, 함께 풀어야 할 문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에 드는 한국의 긴 노동시간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잔업과 특근에 매진하는 노동자들은 초과노동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임금을 위해 부득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최근 명목임금 상승을 훨씬 웃도는 급속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있으며, 각종 공공요금은 높아지는데 왜 월급은 그대로인지 노동자들의 의문이 커져만 가고 있다. 실질임금 하락은 상용 노동자에게도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임시 및 일용 노동자의 경우 훨씬 심각하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을 깎아가며 일하는 초과노동이 과연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적절한 ‘선택권’일까? 세계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임금을 위해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여러 국가에서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노동 정책이 시도되고 있는 지금,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역행적 정책이 아니라 생활임금과 인간다운 노동시간 단축이 한국 노동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