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성의 날을 맞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싸움입니다
지난 2022년 10월 4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대학본부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올해 2023년 3월 8일부로 농성을 시작한 지 151일, 만 4개월하고도 27일이 된다. 청소노동자들은 2022년 최저임금 인상액 44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400원 시급 인상을 위해 차디찬 겨울을 거치면서까지 꾸준히 투쟁해왔다. 그런 그들의 투쟁에 대해 덕성여대 본부 측은 400원 인상의 대가로 인력을 감축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부조리한 구조조정안을 제시했다.
이번 2023년 3월 8일, 우리는 115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한다. 1908년 미국 봉제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 투표권을 쟁취하고자 행진한 날을, 독일 여성 노동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의 제안에 따라 여성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날로 삼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는 100여 년 전과 맥을 같이하는 싸움을 맞닥뜨린다. 청소노동, 조리노동, 돌봄노동, 요양노동 등 중・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취업자 중 대다수인 필수노동 분야에서, 여성 노동자의 노동 가치가 평가절하당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 수준을 경험하고, 직장 내 성폭력과 갑질의 위험에 쉽게 놓이며, 주로 여성의 일로 경시되어 온 가사노동과 그 업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값싸고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된다.
유감스럽게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 또한 이러한 현실에서 예외가 아니다.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에, 우리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손 놓고 지켜볼 수 없는 이유이다. 덕성여대의 창립자인 차미리사 선생은 여성들의 독립과 교육을 위해 힘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만일 덕성여대가 진정 차미리사 선생의 창학이념을 이어받아 대학을 운영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대학 내의 청소노동자 처우 문제 해결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평가절하야말로 오늘날 청년・학생 여성 교육과 권리의 증진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덕성여대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지금 이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덕성여대의 캠퍼스가 깨끗하게 유지되는 노동에 덕성여대가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노동도 서울대학교의 책임이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의 단체급식 노동자들은 대학본부가 아니라 별도법인인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에 고용되어 있다. 덕성여대의 청소노동자가 캠퍼스를 직접 청소함에도 용역업체에 고용된 것과 같이, 대학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고용구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대학 구성원의 일상을 위해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생협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형태로만 한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덕성여대는 청소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소속임에도 최저임금보다 230원'이나' 많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며 스스로 그들만의 ‘배려’를 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대학에서 대체 불가능한 노동자들에게 그에 적합한 대우도, 직접고용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더 나아가, 학교의 시설을 유지하는 노동자에 대한 인력 충원과 인간다운 처우는 쾌적하고 안전한 일상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한 학생식당 노동자들이 이직하자 학생식당의 운영이 축소되어 학생복지가 위협받는 것도, ‘자동화’를 명분으로 한 경비인력 감축 속에서 여성 학생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의 문제이다. 대학들은 용역업체나 별도법인 및 기관별 고용 등을 통해 고용책임을 회피하면서 노동자와 학생 간의 갈등을 조장하지만, 우리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함께 대학에 책임을 촉구해가고자 한다.
서울대에서도, 덕성여대에서도, 청소노동자와 단체급식 노동자들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 주위에서 보이지 않을 것을 요구받으며 우리의 일상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싸워왔고, 또 싸우고 있다. 그들의 싸움이 있었기에 모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115년 전 생존권과 참정권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를 요구했던 여성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여성의 날, 이제 우리 평등한 대학과 일터, 그리고 세상을 위해 덕성여대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자. 대학의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더 나은 대학을 만들어나가자.
